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 밀레니엄 경축행사에 들뜬 세계
택시기사가 달리는 택시에서 메모철을 내놓으며 뭐든 한 말씀씩 써달라고 한다. 나도 할 수 없이 몇 자 써주었다.
“한라산 엉겅퀴 빨간 잎새 일출봉 해를 닮았네.”
세 사람 모두 내 글이 멋지다고 한다.
1999. 10. 18
박주택 시인이 오랜만에 찾아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은 특명을 받고 왔습니다. 홍용희, 이봉일과 늘 선생님 얘기를 했는데, 왜 학교에 안 나오시는지 그 이유를 캐봐달라고 했어요. 그러니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세요.”
박주택의 말이었다.
1999. 10. 20
김윤식 교수가 보내준 『천지 가는 길』을 읽었다. 지성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다.
1999. 10. 24
일요일이다. 어제 이경철 기자가 와서 “중앙일보 사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김화영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부인과 함께 찾아 오겠다고.
아내와 다섯이 삼회리 ‘어부의 집’에서 매운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대는 김화영 교수가 몰래 계산했는데 맛이 좋다고 했다.
내 차로 설악을 거쳐 유명산을 지나 중미산 언덕에서 누런 단풍을 보며 또 술을 마시고 중미산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김 교수는 프랑스 작가 발작에 대해,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즙에 대해 이야기했다. 발작 200주기 기념행사를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갖는다고 한다.
모두 우리 집에서 밤 10시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진 뒤에야 헤어졌다.
1999. 10. 29
행복이라는 것.
나무들을 넉넉한 공간으로 옮겨 심고, 그늘 집에 돌을 깔고, 윗밭 경계선에 잣나무를 줄지어 심고, 물을 주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소나기가 서너 시간 동안 퍼부어 물을 주고 땅을 다져주었다.
샤워하고 나서 ‘칼 포퍼’에 대해 읽었다.
이인성 작가가 소설집 『강어귀에 섬 하나』를 보내주었다.
1999. 10. 31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대학원생 18명을 데리고 왔다. 박찬 문화부장도 동행했다. 박 부장은 모처럼 형님 댁에 왔다며 좋아한다.
하룻밤 자고 이튿날 학생들과 아내와 함께 수종사에 올랐다. 처음 가보는 사찰이다. 기막힌 전경이다.
1999. 11. 12
학교에 제출할 아내의 소설에서 주의할 점을 지적해 주었다. 아내는 학생들한테서 소설 쓰라는 말을 들었다며 기뻐하지만 아직 기초문장부터가 까마득하다. 하지만 열심히 가르쳐서 소설가로 키우고 싶다. 내가 쓰지 못한 순수작품을 쓰게 하고 나는 읽힐 책만 쓸 참이다.
교보문고에 책을 주문했다. 내 작품『인간의 시간』과『늰 내 각시더』가 거기에 입력되어 있었다.
1999. 11. 17
중앙대 대학원생들이 이명재 학장 인솔로 두 번째로 와서 하루 자며 공부하고 갔다. 이 학장의 부탁으로 나는 석박사과정이 쓴 소설을 읽고 한 시간 가량 평해주었다. 총체적인 것, 구체적인 것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구성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었다. 학생들은 열심히 메모하고, 교수는 고맙다며 여러 번 칭송했다.
신춘문예 출신 평론가들 중에서 손종오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분발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창피합니다.”
이 학장은 박사 심사장에서 동국대 홍기삼 교수를 만났다며 홍 교수가 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더라고 했다.
아랫집 금동원 화가가, 데이콤 달력에 내 그림을 넣었다고 한다. 그녀와 얘기 중에 외손주와 친손주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나는 외손주들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친조부모는 이성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다루고 외조부모는 감성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이며 시집 간 딸에 대한 연민과 정한이 외손주들에게 작용해서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해명했다.
1999. 11. 21
애들을 데리고 2박 3일 동안 하회마을에 다녀왔다.
어제는 厚黑列傳을 읽었다.
厚黑學, 어쩌면 그렇게 이종오는 나와 같을까!
나는 진작 후흑에 통달했어야 했다.
..... 낯가죽이 두껍지만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커멓지만 색체가 없는 것.....
- p32
1999 12. 3
아내가 요즘 EBS에서 매일 강의하는 김용욱의 태도를 보고 웃는다. 말투, 제스처, 음정까지 나와 닮았다는 것이다. 강의 제목은 ‘노자와 21세기’였다.
6년간 학교 수업을 받느라 뒤죽박죽이다. 古書를 읽으며 머리를 정리해야겠다.
이성선 시인은 나와 한라산을 오를 때 휴지와 깡통을 주워 비닐봉투에 담았었다. 진정한 시인이다. 그는 나를 진실한 문인이라며 좋아한다.
1999. 12. 4
오랜만에 보리회 모임에 참석했다. 서초동 뱅뱅 사거리 근처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니 정소성 국민대 교수, 유만상 작가 등이 “형님!” 하며 반색한다. 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가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달려와 인사한다. 그리고 신입회원(서울大 국문과, <문학동네> 등단)을 내게 소개해준다. 그 모습을 옆에 앉은 김원일, 홍상화, 오양호 등이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서 아내가 기다리는 바람에 식사만 하고 나왔다. 서초동집 안채세입자를 내보내는 날이었다.
1999. 12. 20
며칠 동안 서초동 집을 8억 3천만 원에 팔고 부동산을 보러 다니느라 바빴다. 아내와 매일 외출이다. 어제는 덕소에 있는 여관을 계약까지 했다가 파기했다.
지난 목요일에는 소설가협회가 주최하는 양서종합고교 강연을 끝냈다. 교장, 교감 등과 식사했다. 교장이 수고비라며 10만원을 넣어 줬는데 가난한 학생을 위해 써 달라 했지만 막무가내는 바람에 받아야 했다.
1999. 12. 23
TV에서 인터넷과 테크노 댄스, 랩 음악에 대한 프로를 보다가 이층 서재로 올라갔다.
02시,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정원에 달빛이 바삭거린다. 가루가 될 것 같은 서릿발 달빛. 저 하얀 달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 속에 묻히는 죽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1999. 12. 24
덕소에 163평 상가터를 6억 3천만 원에 계약했다. 2003년에 전철이 개통되는 역세권에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지역이다. 이제는 투자성보다 환금성이 아쉬운 처지라 상가 자리를 택했다.
1999. 12. 25
X-MAS다.
갈등이 많았다. 너무 죽음에 집착한 시간이었다.
태호의 주식투자를 막으려고 그 애의 주식을 모두 인수했다가 모두 손해보고 팔아치웠다. 자식이 근로정신은 없고 한탕주의라서 아주 인연을 끊을 참이다.
1999. 12. 28
노희준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에 와서 글을 쓰며 “선생님 지도도 받고 싶다”고 했다. 박사과정에서 가장 유능한 학생이라 오히려 내가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왜 나한테는 노희준 같은 자식이 없는가!
1999. 12. 29
반년 만에 경희大에 들렀다. 도서실에서 이봉일을 만났는데 박사학위가 통과되어 논문을 출판사에 맡겼다고 한다. 이성천 등과 넷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봉일은 나에게 박사학위 마치면 강의를 맡으라고 한다.
1999. 12. 30
홍용희가 아내 한강(훗날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집에 찾아왔다. 눈길이 얼어 차를 아랫집 카페(화실)에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왔다고 한다.
한강은 우리 부부에게 책을 증정했다.
두 부부가 삼회리 강가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용희는 나보고 출판사를 차리라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출판에 저극적이었다. 자기 작품을 실을 수 있었다.
한강은 아내에게 젊고 인상이 좋으시다고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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