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칼호수 갈매기 내 슬픔 물고 동쪽으로
2001. 5. 18
일주일간 아내와 함께 L.A에 다녀왔다. 그곳 교포문인들이 소설가협회를 통해 문인들을 초청한 것이다. 정을병과 나 말고도 임헌영, 윤후명 등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둘러보고 (요세미티는 두 번째 여행) 존 스타인벡의 기념관이 있는 셜리너스로 이동했다. 생가 옆에 기념관이 있는데 영화 <에덴의 동쪽>이 상영 중이었다.
그곳 여류작가 이자경씨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녀는 나를 “아웃사이더”라고 했다. 그리고 아웃사이더를 즐긴다고 했다. 그녀는 나중에 인편으로 그녀의 원고 <서바이벌 게임>을 보내왔다.
모두 떠나고 우리 부부와 정을병 회장 부부만 남아 한인관광회사에 연락하여 2박3일간 새도나와 라플린 관광에 나섰다. 황토색 산이 인상적이었다.
2001. 6. 12
남진우 신경숙 부부, 김영하 부부, 김화영 교수 부부가 우리 집에 왔다. 너무 유익하고 신나는 하루였다. 우리부부와 여덟 명이 삼회리 ‘어부의 집’에서 매운탕을 먹고 내 서재에서 놀다가 두부전골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다.
나는 남진우에게 내 작품 하나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공부삼아 읽겠다며 꼭 보내달라고 했다. 서울예전(서울예술대학교 전신) 교수이며 일류 평론가인 남진우는 대표주자의 자리에 올라선 신경숙 소설가와 부부연을 맺어 하제를 뿌렸다.
남진우 교수는 연못 옆에 세워놓은 커다란 바위를 “고인돌”이라고 명명했다.
2001. 7. 1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가 찾아와 이틀 밤을 자며 함께 지냈다. 그는 금년이 안식년이라 여유가 있었다. 첫날밤은 새벽 4시까지 내 서재에서 술을 마시며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우연히 아내가 나와 탤런트 안옥희 사이를 꺼내기도 했다.
“원 없이 살았구먼.”
김 교수의 말이었다.
2001. 7. 2
김 교수가 떠나고 점심때쯤 아내 친구들 7명이 서울, 춘천, 양구에서 찾아왔다. 나는 그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고 떠들었다.
2001. 7. 16
오늘부터 시작되는 바이칼호, 몽골 여행에 우리 부부도 참여했다. 부부동반은 우리와 정을병 회장부부, 한양대 현길언 교수 부부, 용고 후배인 윤후명 소설가 부부였다. 개인적으르는 이경철 중앙일보 문화부장,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담당, 김현탁 경기문인회장 등 십여 명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KAL은 3시간 만에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자이승 승전탑, 복후드항, 초이진, 수쿠바타르 광장을 둘러보고 호텔에 들었다.
룸메이트를 짜는데 윤후명이 자꾸 형님과 같이 지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술주정뱅이와 한 방을 쓰기가 싫거니와 부부 동반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까 비행기에서도 술에 취해 스튜어디스의 옷자락을 만지는 등 애를 먹였다. 저런 인간이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냐고 귀띔하는 문인도 있었지만 글 잘 쓰는 일류작가는 대개 그렇잖냐고 옹호해주었다.
2001. 7. 17
한국과 몽골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 후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여 거북바위를 구경하고 말을 타고 유목민생활을 살펴본 후에 몽골 전통식인 허르믹으로 저녁을 먹고 몽골의 전통 주거지인 게르에서 숙박했다. 1동에 두 팀씩 자는데 우리는 윤후명 부부와 함께 지냈다.
2001. 7. 18
조식 후 가초르트 한인 농장을 구경하고 울란바토르로 귀환하여 징기스칸후레로 중식 후 역사박물관 및 몽골전통극을 관람했다. 밤에는 시내 자유관광에 나섰다.
2001. 7. 19
어제는 울란바토르大學에서 세미나를 가졌는데 그쪽에서는 세력가인 작가출신 국회의원이 나왔다. 몽골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조식 후 간등사원과 자연사박물관을 관람하고 중식 후에는 울란바토르에서 1시간 반에 걸쳐 러시아 쌍발기로 날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호텔 체크인 후 역사박물관, 즈나멘스카야 수도원, 무명용사비, 스파스카야, 중앙시장, 시베리아철도기념탑을 관람하고 석식 후 앙가라강변을 거닐었다.
2001. 7. 20
호텔식을 마친 후 바이칼호수로 이동하여 시베리아 목조건축박물관, 샤만바위를 관람하고 바이칼호텔에서 체크인하고 점심을 먹었다. 생태학박물관, 리스트비안카마을을 산책하고 니콜라이정교회 사원을 관람하고 석식 후 바이칼의 노을을 구경했다. 바이는 풍부하다는 뜻이고 칼은 호수의 뜻인 “갈”의 변천어이다. 바이칼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온 강인 안가라 강변에서 돼지고기(소고기보다 비싸다) 석쇠구이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몇 키로를 더 달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투숙했다.
2001. 7. 21
이르쿠츠크 시내 관광과 칭기스칸의 정통 후예인 브리아티야족의 자치구를 찾아가 그들의 무속공연과 환대를 받고 라마사원과 박물관을 관람한 후 이르크추크로 귀환했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잠자는 땅)의 중심 도시이며 안가라 강이 관통하고 있는데 강의 물살이 아주 셌다. 강가에 있는 인투르스트 호텔에 숙소를 정한 후 강가에서 산책하고 술도 마셨다.
2001. 7. 22
바이칼에서 뱃놀이를 하고 생선 ‘오술’을 먹고 이르크추크 공항으로 이동하여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만치르사원을 관람한 후 대통령궁 옆에 있는 영빈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몽골에는 공룡전시관이 있었다. 가난한 몽골이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전투적이며 빛이 났다.
울란바토르에는 (우리가 묵은 호텔) 한국인이 47억을 들여 꾸몄다는 Sky Shop이 성황 중이었다. 몽골의 중고차 50%가 한국산이라고 한다.
2001. 7. 23
조식 후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 테를지에서의 말 타기와 게르 숙박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윤후명과 둘이 잤는데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도 모든 속내를 털어놓았다. 특히 돈 많은 여자의 혜택을 입은입장에서 금전 문제만은 죽을 때 전 재산을 아내의 말에 따라 조계종에 바치겠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낳은 세 딸과의 관계를 말하고, 아내 허영숙과 실험관 아기를 낳겠다고 시도했으나 애가 자라지 않아 포기했다는 말도 했다.
아내는 윤의 아내 허영숙과 소설 쓰는 목포대학장 부인 김문희와 셋이 다른 게르에서 잤다.
2001. 7. 24
집에 돌아오니 엄청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자작나무 숲 너머로 해 기울자 바이칼 갈매기가 내 슬픔을 물고 동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2001. 7. 29
오늘부터 4박 5일 동안 유라네와 방콕, 파타야에 다녀오기로 했다. 돈무앙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었다. 옛날에 가봤던 곳인데 도시가 많이 변해 있었다.
2001. 7. 30
조식 후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차오프라야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수산시장, 왕궁, 에머랄드사원 등을 관람했다. 중식 후 파타야로 이동하여 미니시암을 관광하고 석식 후에는 전통안마를 했다.
2001. 7. 31
조식 후 선편으로 산호섬을 관광하고 중식 후에는 농눅빌리지 민속촌에서 민속쇼, 코끼리쇼, 열대식물원을 구경했다. 저녁은 졸찬호텔에서 씨푸드 뷔페로 먹고 알카쟈쇼를 관람했다.
2001. 8. 1
조식 후 호랑이공원을 구경하고 전용차량으로 파타야를 출발 방콕으로 귀환했다. 간단히 시내를 구경하고 로얄드래곤에서 특식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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