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1996, 6. 6
순천에 사는 경찰서장 딸 혜경이가 죽었다고 한다. 가슴 아프다.
“선생님, 저하고 여행가요.”
그처럼 따르던 광주대 동료였다. 여수까지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한다.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학생 열댓 명이 나왔다. 함께 혜경이의 장지로 갔다. 화순에 있는 골짜기까지 1시간가량 걸렸다.
흙삽으로 세 삽을 덮었다. 그녀의 사진이 어른스럽다. 22세의 깔끔하고 귀엽던 그 놈이 삼십대로 느껴진다.
1996. 6. 20
시 연습 시험에 시를 써냈다. 제목은 “휴전선”. 조태일 학장은 휴전선을 회초리로 비유한 착상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내가 리포트로 제출한「김춘수 무의미시론」을 교수들이 돌려가며 읽었다고 한다. 대학원 논문 수준 이상이라고 했단다.
방학, 신난다. 아이들 같은 마음이다. 정말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반에서 우등생이고 제일 예쁜 앤이 나를 만나 친구들과 양평 선생님 댁에 놀러가겠다고 한다.
1996. 6. 21
지리산 노고단에 처음 올랐다. 산기슭 동네로 내려가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고 노고단으로 향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시간여 걸어서 올랐다. 남자 성기와도 같은 표석이 돌 위에 서 있어 깜작 놀랐다. 흰두교의 ‘링가’가 왜 노고단에 서있지?
화엄사로 내려갈 때, 귀가 멍멍했다. 스스스 바람소리 같다. 기압 탓인데, 정말로 귀가 멀고 싶다. 너무 평화롭고 신비스럽다. 대학원만 나오면 귀가 필요없을테니 귀머거리가 돼야겠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겠다.
화엄사 각황전에서 진신사리를 보고 만원을 내고 회원등록을 마쳤다. 자연히 합장이 된다.
쌍계사로 차를 몰았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면서 옛일을 회상했다. 고교생으로는 유일하게 대한학도연맹이 주최한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여 대학생들 틈에 끼었던 것이다. 연맹 회장인 백기완 선생은 내가 4대 공립고교생으로 조직한 청진회(靑進會) 고문이어서 동참했던 것이다. 백기완 회장은 훗날 백범사상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평생을 민중운동가로 활동했다.
쌍계사도 달라졌다. 뒤란으로 불일폭포에 간 기억이 난다. 재치국을 먹고 화계장터로 나오다가 산 속에서 잤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 좋다. 외로워 좋다.
1996. 6. 25
롯데월드에서 이화정 강사와 만나 함께 아파트로 권택영 교수를 만나러 갔다. 셋이 식당에서 장시간 이야기를 하고 커피숍에서 커피까지 마셨다. 이 강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권위자인 권 교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다리를 놓아준 셈인데 이 강사는 박사 코스를 밟는 중이라 논문에 참고될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1996. 7. 1
어제는 사랑의교회 1층 오픈 행사에 초대되어 지난번 내게 전화를 줬던 최재하 목사를 만났다. 그는 백 명이 넘는 신도 앞에서 “내가 노벨 작가가 되라고 기도했다.”는 말을 마이크로 실토했다.
미쳐야 한다. 그것만이 나를 신선하게 가꾸는 방법이다.
1996. 7. 29
문호리 집 주위가 온통 물 흐르는 소리다. 저 소리가 듣고 싶어 죽기 싫다. 사흘동안 폭우가 쏟아져 북한강이 넘치는 바람에 양수리가는 길이 막혔다.
광주 신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 모든 학점이 “all A"라고 한다.
199. 8. 14
막내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인천에 다녀왔다. 가기 싫은 곳이었다. 아버지가 처음 애달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한산장 국밥집에서 막내 작은아버지가 동네 친구들과 국밥과 술을 들면서 지껄인 목소린데 창호지 문짝으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자네는 백씨(큰형님)를 잘 모셔야 하네. 품팔이로 자네를 가르치셨잖은가.“
그 말에 작은아버지는 이렇게 찌증을 부렸다고 한다.
”무슨 형님 덕이야. 내가 자수성가한 게지.“
그 말보다 더 섭섭한 것은 국밥이 먹고 싶은 데도 형님을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회고하셨다. 평생 섭섭한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 아버지신데, 형제간의 우애를 태산처럼 여기신 분인데,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머슴살이로 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나는 작은아버지가 원망스러웠디.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 얼굴을 가장 많이 닮은 막내 작은아버지에게 자주 용돈을 드리곤 했다.
1996. 8. 22
한창 큰돈을 벌 때 마음을 돌리고 소설 공부에만 매달린 것, 수백억 짜리 부동산을 싸게 횡재할 기회를 버린 것,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에서까지 체인점을 내달라고 했지만 거절한 것 모두가 내 끼 탓이리라.
준영이가 하는 짓이 너무 귀엽다. 아까는 할머니와 셋이 입구에 있는 돌 간판 앞에 앉아 놀다가 할머니만 뽀뽀해주고 내게는 거절하자 ”이젠 준영이와 안 놀아.“ 하고 돌아서서 잔디밭 풀을 뽑는데, (할머니 말에) 준영이가 심각하게 고개를 숙이고 서서 땅을 내려보다가 할아버지를 훔쳐보다가 갑자기 할머니 손을 끌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강렬히 끌어 다른 데를 가자는 것으로 알았는데, 할아버지한테 가자고 했단다. 그리고 할아버지한테 뽀뽀해주었다고 한다. 통박을 재보니 할아버지와 소원해져서는 안되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1996. 8. 24
26일이 개학이라 아내와 유라와 준영이를 데리고 광주에 내려갔다. 일요일에는 정서방이 군산에서 내려와 함께 훼미리 공원에 가서 준영이와 말을 타고 동물원 구경도 했다.
2개월간의 방학이 아깝다. 증축관계로 잡념에 묻혀 살다가 시간만 날렸다.
1996. 8. 30
학생들 말에, 조태일 학장이 내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설도 잘 쓰지만 시도 잘 쓴다.” 고 했단다. 처음 써 본 신데, 정말 시가 뭔지 모르는데.
1996. 9. 2
1학기와 마찬가지로 월요일, 금요일 수업을 주간으로 돌려 압축해서 화, 수, 목만 수업하게 되어 몹시 피곤하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수업이다. 오후에는 집에서 공부하다가 낮잠을 자기도 한다.
8시 30부터 2학년 詩이론 시간에 들어갔다. 이은봉 교수는 두 시간 강의 중에 내 얘기를 두 번이나 한다. “자기 리듬”에 대한 강의 중에 내 리듬을 이야기 하며「은장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칭찬했다. 학생들이 모두 쳐다보는 바람에 어색했다.
1996. 9. 29
나는 한 인간이 세상의 깊고 넓은 것, 심지어 세상의 무게를 뒤흔들 축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57살인 이제야 깨달았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두꺼운 바깥세상의 껍질에서만 꼼지락거리는 벌레처럼 기어 다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1996. 10. 23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용의자 안두희를 박기서가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다.
1996. 10. 8
이화경 교수와 둘이 보디가드 커피숍에서 그녀의 작품을 분석했다. 나의 친절한 가르침에 그녀는 탄복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 인생의 진로 문제에 빛이 보여요.”
그녀의 말이다. 끼가 대단한 여자다.
1996. 10. 11
대한민국이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다.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되었다.
1996. 10. 30
오늘 아동문학 시간에는 내가 리포트로 제출한 동화「솔가지」를 공부했다. 크게 읽어줬더니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다. 어느 놈은 평을 해랐더니 “제 정서에 맞아요. 저도 뱀을 잡아봤거든요.” 한다.
1996. 11. 11
문호리에서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아내 차 액센트로 출발했다. 차가 막히지 않아 서초동까지 1시간 만에 도착하여 집에 차를 두고 택시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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