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10회)

충남시대 2026. 4. 7. 09:19

잔아(김용만) 소설가

 

만약 적령기에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면

2002. 3. 5  

  요즘 일기를 연재하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50대에야 대학에 들어가는 바람에 석·박사 수료가 별로 빛을 보지 못했는데 만약 남들처럼 적령기에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내 이미지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런 내 팔자가 오히려 다행일지 모른다. 20대 적령기에 대학을 나와 수니 같은 현모양처를 만났다면 모진 고생도 하지 않았을 테고 경찰생활도 순탄했을 테니 요식업도 체험할 수 없거니와 대박을 터뜨린 춘천옥 행운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요컨대 내 팔자가 적령기에 학업을 마칠 만큼 순탄했더라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수니도 만나지 못했을 테고.

2002. 4. 15

  선악의 피안에 선 인간의 행위욕(行爲欲), 자기의 양심과 진실성과 판단만을 의지하고 인생의 파도를 뚫고 나가려는 인간형, 그런 파우스트적 인간형이 바로 나일지 모른다. 

2002. 4. 23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하와이 오아후 섬으로 향했다. 호놀루루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푼 후 바람산, 주 정부청사, 이올라니 궁전, 카메하메하 대왕 동상 등 시내관광에 나섰다.

2002. 4. 24

  전일 오아후 섬 일주관광에 나섰다. 카할라 주택가, 다이아몬드헤드, 한국지도마을, 하나우마 베이, 하로나블루 홀, 중국인 모자 섬, 폴리네시안 민속촌, 파인애플 농장, 진주만 등을 관광 후 와이키키 해변에서 휴식 및 자유시간.

2002. 4. 25

  조식 후 국내선으로 호놀루루 공항 출발하여 마우이 섬 최대도시 카흘루이에 도착하여 일명 계곡의 섬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휴화산 할레아커러 국립공원, 이아오계곡, 열대농장, 라하이나거리 등 하와이군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환상적이고, 여성적인 섬을 관광했다. 오후 늦게 카홀루이를 출발하여 호놀루루에 도착했다

2002. 6. 20

   아내와 함께 훌훌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 월드컵 8강 진출로 온 나라가 들떠있는 초여름에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다. 모든 대륙에 걸쳐 육십여 개국을 여행했으면서도 기대와 망서림이 엇갈린 채 지금까지 여행을 미뤄온 검은대륙, 에이즈와 말라리아, 내전과 살육과 기아로 얼룩진 지구의 버림받은 땅으로 연상되는 그 가엾고 사위스러운 땅을 밟게 되었다. 
   보름 전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황달 예방주사를 맞았고 탑승 직전 여행사 측에서 나눠준 말라리아 예방약을 탑승 후에 먹었으니 아프리카 여행 일기는 홍콩 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인천공항에서 홍콩까지 3시간여,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12시간여, 거기서 케이프타운까지 3시간여, 거기에 공항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야한다. 
   인원은 42명, 명색이 문인들의 여행이지만 작가는 몇 명 되지 않고 일반인이 태반이다. 

2002. 6. 21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여 곧바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케이프타운으로 향했다. 3시간여의 비행 끝에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배운 아프리카의 끝을 오게된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절벽 바위산인 테이블마운틴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접시처럼 편편한 암반 분지에서 사진을 찍고 쉬다가 하산하여 워터 프린트를 늦게까지 관광하고 호텔에 돌아와 휴식했다. 
  남아공은 흑인이 78%, 백인이 10%, 중국과 인도계가 12%를 차지한다고 한다. 만델라가 집권하자 백인과의 유화정책으로 경제 성장이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하지만 내홍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유화책으로 만델라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흑인이 국가 경영능력이 없어 유화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궁 앞의 가로수 자크란다가 아주 이색적이다.

2002. 6. 22

   바닷가 절경 속을 달린 버스가 매표소가 있는 국립공원 입구에서 잠시 정차한다. 희망봉! 꿈속에서 그리던 최남단의 땅이다. 가랑비가 내린다. 등대가 있는 산 정상까지 궤도 리프트로 오른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갈라지는 곳이다.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니 이미 해가 져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사진을 찍고 산 아래 바닷가로 달렸다. 다시마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중국사람들이 청소를 도맡아 그 다시마로 잇속을 차린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나니 어둠이 밀려왔다. 버스에 올라 시내로 향했다.   

2002. 6. 23

  만델라가 감옥살이한 로번 섬에 가려고 했지만 파도가 높아 빤히 보이는 섬 관광을 포기하고 인근에 있는 박물관에서 학대받은 흑인들의 참상과 저항을 합창으로 영상화한 대형화면을 보았다. 스텔렌보쉬 시장에서 상품을 구경하고 차를 마셨다. 포도농장으로 달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포도주를 시식한 다음 옛 개척당시의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고목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주택이 옛날 그대로란다. 밤늦게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2002. 6. 24

  아침 일찍 케이프타운 공항으로 이동해서 요하네스에 도착하여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 시내를 관광했다.

2002. 6. 25

  아침 일찍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4시간 가까이 비행 끝에 케냐 수도 라이로비 공항에 착륙했다. 기내식으로 점심을 때운 터라 곧장 호텔에 짐을 풀고 박물관을 다녀와서 저녁 식사장소인 대사관으로 향했다.

2002. 6. 26

  암보첼리 국립공원을 관광하고 소망했던 킬리만자로 산을 감상했다. 호텔에 돌아와 식후에는 술을 마시다가 자정이 넘자 여행팀 모두 방에 들어갔다.
  나와 정을병 회장만이 호텔 야외 식탁에서 달빛 속에 드러난 희미한 킬리만자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백00이 혼자 식탁이 놓인 정원 잔디밭에서 식탁을 중심 삼아 20M 거리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반시간이 넘도록 그짓을 계속했다. 아마 우리의 밀담을 방해하려는 심보 같았다.          
  “저 사람 와 저러지? 미쳤나?”
  정 회장의 말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다. 조용한 한밤중에, 그것도 잔디밭 멀리에서 산책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짓이 성한 사람의 짓이 아니었다. 우리가 헤어지자 백00는 동시에 사라졌는데 정말 소름이 기칠 장면이었다.

2002. 6. 27

  TREE TOPS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맹수와 코키리, 버팔로, 멧돼지, 코뿔소, 양 등 온갖 야수가 우굴거리는 공원 속에 목재로 지어진 3층 짜리 건물이다. 껍질도 안 벗긴 나무로 지어졌는데 에리자베스 여왕이 황태자를 임심한 곳이라고 한다
  
  전용버스를 타고 나이로비로 귀환하여 중식 후 애버대야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며 경치를 구경했다.
  
2002. 6. 28

  냐후루루의 톰슨 폭포를 구경하고 나쿠루 국립공원에서 게임 드라이브(차를 탄 채 야생동물 구경)를 즐겼다.

2002. 6. 29

  케냐에서 3번째로 큰 나쿠루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7명씩 조를 편성하여 랜드로바 6대에 분승한 채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아내와 나는 캄바족의 모랄라가 운전하는 랜드로바(4호차)에 올라 2시간 반 정도를 아스팔트길을 달리자 넓고 넓던 평원길이 멀리 사라지고 산악이 보이기 시작한다. 탄자니아와 국경지역인데 마사이족이 사는 나망가(namanga) 지역이라고 한다. 싸이피크타운에서 랜드로바를 세우고 마사이족의 환대를 받았다. 붉은 옷을 입고 콩콩 튀어오르는 그들의 춤이 아주 활기차 보였다. 우리는 각자 헤어져 흙과 쇠똥으로 빚어 만든 초라한 마사이족의 주거를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사파리에 나서기 직전이었다. 조원 7명이 모여서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클리브랜드에서 온 교포 여류 소설가가 느닷없는 말을 꺼냈다. 
  “백 선생님은 신 여사의 핸드백까지 들고다니면서 ‘사모합니다’ 소리를 했잖아요?”
  여기에서 말한 신 여사란 유명한 모 문학평론가의 이모로 우리보다 늙은 나이였다. 인천국제공항 3층 H카운터에서 여행팀이 모였을 때 우리 부부를 만난 신 여사는 반색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안 가려고 했는데 김용만 선생님 내외분이 가신다는 걸 알고 부랴부랴 신청했어요.”
  그 말을 듣자 백00는 그때부터 신 여사를 챙겼던 것인데 7명 씩 조를 편성을 할 때도 다른 사람과 조를 바꿔 우리 조에 끼었던 것이다. 나는 교포 여류 소설가의 그 민망한 말을 듣고 백이라면 그 정도의 유치한 짓을 할 인간이라고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