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04회)

충남시대 2026. 2. 10. 15:06

 

잔아(김용만) 소설가

아부심벨 답사와 백사막 흑사막 체험

1999. 12. 31 

  NEW 밀레니엄을 경축하는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야단이다.
  불꽃, 불꽃, 불꽃, 온 세계가 불꽃잔치다.
  20세기의 마지막 지는 해를 보기 위해, 또 새천년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동서해안에 몰렸다는 뉴스다.
 광화문 앞에서는 큰 송년 행사가 펼쳐졌다.
 千年의 시간개념!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만져지지 않을 캄캄한 어둠 같다.
  유라네 식구가 군산미군비행장에서 올라왔다.

2000. 1. 1

  새천년!  21세기의 시작이다.
  연일 새천년맞이에 TV가 시끄럽고 세계가 시끄럽다.
  1월 1일자 신문을 보관했다. 1세기보다 1천년의 여울목이어서 지금의 상황을 훗날에 보여주고 싶었다.

  새천년은 내가 감촉할 수 없는 태초(太初) 같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조작되는 사이버 시대, 우주여행과 불로장생이 예상되는 시대, 인간이 변질되는 시대? 아니, 인간이 아주 사라지는 시대? 사람을 낳기 싫으면 애완동물처럼 AI가 만든 인간을 키우다가 드디어는 창조주가 만들었다는 인간은 소멸될지 모른다.
  그처럼 모든 게 사라지면 숫제 개운한 생각이 든다. 내 존재의 이전 같다. 완전한 무의 세계다. 얼마나 깨끗하고 개운한가!
  그러니 새천년은 내 시간이 아닌 것만 같다. 그 낯선 시간에서, 그 캄캄한 공간에서 내 좌표를 어떻게 찾을까?

2000. 1. 2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일 년을 지나고 보니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하지만 결국 문학인생을 살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뿐이다. 업을 새롭게 구상할 수도 있다. 언제나처럼 복합구상이다.

 정 서방이 인터넷을 가르쳐준다.
 태호한테서는 주식을 배웠다. 태호가 집을 날릴 지경이어서 내가 대신 대든 게 잘못이다. 

  유라네와 태호네와 10식구가 고기를 구워먹었다. 낮에는 드라이브를 하고 강 건너에서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천호동 현대백화점에서 나래와 준영이 생일선물을 샀다. 인형과 로보트다. 밤에 유라네와 작별하고 아내와 집으로 왔다.
  
2000. 1. 3

  서종면장이 인사차 집에 왔다. 가루개에 운동장과 공연장을 건설하는데 내게 운영에 대한 조언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2000. 1. 4

  난생 처음 증권에 투자했다. 연습 삼아 2000만원을 현대증권에 위탁 투자하고 우선 삼성전자 70주를 샀다. 주당 305,500원. 상한가에 샀다. 올해 시무식을 겸한 객장이어서, 더구나 처음 증권회사를 찾아간 터라 구경거리가 많았다. 눈을 두리번거리는 고객마다 도박꾼처럼 보여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침 10시에 아내 태호와 셋이 지난 달 11월 구리에 개장한 현대증권에 찾아가 태호의 어드바이스를 받아 3급수했던 것이다. 아침나절만 해도 32만원 대였는데 점심 때 상한가를 친 것이다. 내 처음 투자는 오를 때 매수한 셈이다. 집에서 저녁 뉴스를 들으니 30%가 넘는 상승세를 보였다며 야단이다. 내일 오를지 내릴지, 또 한번 웃어본다. 장난 같다.
  태호는 지난 연말(마지막 날)에 빚을 내어 구입한 삼성전자가 15% 뛰어서 200만원을 받았다며 흥분한다.
  밤에 주식에 대한 잡지를 읽어봤다. 현재 1000만원 대. 앞으로 4년 반 내로 5000대를 바라본다고 한다.

2000. 1. 5

  미국 다우지수의 하락(달러 금리 인상설)으로 생전 처음 투자에 벼락을 맞았다. 28만원대로 곤두박질쳤다.
  다행인지 모른다. 마음이 즐겁다. 덕을 봤으면 두려움이 느껴졌을 텐데 덤덤하다. 전화위복의 기회로만 살아온 내 체질 탓일까?

2000. 1. 13

  비가 내린다. 코스닥이 폭락하는 바람에 성미전자(3000주 매입)가 폭락했다. 태호가 1000주를 과욕 부린 게 더 손실을 가져오게 됐다. 하지만 나무라진 않았다. 삼성물산 주도 내 생각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몇 백 만원 벌었을 텐데.

  밤에 KBS2 TV의 <그 소녀의 얼굴> 프로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소녀의 불행이 가여워서가 아니라 내 원죄가 가여워서였다.
  옛날에 <지리산 괴처녀>란 영화를 보고 얼굴에 혹이 난 그녀의 얼굴이 보편적이라면 외려 정상인의 얼굴이 흉하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17살인 김미학의 얼굴은 눈동자와 입과 턱이 너무 흉물스러웠다. 그녀의 수술과정이 TV프로 테마였다.

 내 죄는 뭐냐?
 내 원리의식은?
 기독교적 원리가 아닌 내 원리는?

2000. 1. 14

  태호를 데리고 구리로 가서 현대증권에서 대우증권으로 위탁거래를 옮기고 카드를 바꿨다. 태호는 성미주식을 몇 백 만원 밑지고 팔자고 한다. 나는 손해 보는 김에 그냥 놔두자고 했다. 그놈은 병이 날 지경이다. 그놈이 불쌍하다. 왜 내가 저렇게 키웠던가? 내 죄다.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말자! 끝내자! 4억을 날렸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2000. 1. 15

1월 15일부터 23일까지는 아내와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다녀왔다. 임헌영 평론가가 강의하는 현대문화센터 행사에 동행했다. 이집트와 터키는 아내와 함께 여행한 적이 있지만 아내는 그리스가 처음이어서 다녀왔다.(일기는 수첩에)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투숙했다.   

2000. 1. 16

  조식 후 이집트박물관과 구 시가지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후에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피루스 제작상가 등을 관람했다.

2000. 1. 17

  카이로에서 룩소(옛날 테베)로 이동하여 전일 왕가의 계곡, 합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관람하고 중식 후 카르낙신전, 룩소신전 등을 관람하고 카이로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었다.

2000. 1. 18

  조식 후 카이로에서 아테네로 이동하여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박물관 및 파르테논신전을 관람했다.  
  아크로폴리스! 높은 도시란 뜻의 그 언덕 신전 앞에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知와 學에 대한 절실함이 육신을 닥달할 때마다 그 보지 못한 언덕은 불꽃이 되어 타올랐던 것이다.
  오죽해야 내가 20대 때 사용했던 호를 “에테르”(달라스)라고 지었을까!
 대통령관저, 올림픽스타디움, 산티그마를 관광했다.

2000. 1. 19

  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크레타섬에 도착했다. 크노소스 궁전, 고고학박물관, 모르시니의 분수, 성마르코 대성당 등을 관람했는데 나는 무엇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네댓 명이 별도로 무덤에 올랐다. 나는 무덤 주위를 세세히 살펴보았다.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떠올려본다.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신앙적 훼손은 아닌 듯싶다. 작가 역시 악마의 유혹임을 깨닫게 하여 하느님 세계로  귀의시킨 게 아닌가!
  요한복음 20장에서처럼 돌무덤에서 부활하신 새 육신을 처음 현시하신 사람은 수제자 베드로도 아니고 가장 천대받는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가! 나는 심심이 깊은 막달라 마리아를 진실(眞實)의 실체라고 주장해왔던 것이다.

2000. 1. 20

  호텔을 출발하여 아테네 공항으로 이동한 후 출국수속을 마쳤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로마의 선벽과 히포드럼, 블루모스크 등을 관람하고 저녁식사 후 호텔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