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00회)

충남시대 2026. 1. 13. 15:39

잔아(김용만) 소설가

<문학과 지성사> 12명이 우리 집에 오다

식사 후 김병익 대표와 김치수 여화여대 교수와 직원들은 떠나고 정과리 연세대 교수, 채호기 교수, 이인성 소설가만 남았다. 그들 세 명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밥상에서 술을 마시며, 내 기구한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경찰생활과 임검소 생활과 무장공비 이승걸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높았다.
  잠시 쉬었다가 12시에 그들은 나와 아내를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두부 집에서 내 얘기를 들으며 식사하고 강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춘천옥 성공담을 들었다. 그들은 아내의 서울예전 교육 방법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의 우리에 대한 예의는 깍듯했다.
 어제 집에 올 때 김치수 교수가 이문열의 「변경」을 박스 채로 여직원에 들려 가져와 기증했다. 
 
  1999. 1. 29

  그동안 수차례 문인협회 가입 요청을 거절했지만 오규원 시인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에 힘입어 아내와 함께 가입했다. 30여 명이 모였는데 우리 부부에게 꽃을 달아주고 반색했다. ‘어린왕자’(황명걸 시인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국자 소설가가 찾아와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우리 집태(態)가 너무 환상적이라며 집태 덕(복)을 볼 거라고 감탄한다. 그녀는 이번에도 떨거지 모임을 싫어한다며 백을 실란하게 비난했다. 

  계속 작품만 쓰고 있으니 허리가 아프다. 큰일이다.

1999. 2. 2 

  “늘 패배주의자의 편에 서는 무명의 인물이 되고 싶었다.” 

  구조언어학자인 촘스키 교수의 말인데 정말 나와 똑같은 생각이다. 자유와 변형에 집착한 것도 나와 똑 같다.

  바타이유의『에로티즘』을 다시 읽다.

  나의 에로티즘은 종말론을 긍정하는 내 파멸적 요소에 기인한다. 나는 미쳐 살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결과에 대해선 모른다.

1999. 2. 5 

  모처럼 학교에 가서 “니힐리즘과 문학”에 대해 토론했다. 뒤풀이 때는 내 작품(중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까치 두 마리가 협력하여 이층 서재 앞 은행나무에 집을 짓는다. 벌써 두 달째다. 나무를 물어다 놓칠 때도 있다. 내 삶과 같다.

1999. 2. 13

  설날이다. 눈이 하얗다. 태호네와 유라네가 와서 차례를 지내고 놀다 갔다.

  이산문학상을 받은 박상우의『내 마음의 옥탑방』을 읽었다.
  김원일 소설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만나고 싶다는 말이었다.
 
1999. 2. 20 

  20여 일 동안에 300장 중편을 끝냈다. <문학과지성>에서 다녀간 후로 급조한 것이다. 발표 매수가 적어 분량 많은 걸 쓴 셈이다.

  오후. 뜻밖에 경기대 교수 팀들이 왔다갔다. 김정오 교수는 나와 종씨다.

  밤 7시부터는 김원우가 계명대 교수로 발령을 받아 서초동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김원일이 문지에서 책 나올 거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어느 여자가 한 말이라며 “늬가 여자를 많이 상대한다더라” 한다. 탤런트 안옥희를 두고 한 말이었다.

1999. 2. 23

  아내에게 내가 쓴 중편을 읽게 시켰더니 아내는 “남편이 아내의 정부인 강도를 좋아한 부분이 싫다.”고 한다. 

  요즘 소설을 쓰느라 잠이 안 오고 몸이 말이 아니다. 새벽 3시까지 쓴다.

1999. 2. 25

  오늘 아침 7시 26분에 내 손자가 태어났다.

  신경숙한테서 책이 왔다. <문학과지성>에서 나온 소설이다. 신경숙은 한국 최고의 작가로 평을 받고 있다. (훗날 표절문제로 말썽)

1999. 2. 26 

  이봉일은 내 중편『잔인한 단풍』을 한번 짚어 볼 작품이라고 했다.

  <문학과 의식>에 내 작품이 나와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안혜숙 대표 말에 편집위원 모두 내 작품을 칭찬했다며 새로운 기법이라고 했다.

  스탠드를 켜놓고 작품을 쓰는데 무당벌레가 노트북 화면과 책상과 책과 메모지와 심지어 내 손에까지 기어 다녀서 골치가 아프다. 죽일 수도 없고.

  신경숙 소설가가 보내준 장편소설『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 김용선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아마 나를 생각한 것 같다. 착할 善자겠지.

  내 습작품을 읽어본 아내가 애정관계를 더 넣으라고 한다. 그래서 더 집어  넣었다. 아내를 자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1999. 3. 11
 
  연세대 정과리 교수에게 단편『속도에 관하여』를 송고했다. 
  <문학과 지성> 김병익 대표에게 4月 중으로 약속한 책 원고를 보내겠다고 전했다.

1999. 4. 1

  고려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교수 휴게실에서 송하춘 교수를 만났는데 나보고 자기 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너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송 교수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초동 도이치 하우스에서 김원일 등과 술을 마셨다. 오래간만에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와 홍익대 정호웅 교수를 만났다. 2차로 노래방에 가는데 김정환이 나를 잡고 가지 말라고 조른다.

1999. 4. 2

  정과리 교수한테서 A4 용지 1장 반 가까이 되는 편지가 왔다. 내가 보내준『속도에 관하여』에 대한 평이었다. 
  고맙다는 전화를 했더니 문지 근처 술집에서 매주 금요일에 만나니 오시라고 한다. 이당 양국 2층 “예술가”

1999. 4. 5

  식목일 연휴다. 정서방이 주말을 이용해서 준영이와 하영이를 데리고왔다. 

  고려대 김화영 교수 부부가 그의 여동생(동국대 부총장 부인)과 함께 찾아와 내 서재에서 얘기하다 아내까지 합류해서 식당에서 술까지 마시며 오랜 시간 얘기하다 헤어졌다.

1999. 4. 9

  마포 <문학과 지성사> 근처 카페 <예술가>로 갔다. 정과리 교수가 얘기한 곳이었다. 거기에서 직원들과 정과리, 성민엽 서울대 교수, 우찬제 서강대 교수,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 채호기 교수 등 유명 평론가들과 어울렸다. 특히 채 교수가 나를 정답게 반겼다.
  12시 넘어 정과리를 태우고 오다 청담동에 내려주고 문호리 집으로 향했다.

1999. 4. 27

  오늘이 아버지 제사여서 난생 처음 선우가 할아버지 댁에 왔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며느리가 제사음식을 장만 하는 동안 나는 나래와 선우를 돌봤다. 얼굴이 나를 많이 닮았다.
  나래가 내일 소풍간다고 해서 3만원을 줬다.

1999. 4. 28

  처음으로 <문학과 지성사>에 갔다. 김병익 대표를 만나 원고를 넘겼다. 그는 내일 모두 모일 때 오라고 했지만 나는 오늘 둘이서만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김주연 숙대 교수가 내 작품이 좋다고 했다고. 함께 40여 분 얘기하다 헤어졌다. 5월 중순까지 결과를 얘기해주겠다고.
  김병익 대표는『늰 내 각시더』와 같은 작품을 원하는 것 같았다.

1999. 5. 2

  양평문인협회에서 詩 낭송회가 있었다. 안식구가 시를 낭송했는데 잘했다.
 칭찬이 자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