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닦이나 하지 뭐 하러 교수하느냐
1999, 7. 4
나는 내 運命의 공격에 의하여 죽는다. 인생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 욕망. 그 허무극복의 방편에 목매오다가 그것이 헛수고임을 깨닫자 죽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죽어야한다. 내 모든 삶의 총체가 스토리다. 스탕달의『적과 흑』을 다시 읽었다. 나도 꿈을 안고 죽을 수밖에 없다.
.....결국 꿈을 꾸면서 죽어가는 것이 내 운명이로군.
.....진정에서 우러나온 말인 경우에는 그만 맥없이 감동되어 목소리가 변하고 눈물마저 흘리게 되거든. 때문에 냉정한 사람만이 날 멸시한 일이 비일비재였어.
- 쥘리앙 소렐
(나와 똑같다)
1999. 7. 10
문학? 그것이 내 허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한계가 왔다.
절망! 삶의 의미가 없다. 차선책이 없다.
1999. 7. 14
해질녘에 아내를 데리고 연못가를 거닐었다. 뒷산 사랑재 날망에 묻어있는 노을이 환상적이다. 나는 짙은 수목에 묻어있는 그 노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값을 느낀다. 저토록 몸서리쳐지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획득한다.
앞산에서 처음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매미소리 같지가 않다. 시끄러운 저 소리는 뭘까?
1999. 8. 2
그동안 한 줄 쓰지 못하고 읽지도 못하고 먹고 자고 고민만 했다. 60살이 되고 보니 갈등이 크다. 물론 소설은 쓰겠지만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다.
더욱 숨어 살고 싶다.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너무 욕망이 컸던 탓일까? 너무 자존심이 강하고 엘리트주의에 빠진 탓일까?
아내가 1등을 해서 등록금이 전액 면제다. 8과목 중 A+가 4개 A가 4개다.
1999. 8. 6
중국 연길을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일찍 집결했다. 일본에서 온 교수 문인 14명과 (김윤씨 인솔) 한국 측에서 서울대 김윤식 교수, 동국대 홍기삼 교수(훗날 동국대 총장), 장영우 동국대 교수, 홍용희 경희대 교수, 카이스트 최 교수 등과 우리 부부였다. 중국팀은 연길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누가 반갑게 달려와 인사하길래 누군가 했더니 바로 김윤 작가였다. 그는 몇 년 전 임헌영 평론가와 일본에 갔을 때 친하게 지낸 사인데 일본팀 대표였다.
이번 행사는 평론가협회(회장 홍기삼 교수) 주최로 일본, 중국, 한국 교수와 문인들이 모여 동북아시아문학에 대한 세미나를 갖고, 강경애 문학비 제막식을 갖기로 한 행사여행이었다. 행사장에는 칭하대 등 중국 측 교수들이 다수 참석했다.
연길 대우호텔에서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있을 때였다. 주최측 대표이며 평론가협회 회장인 홍기삼 교수가 일어나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민망한 말을 했다.
“오늘 이 행사에 특히 서울대 김윤식 교수님과 김용만 선생님 내외분이 참석하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늦깎이 작가인 나를 그처럼 예우하다니!
행사가 끝나자 기념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모두가 김윤식 교수와 찍고 싶어 야단이었다. 특히 경희대 김00 교수의 아부하는 꼴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다녔다. 나중에 자금성과 천안문을 관광할 때나 백두산 관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김윤식 교수와 어울리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그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말을 붙인 쪽은 김윤식 교수였다.
“김형은 담배를 끊었어요? 부부 여행이 참 보기 좋아요”
그가 처음 내게 붙인 말이었다. 호텔 로비에서도 내가 앉은 자리로 와서 말을 붙이곤 했다. 백두산을 오를 때도 우리 부부와만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백두산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우리 부부는 일행과 떨어져 두만강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이번 행사에 총무를 맡은 동국대 장영우 교수였다.
“김윤식 교수님이 선생님을 찾으세요.”
촬영하던 곳에 가보니 아직도 여러 명이 김 교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사진 한 장 찍읍시다.”
김윤식 교수가 내게 말했다. 모두 차례를 우리에게 양보해주었다. 김00는 아직도 김 교수 주변에서 아부를 떨고 있었다.
일본팀 인솔자인 김윤씨가 내게 말했다.
“김00의 아부는 구역질이 날 지경이에요.”
그러니까 장벽폭포에 갔을 때였다. 모두 온천장으로 간 상태에 일본인 몇 명과 우리만 버스에 남았다. 온천장에 가기 싫어 버스에서 쉬고 있는데 김00가 억지로 쉬는 팀을 데리고 갔다. 김00는 온천탕으로 들어선 김윤식 교수의 신발까지 정돈해 줬는데 그 꼴을 본 김윤 작가가 꾸짖었다.
“구두닦이하지 뭐 하러 교수하느냐”
김윤 작가는 내게 김00을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말했다.
김00는 자꾸 우리에게도 아부했지만 나는 일부러 멀리했다.
1999. 9. 5
오랜 동안 책상에 앉지 않고 정원만 손질했다.
<시사랑 문화인협의회> 주최 사랑방 모임이 은행회관에서 열렸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을 다뤘는데 뷔페를 먹을 때 유안진 시인과 정호승 시인이 내 좌석을 찾아와 인사했다.
1999. 9. 8
아침 9시 반 경에 광주에서 형철, 안나의 전화가 오고. 박덕규 교수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광주대학교 예술대학장인 조태일 시인이 작고했다고 한다. 간암으로 입원한 지가 얼마 안 되는데 술 속에 빠져 지냈으니 자살이나 진배없다. 3개월 전 갑자기 내게 전화해서 <國會報>에 콩트를 써달라고 했는데. 나와 친한 사람은 왜 일찍 죽는지 모르겠다.
1999. 9. 9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
오늘이 천 년에 한번 뿐인 날이다.
제주도에서는 중국인 280상이 결혼식을 올렸고,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는 5000원 짜리 커피를 99원만 받기도 했다.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1999. 9. 10
김포공항에서 KAL편으로 진해에 갔다. 나는 김윤식 교수와 창 쪽에 나란히 앉았다. 김 교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좌석에 꽂힌 지도를 펴 놓고 세계 여행한 곳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게 이런 말을 보탰다.
“세계여행을 자주 다니며 호텔과 음식도 고급으로 택해요.”
그는 연길에 함께 다녀온 뒤로 티벹과 네팔을 다녀왔고, 카트만두에서 3일간 버스로 달려 라사에 갔다는 말도 했다.
훗날 김윤식 교수는 내 저서『세계문학관 기행』을 읽고 내게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특히 에밀리 브론데의『폭풍의 언덕』에서 감명이 컸던 모양이다.
진해에서 뱃노리를 하는데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황동규(황순원 선생 장남.) 시인이 내게 말했다. 문호리 우리 집에 마중기, 김주연 등과 갔었노라고.
최동호 교수가 내게 무척 신경을 써준다. 잘 때도 둘이 한 방을 썼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밤에 술을 마실 때는 신덕용 교수 등 젊은팀과 어울렸다. 신 교수는 조태일 학장과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겪은 일화를 말해주었다.
1999, 9. 24
추석이다. 유라네는 어제 왔는데 태호는 또 애들과 아내만 보냈다. 며느리 말에 등산을 갔다고 한다. 불효막심한 놈이다.
어제는 김윤식 교수한테서 우편물이 왔다.『백두산 가는 길』이었다. “김용만 형께” 라고 썼다.
홍기삼 교수한테서 명절 안부 전화가 왔다. 나는 가을에 놀러 오라고 했다. 밖에는 비가내리고 있다. 슬프다.
춘천옥 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1999. 10 .17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3박 4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최동호 교수, 이성선 시인, 김정웅 시인과 넷이 어울렸다. 한라산(윗세오름)에 오르고, 마라도에서 회를 먹고 우도에서 비를 맞으며 자전거 일주를 했다. 새벽에 일출봉 해돋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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