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잔 차 스님의『반조』에 대해 묻다
이문열 작가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자기도 그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했는데 그 말은 자기 형도 인기 높은 동생의 책을 출판하겠다며 졸라댔을 거라는 의미 같았다.
나는 즉시 이문열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노트 한 권에 써도 부족할 그동안의 쓰라린 내력을 밝히기 싫어 간단히 기록했다.
아! 정말 더러운 내 팔자다.
내 지표가 무너지는 것 같다.
내 운명이 이래선 안 되는데.....
인간에 대한 신임이 무너진다. 기본 삶마저 무너진다.
2000. 7. 11
오늘부터 스리랑카 여행이 시작되었다. 김포공항 2청사에서 소설가들이 만나 싱가폴을 경유하여 콜롬보에 도착했다.
2000. 7. 12
조식 후 고도인 아누라다푸라로 이동하여 중식 후 보리수 사원, 르완웰리 대탑, 이수루무늬아 정사 등을 방문했다. 시기리아로 이동하여 시기리아락을 등정하고 전설의 18미녀도를 감상했다. 사자의 입구, 캬사파 성을 방문하고 담블락에 도착하여 석식 후 휴식을 취했다.
2000. 7. 13
조식 후 담불라 석굴 방문, 호수의 도시 캔디로 이동. 불치사, 캔디호, 동양 최대의 페랃니아 식물원 방문, 누와라엘리아로 이동하여 석식 후 휴식.
2000. 7. 14
600m 절벽이 펼쳐지는 world ends, holton plains의 비경 트렉킹하고 중식 후 귀환.하쿠갈라 식물원 , 차 플렌 테이션, 빅토리아공원 등 관람.
2000. 7, 15
조식 후 비치 휴양지 와두와로 이동. 벤토타강 리버 크루즈 및 재래시장 방문.
2000. 7. 16
조식 후 해변 자유시간. 콜롬보로 이동. 중식 후 독힙기념관, 데히왈라, 동물원, 마하데비 공원 등 관람. 석식 후 강가라마 사원에서 펼쳐지는(매월 보름) 포탸데이 페스티발 관람. 공항으로 이동 출국 수속.
2000. 7. 17
콜롬보 출발, 싱가폴 도착, 조식 후 시내관광, 센토사 섬, 주롱새 공원, 수족관,식물원 등 관람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길에 오름.
2000. 7. 20
태호네 네 식구와 여섯이 소래와 연안부두에 다녀왔다. 월미도에서는 배를 타고 영종도에 다녀왔다.
태호가 주식으로 부모가 사준 집을 거의 날리고 셋방살이를 하겠다고 한다.
2000. 7. 26
나래가 늘 할머니에게 매달리며, “할머니가 계셔서 나는 행복해.” 한다. 그런 할머니와 멀어지도록 한 태호놈의 불효가 가슴을 찢는다. 천사 같은 아내가 아닌가!
아내가 왜 애를 못 낳게 했느냐며 눈물을 흘린다. 태호만 잘 키우면 된다고 고집을 부린 내 어이없는 잘못이 가슴을 찢는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차라리 딴 사내와 바람을 피워서라도 애를 낳지 그랬어. 그런 자식이라도 나는 내가 나은 자식보다 더 사랑해줄 거라구.”
정말 그럴 것이다. 그게 내 양심이고 철학이다.
2000. 7. 29
나를 초인(超人)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2000. 7. 31
아내 생일(음력 7. 1)이라 정서방한테서 꽃다발이 배달되었다. 태호에게 전화를 거니 “알고 있어요.” 한다. 밤늦게까지 기다려도 태호는 오지 않는다.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는다.
2000. 9. 2
모처럼 외출했다. 파주행사장에 참석했다. 최동호 교수가 무척 반긴다. 한강 남편 홍용희가 반색하며 내 곁에 와 앉는다.
퍼포먼스와 밤에는 시 낭송회가 있었지만 나는 일찍 출발했다. 자유로를 처음 달려본다.
실패한 인간!
내가 그런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을 풀벌레나 잡목처럼 한 갓 자연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위상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살지 않았던 것이다. 요컨대 허무 탓이다.
아내와 몰래 태호네를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 품에 안겨 오랫동안 숨을 죽이며 흐느끼던 손녀딸.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나래의 그런 고통은 왜 생겨났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를 상종 못하게 한 블효자식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가슴이 메어진다.
부모가 사준 고급 아파트를 그동안 주식으로 3억 가까이 날린 자식이다.
2000. 9. 19
진해 김달진문학제에 다녀왔다. 하룻밤 자며 술자리를 즐겨야 할 텐데 당일치기로 밤에 비행기로 올라왔다. 김00 교수의 지저분한 행실 때문이었다. 마침 경희대 김재홍 교수와 동행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김재홍 교수도 김00을 미워했다.
아까 해군회관에서 진해시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하고 떠나려는데 고려대 교수 김명인 시인이 내 자리로 와서 왜 먼저 떠나냐고 물었다.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서울대 방민호 교수가 반갑게 찾아와 인사했다. 나도 반가웠다. 방 교수 역시 왜 일찍 떠나냐고 물었다.
아까 시청에서 행사가 있을 때였다. 세미나를 마치고 사진을 찍는데 나는 소변이 급해 화장실로 갔다. 오줌을 누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인 안녕하쇼?”
서울대 김윤석 교수가 바로 옆자리에 서며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인사를 드리니 “또 어디에 다녀왔소?” 하고 물었다.
“스리랑카에 다녀왔습니다.”
김 교수는 아잔 차 스님의『반조』에 대해 물었다.
2000. 10. 6
새해 들어 부쩍 인터넷이란 말이 늘었다. 모든 신문 방송이 벤처사업인 IT란 말로 맥질되었다.
2000. 10. 24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서울에서 아시아 유럽 정상 25명이 모였다.
오늘 반 년 만에 춘천옥에 가보았다. 태호가 지하실을 유흥업소로 세놓는 바람에 취소시키기 위해서였다. 룸싸롱 같은 유흥업소가 들어오면 중과세를 물게 되고 속을 썩게 마련이었다. 철딱서니 없는 자식이다. 도대체 언제 철이 들지 모르겠다.
혼내는 대신 타일렀다. 식당마다 다니며 네프킨과 소금을 팔러다니는 모습이 한편 가엾기도 하다. 못난 놈!
2000. 11. 9
이러다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태호를 핸드폰으로 불러내 문호리 강변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서로 어떤 말을 하건 절대로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끝까지 경청하기로 하자.”
자그마치 밤 10시까지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모 재벌 회장도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했다는데요.”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나는 그 회장보다 더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네가 받아먹지 못할 뿐이지. 춘천옥만 해도 왜 네가 운영하지 못하고 조카인 연일이가 운영하지? 너 춘천옥에서 일한답시고 1주일 만에 때려쳤잖아? 잘살고는 싶고 고생하긴 싫고. 그게 너야. 고생 않고 성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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