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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01회)

충남시대 2026. 1. 20. 14:15

잔아(김용만) 소설가

다른 곳은 거리에서의 미래이다

 

신달자 시인, 허영자 시인, 김종철 시인, 박범신 소설가 등이 밤늦게까지 우리 집에서 놀다갔다.

1999. 5. 10

아내가 학교에서 오더니 시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신나게 얘기한다. 오규원 시간에 아내가 칭찬을 들은 모양이다.
유미리의 “골드니시”를 읽었다. 14세 소년이 아버지를 죽인 소설이다.
빅톨 위고의『레미제라블』을 다시 읽어본다.  
경희대 앞 식당에서 스승의 날 점심상이 차려졌다. 석박사과정이 모두 참석했다. 내 상에는 조해룡 교수(조해일 소설가), 서정범 교수, 김진명 교수, 그리고『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인 조세희 소설가가 앉았다.
오후에는 조해일 교수실로 갔더니 조세희 소설가와 심사를 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조세희 소설가가 또 김병익씨와의 관계를 물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내 원고를 달라고 했다는 말을 싶토했다. 그는 내 말에 의미 있는 말을 보탰다.
“『늰 내 각시더』에서 앞부분 때문에 어찌 뒤를 읽겠어요.”
여기에서 앞부분이란 『늰 내 각시더』의 <작가의 말>을 의미했는데 아마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1999. 5. 19

고려대 김화영 교수가 학생 (불문과 석, 박사 과정) 15명을 데리고 1박 코스로 집에 왔다. 김 교수와 우리 부부 셋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점심은 두부 집에서 박사과정 하고만, 내가 점심을사고, 저녁은 그들이 만든 음식과 고시로 뒷방에서 함께 먹었다. 밤에도 김 교수와 얘기하고 나서 나는 작품을 쓰고 그는 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는 늦게야 내 서재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산책했다. 아침은 아내가 차린 밥으로 주방에서 셋이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에게 미셀 프르니에의『방드르디....』를 소개 했다. 
김 교수는 나보고 6월 중순 쯤은 한가하니 중편을 보내 달라고 한다.
“다른 곳은 거리에서의 미래이다.” 
김 교수의 저서에 쓰인 글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질리도록 묘사해야 한다. 섹스도 질리게 묘사하면 섹스감정이 극복된다.”
이야기 중에 내 작품에서 나무와 SEX하는 장면이 있다고 하니『방드르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1999. 5. 22

유라가 정서방과 다툰 모양이다. 허리가 아픈데 친구 함지기로 서울에 간다고 하니 화가 난 모양인데 결국 정서방이 졌다고 한다.
연세대 정과리 교수와 통화했다. 그날 밤 잘 들어가셨냐고 반가워한다. 정 교수는 훗날 장흥군에서 설립한 <이청준 문학관>을 운영하게 되었다.

1999. 5. 23 

며느리의 전화로 내일이 내 생일인 걸 알았는데, 오늘 태호네 식구들이 오리고기를 사들고 왔다.
선우가 무척 예뻐졌다. 나래도 학교에 다니더니 달라졌다.
아내와 여섯 식구가 연못가 향나무 그늘에서 태호가 불을 지펴 구운 고기로 밥을 먹었다. 

1999. 5. 24 

비가 내리고 있다. 
중편을 고치고 있는데 김원일한테서 전화가 왔다. 김병익 문지 대표와 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며 자연이나 영악해진 시골사람, 몰래 폐수를 버리는 등의 고발소설을 쓰라고 한다. 내가 환상을 얘기하니까 금물이라고 한다.

1999. 5. 26

유라가 허리 치료 차 애들을 데리고 집에 와 있다. 하영이가 단 1분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잠을 자다가도 나를 찾는다. 아빠 대용품이다.

1999. 5. 27 

조세희 소설가가 내 용고 후배 홍의와 복도에 서 있다가 나를 보자 각별히 대해준다. 강의실로 들어가니 어느 여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조세희 선생님은 어쩌다 특강만 하는 게 좋겠어요. 그분의 강의는 감정적이고 작위적이에요.“

1999. 5. 28

결석을 않던 아내가 유라 때문에 벌써 두 번이나 결석하고 병원에 데려갔다. 유라가 너무 아파  오늘은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가보았다. 치료를 마친  후에 다섯 식구가 집에 오다가 양수리에서 돼지갈비를 먹었다.
아내는 준영이와 하영이를 어떻게 따돌리고 과제할지가 걱정이었다. 그놈들은 소설을 개작하는 내 방에도 들락거린다. 하영이는 할아버지뿐이다.

1999. 5. 29

일요일 아침이다. 용고 동창 이성렬한테서 아침 7시 반에 전화가 왔다. 어제 유라 일로 이형구 박사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전화한 모양이다. 성렬이와 마침 내가 생각하던 “착한 사람”의 사회적 의미와 해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같은 인물을 꾸미고 싶었다.

1999. 5. 30

하영이 입에 “할아버지”가 붙어있다. 뻔질나게 2층 책상에 찾아와 “안아줘요” 한다.
하영이를 안고 노트북을 쳤다. 한참 소설을 쓰다보니 그놈이 내 품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아래층에 안아다 재우니 또 깨어나 울며 할아버지를 찾는다. 또 안고 노트북을 쳤다.

1999. 6. 5

토요일이다. 동국대 홍기삼 교수와 20여 명이 자고 갔다. 그들은 역시 공부에 열심이다. 밤 1시까지 realism에 대해 공부하고 캠프화이어에 들어갔다. 나는 홍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1999. 6. 10

아내의 실력이 팍팍 늘어간다. 오늘은 남진우 교수(신경숙 소설가 남편) 시간에 구조주의와 신화비평에 대해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요즘 내 일과는 2층 서재에서 作品을 쓰고, 정원을 손질하고, 열린 창으로 스며드는 수목 향기를 맡는 것이다. 아래층은 향기가 더 자욱하다. 옛날에 마니산에 올라갔다가 맡았던 향기다. 바다냄새와 나무냄새가 섞이면 그런 향기가 나나보다 했는데, 지금 그런 향기가 집안에 진동한다. 북한강물과 나무냄새가 섞여도 마니산에서 맡았던 향기와 같아지나보다. 바람이 살랑거려서 숨어있던 향기가 날리는 걸까?
중편을 완전히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고쳐 쓰고 있다.

1999. 6. 17

유라가 디스크 수술을 받으려고 마취상태로 침상에 누운 채  수술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준영이를 데리고 내려 수술실 근처에 이르자 인부가 “김유라씨 보호자”를 찾았다. 을 때 나는 마침 준영이를 데리고 아내가 유라를 돌보고 있는 수술실로 들어가려든 참이었다. 유라를 침상에 뉘어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오던 인부는 나를 보자 보호자냐고 물었다.
눈을 감은 채 아직 의식이 덜 깨어난 딸을 보니 울컥 슬픔이 치밀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9층 특실 (독방 5호)로 향하는 인부 뒤를 따랐다. 간호원과 우리가 채용한 아줌마와 넷이 유라를 침대로 옮겼다. 간호사가 아플 텐데, 한다. 아줌마도 일을 잘 처리한다. 그녀는 여군 중사였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애들을 데리고 6시쯤 집에 왔다. 차라리 유라 혼자 놔두는 게 낫다는 아줌마의 말이었다. 아줌마는 24시간 돌봐주기로 했는데 하루에 45,000이다. 비싸다. 입원비도 하루에 80,000원 최고의 입원비다.

1999. 6. 18 

집에서『방드르디....』를 읽고 있는데 김병익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음주 수요일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반갑다.
매일 마당 풀과의 전쟁이다.

1999. 6. 23

<문학과 지성사>에서 오후 2시에 김병익 대표와 이야기했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줘 고맙다. 몇 군데는 잘못 읽은 곳도 있다. 오레스테스에 대한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늰 내 각시더』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다시 써달라고 한다.

1999, 7. 3

밤늦게 TV 영화를 보고 나서 유라를 불러서 얘기를 했다. 아빠가 소망했던 것을 제하고는 모두 4등분 (나래, 준영, 하영, 선우) 하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되도록 해놓았냐고 한다.
자식들은 아빠의 마음을 모른다. 나는 왜 이런 정서를 갖고 있을까? 깊은 사유세계를 갖는 자식이 그립다.


기 (제10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