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한 자아와 위선적 자아의 대척 상황
1998. 9. 24
경희대 조해룡(조해일 소설가) 교수와 저녁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 교수는 사람이 진솔해 좋다.
영어까지 하려니 정말 피곤했다. 나이에 비해 너무 무리하게 살아가고 있다. 입술이 헐었다. 이러다 쓰러질지 모르겠다. 아침 7시 반에 출발해서 오후 4시까지 계속 수업을 받고, 책을 보며 3시간을 기다리다가 밤 9시까지 영어 수업.
1998. 9. 25
고전 담당 고경식 교수 화갑기념이 열렸다. 석, 박사 논문 요지 발표가 끝난 뒤여서 학생들도 많이 참석했다. 연회장에서 김용성 소설가와, 이동희 교수, 이명재 중앙대 학장을 만났는데 이 학장은 내게 유현종씨를 강사로 초빙했다고 한다. 우리 집에 같이 가겠다고.
1998. 9. 30
숙명여대 김주연 교수의 평론집『가짜의 진실, 그 환상』을 읽었다. <문학과지성> 4인방인 김 교수는 내 작품을 무척 좋아했고, 내 첫 소설집『늰 내 각시더』의 해설을 썼다. 훗날 <서정시학>에 3년 연재 후 책으로 엮은『세계문학관 기행』이 출간되자 김 교수는 여기저기 모임에서 내 괴테 편을 자랑하고 다녔다. 자기도 독일에 유학한 독문학자인데 내 책을 칭찬하며 다녔다는 것이다.
제주도와 부산에 태풍 경보가 발령 중이라고 한다, 비바람이 덩어리처럼 굴러다니며 나무를 한 포기 한 포기 뽑아버렸다고 한다.
풀어짐의 미학에 빠져 살고 싶다. 모든 버림의 자세는 기존 욕망에서의 탈피, 그 빈자리에 새 욕망을 담는 순환론적 살이! 욕망의 그릇 자체를 깨면 그건 삶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다.
<창작과비평> 편집장 박지연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서정시학>에서 출간된 내 장편『능수엄마』해설을 썼다.
1998. 10. 5
어제 개천절까지 겹친 황금연휴를 맞아 지혜네가 올라왔다. 준영이와 하영이가 좋아서 야단이다. 그놈들은 장거리 여행인데도 차가 멈추자마자 준영이는 할머니를 외치며 달려들고 하영이는 제 아빠가 시트를 푸는 동안 두 손을 벌리며 “하부지”를 외친다. 너무너무 예쁜 것들.
추석 전날에는 나래까지 합쳤다. 준영이가 잠결에 나래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난다. “나래누나?” 하며 거실로 뛰어나간다.
며칠 동안 글도 못쓰고 학과공부도 못했다.
1998. 10. 9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소설어 사전>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내 작품에서 고른 낱말은 단편「보이지 않는 시계」에 나오는 “뻥꾸라”였다.
1998. 10. 10
서종에 있는 무궁화 묘원에서 <시와시학>사가 주최하는 박정만 시인의 추모제가 열렸다. 나는 거침없는 인신 공격자인 박 시인이 마음에 들어 그의 특집을 읽어 보고 싶던 참이었다. 그는 김종회 같은 인간을 싫어하는 솔직한 성미였다고 한다.
협신대학교 버스를 빌려왔는데 차가 서종까지 오는 동안 나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여러 사람이 말했다.
“여기서도 김용만 얘기, 저기서도 김용만 얘기죠.”
술상에서 이윤기와 김영석 등의 말이 재밌고, 서현준 시인의 노래에 그만 기분이 울컥했다. 이윤기와 <중앙일보> 문화부장 이경철은 우리 집에 와서 이야기하다가 새벽 1시 반 경에 돌아갔다. 이윤기는 나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의 말재간과 지식이 놀랍다. 내 책장에 꽂혀있는 그의 번역서만 해도『샤머니즘』,『장미의 이름』등이 있었다.
박정만 묘에 온 사람 중에는 정호승, 김영석, 박종현 형제, 홍용희, 박덕규, 박진숙, 문정희, 하응백, 이연철, 이원기, 홍희(용고 후배), 하재봉(문화비평가), 강웅식 등 경희대 출신이 태반이었다. 기자로는 이경철 등이 참석했다.
1998. 10. 15
김재홍 교수 시간에『70년대 북한 시 전개』논문을 맡아 요즘 자료수집에 끙끙댄다.
권택영 교수와 긴 시간 통화했다. 시대의 문예 흐름을 터득해야 한다며. 내게 유익한 사조 강의에 특별히 연락해준다고 했다.
1998. 10. 20
홍용희한테서『70년대 북한 시 전개』에 필요한 책(조선문학사)을 빌렸다. 본관 4층 대학원생 휴게실에서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은 앞으로의 문학 전망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내가 생각한 내용과 일치했다. 무의식의 세계, 자연의 미세한 생명체와 人間을 동일시하는 새로운 사상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의미 있을 거라고 했다.
4시부터 프레스센터에서 실시하는 “怡山文學賞 시상식”에 참석했다. 김원일의 “불의 제전”이 받았다.
<문하과지성사> 김병익 대표와 김주연 숙대 교수가 미국에 거주하는 마종기씨와 함께 양평 우리 집에 왔다가 문이 잠겨 그냥 갔다고 했다.
김혜순 교수를 만났다. 뒤풀이 뒤에 헤어질 때도 둘이 나왔다.
“책을 잘 받았습니다.” 한다.
1998. 10. 22
소설 수업이 끝나고 조해룡 (조해일) 교수와 둘이 순대국 집으로 갔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숍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올곧은 사람이다. 그는 진작에 교수를 그만두고 소설에 매달렸어야 했다. 그의 작품은 소설 지망생들의 필독서였다.
아까 수업 시간에는 “무진기행”을 공부했는데 발표자와 다른 학생들도 여자가 서울 데려다 달라는 욕망 때문에 몸을 주었다는 의견을 내가 바로 잡아주었다. 조해룡 교수가 내 말로 결론을 내린다.
솔직한 자아와 위선적 자아의 대척 상황. 외로움의 가치가 뭔지를 알면서도 현실의 중압에 못 이겨 그 외로움을 하나의 유희로 재단하여 자기실존을 확인해보려는 몸부림.
-내 메모에서
1998. 10 .24
중앙大 이동하 교수가 부인과 찾아왔다. 반가웠다. 그 역시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고.
1998. 10. 25
고려대 최 교수가 부인과 함께 와서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얘기하다 돌아갔다. 기분 좋은 분위기였다. 현재 협성대학교에서 강의 중인 부인이 자기 저서『영미시의 인식론적 연구』를 주었다.
서재에서 조용히 박이문의『현상학』을 읽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1998. 11. 13
현대문학연구팀에서 김명인 시인 (경기대 교수)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갖고 그와 술집에서 회식을 가졌다. 나는 겸손한 자세로 대하는 그에게 호감이 갔다. (훗날 김명인 시인은 <잔아박물관>에 <현대문학> 창간호 등 10여권을 기증했다.)
이미선 강사가 라캉에 대한 해설 프린트물을 주었다.
카프카는 사랑했던 여인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더러우며, 무한히 더럽다”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를 갈망하는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며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만이 그렇게 순수하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카프카는 글쓰기를 위해서 ‘순수’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려고 처절하게 투쟁했으며 문학의 제단에 자신의 전부를 바치고자 했다.
- 카프카와의 결혼
내 파멸은 고교시절 혜숙에게서 왔다!
하지만 김혜숙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1998. 11. 17
에로티시즘은 고독, 침묵, 극단과의 대면, 죽음과의 대면, 즉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의 제거로서의 에로티즘이며 공포, 죽음, 타자와의 대결방식이다.
신경숙이 어스름 속에(불빛) 우리 집 연못가를 거닐다 흰 개망초 꽃을 보며 “아! 저 꽃!”하던 그 목소리. 그녀의 몸이 꽃이 되는 순간이었다.
돌계단을 내려설 때 내 손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서던 모습. 그녀는 내 손이 되었다.
신경숙은 그리움을 “내 마음 속에 기른 헛것들(가족)”이라고 했다.
나는 왜 가족에게서 버림 받았다고 여겨질 때 즐거움이 느껴질까?
'연재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00회) (1) | 2026.01.13 |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9회) (1) | 2026.01.06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7회) (0) | 2025.12.16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6회) (1) | 2025.12.09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5회) (0) | 2025.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