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미래의 시체(屍體)인 셈이죠
1998. 12. 12
홍용희 교수가 평택대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김용희 교수 (36, 판사부인)와 집에 찾아와 내 서재에서 오래 이야기하다 헤어졌다.
경기대 국문과 학생 20여 명이 집에 다녀갔다.
1998, 12. 18
박덕규 교수가 협성대 문창과 학생들 열댓 명을 데리고 1박 예정으로 왔다. 학생들이 저녁을 지어먹고 저희들끼리 담소하는 사이 유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승가대학 학생(스님)들 열댓 명이 사랑터울에 머물고 있다며 연락해서 내려가 보았다. 남녀 스님들이 모여 앉아 시를 合평하고 있었다. 유 교수가 나를 소개하며 몇 마디를 청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나려 하자 스님들이 못 가게 붙잡는다. 더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올라왔다.
우리 창고방에서 공부하던 대학원생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입장하자 모두 일어나 박수치며 환영한다.
1998. 12. 24
현대문학연구회 세미나가 있어 모처럼 학교에 나갔다. 이청준 작품과「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에 대해 공부했다. 나도 몇 마디 했다.
뒤풀이할 때였다, 모두 감자탕을 먹고 있는데 조교가 와서 “조해룡 교수님이 김용만 선생님 리포트가 의외로 잘 썼다며 95점을 줘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털어놓았다. 모두 내 얼굴을 바라본다.
1998. 12. 26
지금은 양평문인협회에 끼고 싶지 않다. P씨가 문인협회를 만들자고 사정했지만 거절해왔다. 공무원, 유지들에게 굽실거리며 아부하는 짓이 싫었다. 문학인은 순수하고 진실되어야 한다.
1998. 12. 27
교육문화회관에서 홍기삼 교수 딸과 김주영 작가 아들 결혼식이 3층과 2층에서 동시에 (12시) 거행되었다. 문인과 교수들이 많이 왔다. 먼저 2층에 들러 김주영에게 치례를 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예식이 끝나고 유종호 연세대 교수, 송화춘 고려대 교수, 최동호 교수, 김선학 동국대 교수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그때 형동생으로 지내는 박범신 작가가 다가와 나를 송하춘 교수에게 소개했다. “아아,「늰 내 각시더」를 쓰신 분.....”한다. 그러고 보니 고려대에서 내 작품「그리고 말씀하시길」을 단편 구성 텍스트로 썼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송하춘 교수의 수업시간이었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조정래 작가 부부와 앉아있던 임헌영 문학평론가가 나를 불렀다. 자연히 조정래 작가와 동석하게 되었다. 부인 김초혜 시인이 내게 “옛날 부산에서 뵈었어요. <현대문학>주최 행사 때 양 여사가 좋은 분이라고 인사시켜 드렸죠."한다.
1998. 12. 28
김강태 시인이 부인과 문학소녀인 두 딸(고1, 중2)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딸들의 표정이 안정돼있어 예뻤다. 김 시인은 나를 동향이라며 “형님”이라고 부른다. 아주 형수, 제수씨로 부르기로 했다. 마당에서 큰 딸애가 평생 선생님 말씀을 못 잊겠다며 어른스런 말을 한다.
1998. 12. 30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예술인 모임과 경희대학원 석사 학위 취득자 모임이 있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밤에 중앙대 이명재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중앙대에서는 신춘문예 평론에 한사람 됐다는데 경희대에서는 어떠냐는 거다.
1998. 12. 31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밤을 보내며 새해에는 어떻게 할지를 의논했다.
1999. 1. 1
그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대답을 구하지 못한 채 60세가 되었다.
보드리야르의 저서『시뮬라시옹』과『섹스의 황도』를 읽었다..
진짜 가족과 따로 살거나 소원해진 요즘, 일본에서는 진짜 아들과 며느리, 손자보다 더 아들답고 며느리답고 손자다운 대리 가족사업이 번창하고 있음도 그 좋은 예다.
-『섹스의 황도』에서
1999. 1. 6
힐하우스에서 시인 강민씨의 아내 이국자 소설가와 차를 마셨는데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브로커 비슷한 백 같은 인간이 문협을 만들었으니 끼지 않은 게 다행이죠. 백 같은 인간이 와서 설쳐대는 것이 껄쩍지근해요.”
광주대학교에서 이번에 신춘문예에 11명이 당선되었다고 (중앙 3명, 지방 8명) 각 신문에 떠들썩하다. <전북일보>에 시로 당선된 황형철이 신문을 보내 왔는데 나에 대한 감사의 글이 삽입되었다. 신문에는 “소설가 김용만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써 있다. <조선일보>에 시조로 당선뢴 장수현 역시 감사의 엽서를 보내왔다.
1999. 1. 17
문이당 임 사장이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생 10여 명을 데리고 와서 놀고 갔다. 그는 케냐 여행에 동참해달라고 한다.
요즘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에 빠져 지낸다.
그에게는 죽음조차도 기쁨이다. 그것은 오히려 훨씬 더 큰 행복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적 인간은 우주 안의 모든 나머지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자신마저도 부정한다.
-『에로티즘』에서
지난주에는 현대문학연구회 세미나에 모처럼 참석했다.『섹스의 황도』를 공부했다.
1999. 1. 21
프란시스 베이컨의 『화가의 잔인한 숲』을 읽다.
화가 베이컨의 매력은 살아서 어떤 집단적 미술조류와 운동에도 가담하지 않았다는 고아적 속성이다. 이는 그에게 정신의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이처럼 나와 같은 그의 기질, 거기에 지저분한 삶의 역경, 그의 말이 정겹다.
“우리는 미래의 시체인 셈이죠. 나는 푸줏간에 갈 때마다 짐승 대신에 내가 거기에 걸려 있지 않음을 알고 늘 놀라곤 하지요.”
기막힌 말이다. 어쩌면 나와 똑 같을까!
1999. 1. 26
<문학과 지성사>에서 12명이 우리 창고방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 김병익 대표를 비롯하여 김치수 이화여대 교수,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 정현종 연세대 교수, 오생근 서울대 교수, 정문길 고려대 학장, 정과리 연세대 교수, 이인성 서울대 교수, 채호기 주간, 김원일 소설가, 여자 직원 2명이었다.
우리 집에 한국문학의 최고 지성인들이 온 셈이다. 며칠 전에 김병익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나는 그 원인을 요모조모로 생각해 보았다. 나에 대한 이미지(작품성 포함)가 달라지고, 대학원에 다닌 것에 인식이 달라진 걸까?
일단 2층 내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때까지 세미나를 마치고 수입리로 매운탕을 먹으러 갔다. 그들은 나와 아내에게 식사하러 함께 가자고 권했다. 식사를 마치고 술판이 벌어졌을 때 갑자기 김병익 대표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내게 말했다.
“김 선생님은 어휘공부를 어떻게 하셨죠?”
나는 평생 일기를 써오면서 독서를 통해 발췌한 어휘를 대학노트에 적바림했노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누가 “타고난 재능이겠죠.” 하고 나섰다. “창작집을 언제 내셨죠?”
김병익 대표가 물음에 이번에는 김원일이 “<실천문학>에서 나왔죠.” 하고 <실전문학>의 권위를 강조했다. 나는 92년도에 냈으며, 그동안 학교 공부 때문에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술판이 무르익고 음주운전 얘기가 나오자 또 김원일이 나섰다.
“김용만이 있는데 아무 상관 없죠, 지금까지 있었으면 경찰청장은 됐을 걸.”
나는 아까 서재에서 김병익 대표가 내 과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자,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는데도 문학 때문에 그만 뒀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롯데월드에서 초청한 이야기도 했다. 김 대표는 뒷좌석에 앉아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손자 볼 나이가 아니신데요?” 하며 친절을 베풀었다.
기분 좋게 먹고,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는 이튿날 일본출발을 위해 먼저 연세대 정현종 교수와 떠났다. 정 교수는 나에게 서종의 지세가 아름답다며 좋은 곳을 구경시켜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식당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김병익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김 선생님 원고 정리가 되는대로 내게 보여줘도 되겠죠?”
집에 오자마자 바둑판이 펼쳐졌다. 김병익 대표와 김원일이, 김치수와 이인성이, 나와 오생근이 세 팀으로 바둑을 두었다. 그들은 아까 낮에 세미나를 끝냈었고, 나와 아내보고 식사하러 함께 가자고 했었다.
새벽 2시까지 바둑을 두었다. 나는 오생근과 두다가 이인성과 맞수로 2판 두었다.
여직원만 내 서재에 재두고 모두 창고방에서 잤다.
1999. 1. 27
김원일 소설가가 병원치료로 일찍 떠나려하자 오생근 서울대 교수, 정문길 고려대 교수도 따라나섰다. 나머지는 우리 집 거실에서 식사를 했다. 반찬이 없지만 아내가 그냥그냥 챙겼다. 밥을 먹으면서 요즘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식사 중 채호기 교수가 밥상에서 “서재 걸린 삽화(용고시절 섬진강에서 그린)를 누가 그렸나요?” 한다. 어느 화가의 그림이냐는 뜻이다. 김병익씨가 우리집 그림에 대해 묻어본 뒤였다. 내가 그린 거라고 했더니 모두 놀란다. 그전에 남진우 교수도 그 그림에 관심을 가졌었다. 서재에 걸려 있는 글씨(本立道生)도 누가 썼느냐고 물어 내가 쓴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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