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호리 집에 온 서울예술대 교수들
1998. 7. 22
동국대 철학과 구승희 교수와 석박사 과정인 김민호와 변양 등 11명이 하룻밤 자고 갔다. ‘하계수련회’ 행사로 3년 반 넘게 유지해 온 그들의 철학 공부 팀들은 낮부터 밤늦게까지 이태리 출신 팔미의 저서『해석학이란 무엇인가』를 텍스트로 삼아 열심히 공부한다. 나도 참여했다. 독일에서 공부한 구 교수의 명쾌한 코멘트가 좋았다.
요즘 내 작품에 대한 평이 실린 책으로는 신 교수의 평론집에 김용만론, <동서문학>에 실린 한 교수의 내 작품 평, <한국문학평론>에서의 이 달의 작품 재수록, <분단문학>에 실린 홍 교수의 내「은장도」 평, 고려대 출판부 <소설사전> 등이다.
1998. 7. 24
정호승 시인이 내게 우편으로 보내준『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베스트셀러인데 벌써 5만권에 육박한다고. 반가운 소식이다.
소설가 이선 부부가 다녀갔다. 그녀는 나와 소설공부 동료로 <동아일보> 중편 신문문예로 등단했다.
1998. 7. 28
경희대 캠퍼스에서 <한국문학평론>의 황경미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동서문학>에 발표한 내 단편소설『토각을 찾아서』가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재수록하기 위한 인터뷰이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 살로메와 니체 간에 오간 편지를 읽으며 내 옛 심정을 되짚어 보았다.
1998. 7. 29
내일 서울예전 김혜순 교수, 이광호 교수, 박기동 교수가 온다는 말에 아내는 오늘부터 집안 정리에 야단이다. 정말 소녀 같은 학생이다. 들꽃을 꺾어다 항아리에 담아 현관에 놓기도 한다. 아내는 김혜순 교수를 무척 좋아한다. 또 한창 평론에 별처럼 떠오르는 이광호 교수가 온다니 반가운 모양이다. 나로서는 나를 형님으로 부르는 박기동 교수가 반갑다.
1998, 7. 30
박기동 교수가 운전한 차가 오후에야 도착했다. 휴가철이라 차가 엄청 밀렸다고 한다. 김혜순 교수의 손에는 과자 선물 봉투가 들려 있었다. 우선 2층 서재로 올라가 시원한 주스부터 대접했다. 그녀의 시처럼 거침없는 말투와 미소에서 친절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고운 예의치례가 돋보인다.
강가 매운탕집으로 식사하러 나갔다. 나는 김혜순 교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오라고 했다. 그래야 아내가 대청소를 자주 할 거라고 하자 웃음이 번졌다.
김혜순 교수는 각계 종교인들, 심지어 무속인들의 모임에까지 참석한 적이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29세짜리 아리따운 무녀와 2박3일 동안 룸메이트가 되었는데 자기가 딸 하나를 두었다고 말할 정도로 영험한 그 무녀의 눈에 빨려들 것 같았다고 한다. 끼가 철철 넘치는 말이다.
“김 선생님 눈이 꼭 그 여자의 눈빛 같아요.”
김혜순 교수는 내 얼굴을 외면한 채 말했다. 아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신기가 흐르나 봐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광호 교수와 박기동 교수가 한바탕 웃었다.
내가 김혜순 교수에게 술잔을 권하자 그녀는 얼른 무릎을 사리며 술을 받았다. 사실 김혜순 교수는 보리회 모임에서도 구석자리를 차지한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 든 내 겸손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김혜순 교수(시인)는 훗날 독일 HKW국제문학상과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이광호 교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에게 술을 권하며 “여 선생”이라고 호칭하자 아내는 “학생인데 그냥 이름을 불러주세요.” 한다.
매운탕으로 점심을 마치고, 집에 와서 서재 맨바닥에 둘러 앉아 과일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신이 나서 김혜순의 시를 얘기하는데, 김혜순도 아내에게 시를 많이 써봤다고 칭찬했다. 학교에 다니니까 새롭게 실험적으로 쓰려는 자극을 받는다고 하자 김혜순이 내 단편「끌려가는 세계」를 읽었다고 한다.
김혜순 교수, 이광호 교수와 더 얘기하고 싶은데 박기동이 자꾸 서후리 오규원 교수 댁에 가자고 조른다.
1998. 7. 31
아내는 김혜순 교수가 왜 나에게 잘 대했는지 이상하다고 한다. 내 광기를 느낀 모양이라고 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현대문학연구회 세미나에서는 지마의「이데올로기와 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뒤풀이 후에는 새로 구입한 소나타 골드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장맛비가 쏟아진다. 팔월에 들어서는 매일이다시피 퍼붓는다.
1998. 8. 14
저녁 때 나는 속초에서 혼자 차를 몰고 미시령을 넘어 백담사에 갔다. 미리 절에 전화를 걸어 “만해시인학교” 행사장에 간다고 하니 길을 열어주겠다고 한다. 도착하니 마침 저녁 식사 중이었다. 유안진과 신달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임영조 양문규와 얘기하다 행사장에 참석했다. 행사장을 주도하는 김재홍 교수가 찾아와 나를 반기며 먼 길 왕림을 치례하고, 특별히 나하고만 술잔을 부딪혀주었다. 옆자리 교수들에게 송구했다.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진 시간인데, 나는 양해를 구하고 아내가 머물고 있는 속초 콘도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개울건너 산막으로 오라고 당부했지만.....
1998. 8. 20
서초동 대원식당에서 김준성 부총리의 책 출판 기념 모임에 참석했다. 박덕규 교수의 전화를 거절할 수 없었다. 김원일, 김주영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김 부총리의 IMF 얘기와 북한을 다녀온 주영 형의 얘기가 재밌었다.
새로운 내 일기장은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그림 (동서문학 230호)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걸로 시작된다. 특히 칼로의 그림들은 앞으로 내가 쓰려는 작품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1998. 8. 26
영어 대체 강좌를 경희大 국제 교육원에 신청하고 학생들과 뒤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의 기분이 몹시 달뜬 상태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 프린트를 해주어 읽어보니 아내의 시가 월등히 달라져 기대감이 컸다. 학교에서 시강의 시간에 김혜순 교수가 새로 편입한 학생 8명에게 수업방식을 여순희에게 물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편애를 받아 좋겠다며 자기 주위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나미 교수(문예사조 강의)가 어느 학생에게 여순희씨가 잔아(김용만) 선생 부인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이나미 교수는 러시아 문학 전공자였다.
1998. 8. 27
계간 <한국문학평론>이 배달되었는데, 내 단편「토각을 찾아서」가 재수록 되고, <계절의문학> 평론에서도 내 작품을 이청준 소설과 함께 다루었다.
최준웅이 다녀갔다. 정말 친한 옛 동창이다. 아내가 빚을 지고, 게다가 도박으로 모두 날려 집을 팔고 미국 아들한테로 가게 되었는데 내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고 한다. 둘이 옛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1998. 8. 29
경희대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30여 명이 하룻밤 자고 갔다.
소설에서는 내 장편『인간의 시간』이 세미나 텍스트가 되었다.
광주 하영이한테서 전화가 자주 온다. 자꾸 “하부지”를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받으면 하부지를 찾고, 또 “코- 자.” 하면 대답을 않다가 “하부지한테 오고 싶어?” 하면 “으응.”하고 반갑게 대답한다. 벌써 말귀를 알아듣는다. 얼마나 오고 싶어야 그럴까. 그놈의 간절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쥐어뜯는다. 얼마 전에 왔는데 또 보고 싶다.
1998. 9. 15
<21세기문학> 행사에 참석했다. 제2회 수상작으로 이문열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식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김원일이 나를 부른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다음 달 초 강연회가 있어 독일에 간다고 한다.
이문열과 2차 뒤풀이 장소에 가며 둘이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천 북악서원 일로 고민이 크다고 한다.
이문열이 내게 “대단하십니다.”고 한다. 내 나이에 경희대학원에 다닌다는 뜻이었다.
서울대 조남현 교수를 만나 심사위원의 편지를 받았냐고 물었더니 편집실에서 편지를 보내겠다 한다. 조 교수는 내가 경희대학원에 가는 걸 싫어하는 눈치였다. 훌륭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데 왜 학업이 필요하냐는 뜻이었다. 정말 고마운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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