연재소설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5회)

충남시대 2025. 12. 2. 14:12

연재소설 [

잔아(김용만) 소설가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大시인에게는 12.12사건이 애들 병정놀이로

1998. 3. 8 

  보름 전부터 개구리가 울고, 알을 낳았다. 동산에 소나무를 모듬으로 심었다. (그 소나무들이 지금은 노송이 되었다.)

  나는 대학원 리포트를 쓰기 위해 2층 서재에서, 아내는 서울예전 리포트용 소설을 쓰기 위해 아래층 안방에서, 태호는 서울예전 졸업생 동아리에 제출할 소설을 쓰기 위해 창고방에서 끙끙대고 있다.

  하영이 돌날이라 아내, 나래, 에미와 셋이 비행기로 광주에 다녀왔다. 미국에서 돌아온 대구 사돈네도 합석했다. 유라가 음식을 장만할 수 없어 식당에서 고기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 7시 비행기로 올라왔다.

1998. 3. 14 

  지난 월요일 또 국회 인준이 부결되자 김대중 대통령은 총리서리로 김종필을 임명하여 고건 전 총리의 동의로 장관들을 임명하는 형식으로 사령부를 출범시켰다. 내각은 전라도 5명, 경상도 5명, 충청도 4명, 서울1, 이북1 등으로 꾸몄다.
  그는 각하란 말도 못쓰게 했고 사진도 걸지 못하게 했고, 첫 국무회의에서는 봉사하는 공직을 당부했다. 누구나 했던 소리지만 그만은 다를 것 같다. 그의 하는 짓과 생각이 나와 비슷하다. 지난 2. 25 취임식 때는 “당하는 측은 못사는 국민이고.....”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철저한 서민주의, 그게 나와 통하는 점이다. 

  태호 작품을 봐줬다. 그놈은 나한테 서너 번 배웠는데도 많이 알았다며 그런 실질적인 공부는 처음이라고 한다. 우선 리듬을 타라고 당부했다. 
  “리듬이 매끄러운 문장은 비문이 없다. 그리고 너한테는 문학적 정서에 묻히는 게 우선 과제다.”

  오래 전이었다. 서울예전 문창과 학과장인 박기동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형님은 아들네미를 저희 학교에 보내시고도 모르쇠하세요?”
  “뭐야? 회사에 다니는 애가 서울예전에 다니다니?”
  “김태호가 아드님 아니세요?”
  나는 즉시 남산으로 차를 몰았다. 박 교수의 안내로 복도를 걸어가는데 벽에 안내문이 걸려있었다.
  “태호가 우등상을 받았는데 상금 60만원을 저희 반에서 가장 가난한 동료한테 주었어요, 그래서 모범생 표창으로.....”
  나는 집에서 태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임마, 글공부하러 서울예전에 다니는 놈이 우등생이 뭐야?”

  태호가 모처럼 식탁에 원고를 놓고 나갔다. 나보고 읽어보라는 뜻이었다. 단편이었다. 나는 붉은 볼펜으로 자세히 지적해주었다. 이튿날 내 서제에 들어와 대담을 청했다. 공교롭게도 그놈이 존경하는 최인훈 작가가 지도교수인데 내 지적이 최 교수와 똑같았던 것이다.  
  “엄마, 훌륭한 문인들이 왜 아빠를 만나러오는 거죠?”
  그 정도로 애비를 무시해온 놈이 최인훈 교수와 똑같은 지적을 하니 놀라운 모양이었다. 만약 내가 최인훈보다 더 수준 높은 평을 했더라면 무식한 애비가 되었을 것이다.

1998. 3. 15  
   
  중앙大 이동하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내「K시로 가는 길」을 읽었다고 한다.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부인과 딸을 데리고 야외 나온 김에 우리 집에 들렀다. 최 교수가 사온 샴페인을 마시며 가족끼리 얘기를 나누다가 밤 10시경에 헤어졌다.

 1998. 3. 20
 
  오늘은 수업이 없는데도 현대문학 연구회 때문에 학교에 갔다. 골드만에 대한 세미나였다. 수준 높은 토론인데 나는 어휘공부를 서둘러야겠다. 너무 재밌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내 토속적인 순연한 문체가 휘게 되었고 명성에 흠이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꼭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교단에서 내게 인사한다.

1998. 3. 21

  중앙일보 문화부장이 문호리 집에 왔다. 아내와 아랫집에 세든 금동원 화가와 함께 매운탕을 먹으며 이 부장이 서정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80년대 초 전두환을 옹호했다가 지탄을 받았고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는데 고은 시인이 서정주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입지 때문에 어쩌지 못한다는 말에,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서정주가 전두환을 100년 만에 나오는 장군이라고 한 것은, 서정주 같은 대 시인의 눈에는 12.12신군부사건이 막대기로 총싸움하는 애들의 전쟁놀이로 비쳤을 테고, 그래서 왕초 노릇하는 애한테 100년 만에 나올 법한 장군이라고 했을 것이다.”
  문화부장은 무척 반기며 즉시 “그 말씀 제가 보도자료에 사용해도 되죠?” 한다.
  사실 그랬을 것이다.「화사」같은 시를 쓴 대가의 마음에는 전두환이 정식 군인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서정주에게는 그런 현실이 초월적인 감성으로 비쳐져 순간적으로 ‘어린이들의 전쟁놀이’로 보였을 거라는 말이다. 대개 비현실적인 순수 예술성의(사회적 관점의) 허점 일 거라는 말이다.

  또, 김주영과 같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할까에 대해 내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자식을 지극히 사랑한 어머니의 치매로 말미암은 내 人生 역정의 한(恨) 때문에, 아무리 어머니를 작품에서 美化시키려 해도 안된다며, 그래서 김주영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부장은 정말 맞는 말이며 큰 깨달음이라고 한다.

1998. 3. 23

  태호가 저희들 서울예전 출신 그룹 작품들을 들고 왔는데 약점을 내가 잘 짚어준 대로 잘 고쳐서 “네 문장이 제일 좋다.”고 칭찬해줬더니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1998. 3. 25

  내 소설에 해설을 쓴 이화여대 김치수 교수의 글을 많이 읽어야겠다.

  조정래 초청 강연이 도서관 강당에서 있었다. 그는 내가 경희대학원에 다니는 것과 양평에서 잘 꾸미고 산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번 만나자고 한다.
  조정래에게 내 소설집『늰 내 각시더』를 보내주었다. 그가 나와 통하는 것은 민중주의였다. 내가 항상 생각해 온 것, 말 탄 장군은 역사에 남으면서 걸어다니며 싸우다 죽은 많은 사병은 왜 이름이 없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 생각과 같았다. 그는「아리랑」에서 유관순을 거론치 않았다고 했다.

  저녁에는 채호기(문학과지성사) 초청 그의 시세계에 대한 세미나가 있고 뒤풀이를 새벽 3시까지 했다. 채호기는 훗날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대표가 문지 식구들 10여 명을 데리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갈 때도 동석했다.

1998. 4. 1 

  아내가 소설 리포트 때문에 끙끙댄다. 새로 들여온 컴퓨터(한보 PC)로 새벽 4시까지 치고 잠도 못잔 채 대충 내 밥을 차려주고 학교에 갔다. 아내의 건강이 걱정된다. 공부 재미에 용은 쓰지만 젊은 애들과 겨루자니 힘이 부친 모양이다.

  아내가 등교하고 얼마 안 되어 박기동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수님 아주 열심이시죠? 가끔 형수님과 어울릴 테니 형님 그리 아세요.”
  나는 엉망진창인 아내의 소설을 손봐줬다.
  아내 작품 봐주랴, 아들 작품 봐주랴, 바쁘다 바뻐.

1998. 4. 10 

  경희대 교정에 벚꽃이 지고 있다. 본관에서 문리대로 가는 숲길에 눈송이 같은 꽃잎이 휘날린다.

  지난주에는 이틀간 조카 대희와 태호를 데리고 마당에 철쭉화단을 만들었다. 대희는 황소처럼 일하는데 마지못해 밖에 나온 태호는 한나절 끌쩍거리다가 “아버지는 만날 일만 벌이세요,” 하고 화를 내며 방에 들어가 버린다. 저런 것이 자식이라니!

1998. 4. 13

  아내가 내일까지 소설을 써가야 하는데. 엉망이어서 고쳐주다 보니 새벽 5시가 되어간다. 아내가 학교를 가얄 텐데. 꼬박 샜다. 아내 건강이 걱정이다. 아내는 눈물까지 흘린다.
  “나 학교 안 다닐래!”
  나는 아내에게 첫 시간을 까먹으라 하고, A4용지 1장반을 마저 고쳐주었다. 아내는 밥상을 차려놓고 학교에 가고 나는 포크레인을 불러 조경할 향나무와 은행나무를 옮겨 심었다.

  며칠 동안 나무를 심고 정원을 정리하느라 책상과 멀어졌다.

1998. 4. 23
 
   조경 공사를 마무리 중인데 갑자기 택시가 들이닥쳤다. 권택영 교수,  중앙일보 정규웅 국장, 임재걸 주간, 이경철 부장이었다. 얼른 작업을 끝내고 연못가와 서재에서 술을 마셨다. 

1998. 4. 24 

   현대문학연구회 시간에 신경숙이 연사로 참석했다. 그의 명성이 치솟고 있다. 나는 그녀와 국문과 사무실에 가서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비 오는데 수고했다고 하니, “비가 와서 더 좋은데요,” 한다.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 때도 마주보고 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올 때도 같이 먼저 나와 헤어졌다.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