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2회)

충남시대 2025. 11. 11. 14:03

잔아(김용만) 소설가

트로이 목마에 오르다

1997. 7. 4

  7월 1일부터 3박 4일로 명지전문대 ’문학과 기행‘에 초대되었다. 전성희 학과장과 새로 부임한 한혜경 교수와 셋이 내 차로 다녔다. 학생들은 버스와 봉고로 다녔다. 선운사 첫날밤에는 내 특강(문학과 인생)이 있었다. 
  이튿날은 광주대학교에 들러 조태일 학장과 교수들이 환영을 받고,  조 학장, 이은봉, 배봉기 교수의 안내로 5. 18 묘역을 둘러봤다. 새로 단장한 묘역이었다. 아직 암매장된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희생자들의 영령이 외롭다.

1997. 7. 6

 나는 광주에 머물고, 일행은 장흥 한승원의 집에서 2시간 특강이 있었다. 이튿날 선운사에서는 내가 먼저 2시간 특강하고 다음은 서정주에 대하여 그의 동생 서정태 시인이 2시간 특강했다.
  선암사를 거쳐 벌교 낙안민속촌에서 밤을 보내는데, 학생들이 전 교수를 매도하겠다고 야단, 나보고 선배로서 협조해 달라해서 중재에 나섰지만 입장이 난처했다. 아마 학과장이 학생들의 의견을 도외시한 모양이었다. 역시 교수는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져야 한다. .

1997. 7. 9

  박상우 소설가가 문호리 집에 찾아와서 자고갔다. 박상우와 둘이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7. 7. 12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정한숙 소설가, 상명대 민 교수, 전주대 이희중 교수 등과 집에 찾아와 밤늦게까지 연못가에서 술 마시고 돌아갔다.

1997. 8. 3

  최 교수와 함께 백담사에서 야영중인 만해시인학교(경희대 김재홍 교수 주관)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이성선 시인과 오탁번 고려대 교수를 처음 만났다. 오세영 서울대 교수, 유안진 시인 등과 개울가에서 술을 마셨다. 

  중앙일보에 발표한 우화 때문에 몇 군데서 전화가 왔다.

  유엔 통계국에서 세계총인구 57억 5천 10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1997. 8. 29

  경희대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35명이 교수들과 문호리 집 창고방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 한원균 청주대 교수, 홍용희(전 한강 남편), 박주택 시인도 함께 수업하고 밤 3시 반까지 교수들과 잔디밭에서 얘기하고 잤다.

1997. 8. 30

  대구로 출발했다. 떠나기 전 도로변에 있는 카페자리를 뉴질랜드에서 귀국한 금동원(화가)에게 싸게 (1억원) 전세를 주었다. 그녀는 박상우가 연재하는 <중앙일보> 삽화를 그리고 있는데 가족은 아직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다.

1997. 9. 3

  대구 김원일 집에서 그의 죽은 동생 원도의 시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김원일이 흥분할 정도로 반긴다. 잠시 오해가 있었지만 김원일은 진실로 내가 잘 되기를 바랐다.

  이문열 소설가가 늦게 참석하여 나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었다. 그도 이천으로 아주 떠났는데 거기에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아내를 소개했다.
  거의 대구사람들 뿐이고. 늦게 박덕규와 임성규가 도착했다. 밤늦게 아내와 교대로 운전해서 새벽에야 집에 도착했다. 

1997. 9. 12

  박상우 작가가 나를 못 보고 간다며 포도 상자를 현관 앞에 놓고 메모지를 남겼다. 아마 저녁때까지 기다리다 추석을 지내러 집에 간 모양이었다.

    잔아 선생님께
  도착하시는 걸 뵙지 못하고 추석준비 때문에 해질 무렵에 집으로 나갑니다. 좋은 명절 보내시길 빌겠습니다.
          9. 12 5:40  박상우 드림“

1997. 9. 16

  음력 8. 15 추석이다. 모처럼 태호네 유라네와 함께 제사를 지냈다. 유라네는 정서방 교육이 아직 끝나지 않아 미리 와 있었고 태호네는 어제 왔었다.
 밤. 달이 떴다. 나는 혼자 밖에 나가 사랑제를 바라보았다. 

1997. 9. 20

  광주대학교 교정에서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두어 차례 거절했다가 허락했다. 교수들이 교육적인 보도라며 특히 조태일 학장이 학교 선전에 좋다고 하여 응했던 것이다. 문순태 교수가 내 명성에 대해 귀띔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끝내고 오는 길에 아내가 ”강원도 친구들이 당신이 학생 신분인 걸 알면 창피하다.“고 해서 권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알렸더니 그럼 서울, 경기, 강원도에 나가지 않게 지방권에만 쓰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장흥 한승원 작가한테서 초청장이 왔는데 고향 바닷가에 기념비가 섰다고 한다. 현장에 다녀온 문순태의 말에 의하면, 고향 사람들이 소를 잡고, 군에서 기념비까지 포장해주었단다. 나에게 보내진 초청장에는 마을 대표와 면장 등이 초청인으로 돼 있었다.

  1997. 9. 22

  광주에서 다음 주부터 4일간 “대동제” 기간인데 그때 황형철, 하종기, 이정철, 김수현이 시화전을 개최한다고 격려문을 써달라 해서 원고지 3매를 써주고 왔다. 그애들은 4학년에서 제일 실력 있고, 종기는 이번에 조선대에서 실시한 전국 대학생 민족문학상에서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정철이는 지난해 영남대에서 평론 문학상을 받았다. 
  그애들은 진심으로 나를 존경하고 따른다. 이은봉 교수는 시창작 시간마다 학생 시를 공부하고 마지막 정리로 나에게 꼭 “한 말씀 해주시죠.” 한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마디를 해준다.

1997. 9. 26 

  박상우 소설가와 술을 마시며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상이 새롭습니다. 감동했습니다. 솔직히 관찰하고 작품을 읽었습니다만 쓰신 무의미시론을 보고 이제 무조건 모든 걸 갖추셨구나, 안심됩니다. 쓰십시요. 恨을 푸십시요. 빨리 쓰십시요. 조정래가 시도할 텐데 먼저 쓰십시요. 약 3년은 잡으셔야 합니다. 제가 자료 수집은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박상우의 말에 나는 여행 끝나고 바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원도 등록만 하고 휴학해야겠다는 말에 그는 대학원을 포기하라고 한다. 
  현재 나를 초청한 대학원은 동국대 대학원(국문과), 경희大 대학원(국문과), 명지대 대학원, 중앙대 예술대학원(문장과) 인데 명지에서는 특채로 모시겠다고 한다. 그 중에서 나와 친밀한 사이인 홍기삼 교수(훗날 동국대 총장)의 청에 따를 생각이다. 그런데 조태일 학장이 자기 모교인 경희대를 적극 권하고 있어 마음이 복잡하다.

1997. 9. 27

  만약 내가 적령기에 대학교육을 마쳤더라면, 文學과 거리가 먼 세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1997. 9. 29

  아내와 함께 8박 9일로 터키(튀르기에) 여행길에 올랐다. 신달자 시인과 박상우 소설가 듷도 동행했다. 오후 6시 50분에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밤늦게야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1997. 9. 30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전용버스로 성소피아 사원, 불루모스크, 지하저수지, 이집트 첨탑, 고대 로마경기장인 히포드럼 등을 관광하고 석식 후 투숙했다.

1997. 10. 1

  조식 후 전용버스 편으로 갈리폴리 전적지를 관람 후 기대하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로 달렸다. 고교시절에 읽었던 호머의 서사시『일리아스』와『오딧세이』에 나오는 유적지에 도착하니 가슴이 떨릴 만큼 감격스러웠다. 우물처럼 깊이 파혜친 땅속에는 마치 시루떡처럼 잡석이 층층으로 쌓인 토층에서 시대마다의 역사성이 느껴져 신비감마저 들었다. 역시 신화의 현장 같았다. 꾸며놓은 대형 트로이목마도 타보았다.
  트로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바릭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었다.

1997. 10. 2

  아침부터 카티페칼레요새, 고고학박물관, 코낙광장 등을 둘러보고 이즈미르를 거쳐  쿠사다시로 이동했다.
  이즈미르는 호머가 태어난 곳으로 이스탄불, 앙카라와 함께 튀르기에의 3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