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 작가 최인훈 교수를 교실로 데려온 아내
1998. 4. 30
<동서문학>에서 원고 교정 팩스가 왔다.
<문예중앙>에서는 디스켓과 원본이 다르다고 전화가 왔다.
같은 시간에 두 문예지에 발표하기는 처음이다.
1998. 5. 17
홍용희(훗날 한강 남편)가 <범우사>에서 통일문학에 대한 책을 강의교재로 쓰려고 출간하는데 내「은장도」를 싣겠다고 한다.
밥을 먹고 거실에 요 이불을 깔고 내 예쁜 강아지 하영이를 안아 재워 요에 뉘고 나는 곁에서 신문을 읽는데 언뜻 잠이 깼다가 내가 손을 잡아주니 또 잔다.
1998. 5. 24
1박 2일 예정으로 대학원 동료들과 비행기 편으로 장흥 한승원 작가 집에 다녀왔다. 광주공항에는 신덕룡 교수와 이은봉 교수가 나와 있었다. 먼저 불회사 근처 저수지 가에서 매운탕을 먹고 밀림사에 들었다가 장흥으로 갔다. 바닷가에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도 갔다. 기분 탓인지 나는 또 말이 많았다. 바닷가를 거닐다 한승원씨 집에서 잤다.
이튿날에는 왕인 박사 묘와 나주 고분을 둘러보고 공항으로 향했다.
1998. 6. 1
<문예중앙>과 <동서문학>> 여름호에서 동시에 두 작품이 발표되었다.
지난주에는 <현대문학> 세미나 시간에 학생들이 내 詩를 읽고 좋아한다.
어저께 주말에는 홍기삼 교수가 동국대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30여명을 데리고 왔다. 세 번째다. 밤늦게까지 주차장에서 캠프화이어틀 하며 노래를 불르고 3시경에 잤다. 홍 교수, 김춘식, 김인호 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최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나보고 ‘김달진 문학상’ 시상식날 술을 마시게 차를 집에 두고 오라고 한다.
1998. 6. 2
아내가 기말고사를 보고 와서 잘 썼다고 신이 나 있다.
아내의 말이 제법 논리적이고 어휘구사도 세련되어 간다.
김혜순 교수가 아내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여자라고 말했단다. 또 아내에게 학교에서 동시를 잘 썼다고 칭찬했다며 모처럼 수다를 떤다. 아내는 학교에서 칭찬 듣고 재밌는 일이 생기면 자랑하고 싶어 한다. 최인훈 교수(노벨상 추천작『광장』작가)가 수업시간에 한생들 수업태도가 불량하면 교수실로 돌아가버리는데 매번 그를 달래서 강의실로 데리고 온 학생도 아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나보고 데려오라며 야단이거든.”
암튼 학교에서 아줌마 학생인 아내의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1998. 6. 3
신경숙 소설가와 통화했다. 경희대학원에서 만나고 처음이다. 간단히 끊으려했는데 더 얘기하고 싶은 어감이다. 그녀는 방을 치우고 싶은데 못 치우고 있다 한다. 나는 게으름이 참 좋은 거라고 말했다.
1998. 6. 6
고려대에서 행한 “김달진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모처럼 넥타이를 맸다. 올해부터 평론부분이 신설되어 광주대 신덕룡 교수가 받았다. 최 교수가 나한테 무척 신경을 써준다. 내 마음을 정리해보았다.
*
외딴 섬
새야 너 외로운 섬에 가자
가느다란 다리로 지치게 걸어
해질 녘이면 닿을
너그러운 가슴에 가자 잔아
1998. 6. 18
저녁 때 신경숙, 남진우, 이문재, 최동호, 조정권, 박덕규, 여섯 명이 캔맥주와 고기를 사들고 문호리 집에 왔다. 신경숙 남편 남진우 평론가가 김달진 문학상을 받았는데 뒤풀이를 우리 집에서 하는 셈이다. 아내가 서울에 나가는 바람에 여럿이 달라붙어 안주를 장만했다. 아내가 늦게 와서 밤 11시경에야 저녁을 해 먹었다.
12시경에 떠날 때 연못을 한 바퀴 돌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에서는 내가 신경숙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일을 거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아내가 2층 서재로 올려 보냈다.
1998. 6. 19
경희대학원 6시 세미나장에서 오늘은 내 작품을 종합평가하기로 했다. 각자 내 작품을 하나씩 맡아 미리 리포트로 제출했는데 구성에서 온정주의의 풀어짐이 지적되었다. 여기에서 이봉일은 순수란 타락한 사회에서 물들지 않는 것을 얘기한 거지 창백한 순수(부정을 모르는)는 아니라고 했다.
9시경에 수업이 끝나고 호프집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내 작품에 대한 진지한 리포트가 고마워 술값은 내가 냈다.
1998. 6. 20
경기대 국문과 2학년생 40여명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공부했다. 마침 정연희 소설가와 동생 정규웅 국장이 와서 동석했다.
이튿날에는 박주택 시인과 노희준(석사 3기)이 음대 성악과 학생 4명을 데리고 왔다가 놀고갔다.
1998. 6. 26
임헌영 평론가가 주간으로 있는 <한국평론>에서 중앙대 문리대학장, 이화여대 이 교수, 숙명여대 황 교수, 염철, 이재복, 박주택, 그리고 <범우사> 윤 사장 등 10여 명이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갔다. 임헌영 평론가는 1시간가량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앞으로 내 작품에서 대중성을 참작해달라고 했다.
1998, 7. 3
황순원 선생 제자들이 선생을 모시고 1년에 4번씩 만나는 모임에서이번에는 서종면 서후리에 와 지내는 이연철씨가 수능리 개울가 보신탕집으로 정하는 바람에 나도 참가하게 되었다.
황 선생 내외분과 최상진 교수, 정호승, 고원정, 신덕룡, 박덕규, 문흥술, 강웅식, 하응백, 한원균, 임종기, 그리고 일본어 번역가 양씨까지 모였다.
황 선생은 흥이 나서 노래 <피양 덩거장>를 부르고, 모두 한 곡조 씩 불렀는데. 나는 <두만강>을 불렀다.
참으로 부럽다. 제자들의 모시는 정성이 황홀할 정도다. 그분은 자기의 늙은 모습을 안 보이려고 인터뷰도 사양한다고 제자들이 말했다. 사진도 찍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 참석한 나를 극진히 대접한다. 특히 정호승, 신덕용, 문흥술이 나를 가까이 대해주었다.
1998. 7. 11
내 소설집『늰 내 각시더』를 읽었다는 김치수 이화여대 교수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쓰기만 하세요. 쓰기만 하면 되겠어요.”
김치수는 문지파 (가장 권위있는 <문학과 지성>) 4인방(김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의 하나로 내 책 해설을 쓰기도 했다.
안종대 화가는 못을 오브제로 사용한다고 내게 말했다.
1998. 7. 18
박찬(일요스포츠), 문흥술, 강웅식, 김문주 등과 김포 김정웅 시인 집에서 하루 자고 왔다. 들판을 보니 가슴이 확 트였다. 게장과 준치 국이 별미였다.
어제는 양구에 다녀왔다. 순애를 그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간 보라 아범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
고려대학교 출판부에서 만드는 <소설사전>에 내 작품 어휘가 들어가게 되었다고 문흥술이 전화로 알려줬다.
1998. 7. 19
장 그리니에의『섬』을 읽었다.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나는 벌써부터 포주 주점에서 일해주며 살고 싶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1998. 7. 20
창으로 스며드는 풀내음과 아내가 만든 열무김치 (배추를 섞어 만든 김치)에서 옛날 어릴 적의 김치 향기를 느꼈다.
'연재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8회) (1) | 2025.12.23 |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7회) (0) | 2025.12.16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5회) (0) | 2025.12.02 |
|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4회) (1) | 2025.11.25 |
|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3회) (1) | 2025.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