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86회)

충남시대 2025. 9. 23. 14:19

잔아(김용만) 작가님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수감

1995. 8. 29

  명지대 학과장한테서 교수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양평 집으로 전화가 왔다.  

1995. 8. 30

  윤대녕, 차현숙 등 신세대 작품을 읽었다. 그것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요즘 소설이 이상해진다는 조남현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몸은 나른한데 기분은 왜 이리 상쾌할까.

1995. 10. 2

  희곡 담당 전성희(38) 교수가 여학생 하나와 같이 문호리 집으로 찾아왔다. 무려 7시간 동안 내 서재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는 자유로운 삶으로 끝내겠다고 했다. 희곡을 쓰고 연극 영화에 미쳐있는 그녀는 핫팬티를 입고 수업하는 개방된 여자였다. 나보고 사랑하라고, 급하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 그녀의 어머니가 혜숙 씨와 언니 동생 사이임을 알고 놀랐다. 전 교수는 벽오소와 서풍굴 등 고향 토속명칭을 잘 알고 있어 놀라웠다. 전 교수 어머니는 마산국민학교와 군산여고를 나왔고. 아버지는 이북 북청 출신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소설을 쓰라고 권했다.

1995. 10. 15

  모처럼 술 청하를 마셨다. 새벽 1시 TV에서 <Fisher king>을 보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높은 계곡에 천당이 보였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수채화 같았다. 하늘에는 초승달도 아니고 보름달도 아닌 반쪽짜리 달이 비스듬히 떠있었다. 

1995. 10. 20

  서울예전(서울예술전문대학) 발전 후원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처음 발족하는 셈이다. 나는 문예창작과 학부형 대표로 참석했다. 최창학, 박기동 교수와 같이 뷔페를 들었다. 학과장인 박 교수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학장을 비롯한 다른 교수와 내빈들과도 인사했다.
1995. 10. 24

  서울예술전문대학 안산캠퍼스 기공식에 연세대 정현기 교수와 함께 다녀왔다. 나는 재학생 학부모 대표로, 정 교수는 졸업생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셈이다. 행사 후에는 정 교수와 둘이 오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5. 11. 1

 첫 얼음이 얼었다. 오늘부터 담배를 끊었다. 
 이제 내 체질대로 심미적 작품을 써야겠다. 그런데 문체변화 시도가 두렵다. 엄청난 평을 받은 토속문체가 아닌가!

  WIN(월간中央)에서 나를 취재하기 위해 두 기자가 찾아왔다. 사진을 여러 군데서 찍었다.

1995. 11. 11

  희경이가 부엌에서『인간의 시간』을 읽는다. 下권 마지막 부분이다.
  “어떻니?”
  “.....”  “어디가 젤 좋니?”
  “마지막 부분요.”
  “어떤데?”
  “용해가 미친 미나를 사랑하는 장면요. 나도 그런 사랑 받고 싶어요.”
  “예끼, 그건 소설이잖아.”
  “소설도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일을 쓰잖아요?”
  “그건 그렇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경이는 여고시절 산속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머리가 정상이 아니다. 배추를 다듬은 쓸기를 옷장 속에 넣어두기도 했는데 무슨 일을 저지를까봐 걱정이다.

1995. 11. 18

 『묵호를 아는가?』의 작가 심상대가 하룻밤 자고갔다. 자그마치 11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편「속도에 관하여」를 수정했다. 경희대 대학원 시절 이정은 박사과정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극찬한 작품이다.
 
1995. 12. 3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 12 사건과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구속 수감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지난 11월 16일 5000억 비자금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95. 12. 12

  예수는 약자의 편에 서 있었음이 확실한 것 같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를 따르리라. 요즘 이상하게도 교회에 나가고 싶다.

1995. 12. 23

  준영이네와 나래네가 함께 모였다. 정 대위가 2주간 청주교육으로 유라가 임시 와 있다. X-mas 트리를 장만했다. 난생 처음 트리를 장식한 셈이다.

1995. 12. 31

  세계인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삶과 인간, 신의 존재 등 보편성 있는 주제를 다뤄야 한다.

1996. 1. 1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잠시 밖에 나가 고개를 숙였다. 달빛이 밝았다. 눈 쌓인 사리제에 내 외로운 집이 있다. 무엇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내가 변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내는 준영이 돌잔치 준비로 미리 군산미군비행장에 가 있다.

1996. 1. 8

  태호가 운전하는 내 차를 타고 아내와 셋이 광주대학교에 다녀왔다. 밤이 늦었는데도 조태일 예술대학장은 사무실에서 젊은 소장파 교수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특별한 대접이 고마웠다. 벌써 편입시험을 모두 끝낸 시기여서 혹시나 하는 기대에서 서류를 내보라고 했던 것이다. 경희대 대학원 출신인 학장은 내게 무척 친절했다. 그 당시만 해도 광주대학교는 전국에 산재한 8개의 개방대학교 중 하나였다. 그래서 편입이 끝난 시기지만 광주개방대학교를 지망했던 것이다. 더구나 광주대 소장파 교수인 신덕룡 교수는 내『늰 내 각시더』를 평한 적이 있어 나에 대한 명성을 알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에서 태호에게 마지막 기회이니 공부 잘해서 석사학위를 받으라 했다. 며칠 전 읽어본 <문학미디어>에 발표한 태호의 등단 작품이 제법이었다. <문학미디어>는 발간 당시부터 3년 가까이 내가 주간을 맡았던 계간지였다. 그 후 나도 모르게 한국 최고의 서울예전에 입학하여상위권에 들었으니 한번 기대해 봄직도 했다. 하지만 태호는 애비의 뜻을 저버리고 추락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물리학의 道>의 저자이며 물리학자인 카프라는 “우리 인류가 50년 뒤에도 존재한다면....” 라고 단서를 달았다. 2050년 인류의 잔존은 자연에 순응해야 가능할 것이다.

1996. 1. 12

  전혀 알지 못하는, 서초동 ‘사랑의교회’ 최재하 목사한테서 전화가 왔다.『늰 내 각시더』의 ‘작가의 말’에서 아버지의 눈물 부분을 읽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변장한 예수님」으로 느꼈노라고 했다.
  예수님에 대한 작품을 쓰려면 그의 본성은 꿰뚫되 부분에 옷을 입혀야 한다고 소설문장론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내일부터 네팔 여행이 시작된다.

1996. 1. 13

  방콕 돈므앙 공항 부근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한창 개발되는 외곽지역이다. 여기 저기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었다. 태국의 언어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크메르語로서1200년 전 태국 초대 왕조인 스쿠타이왕(2代?) 때 처음 문자가 생겼다. 전 세계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이 나라는 일찍부터 요리가 발달되어 고기 요리 한 가지만 해도 무려 200여 가지의 메뉴를 짤 수 있다. 유럽이 음악이 발달한 귀의 문화, 일본이 손길이 섬세한 손의 문화라면 태국은 미각이 예민한 혀의 문화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공항 인파의 거의가 한국 사람들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출구에서 방문객을 기다리는 무수한 엽접객 중에 아무개를 찾는 한국어 피켓이 태반이라는 사실. 과연 듣던 대로 7년여 만에 와 본 태국의 실정. 저들의 몇 프로가 사업관계나 건전한 문화관광 목적으로 온 사람들일까. 보나마나 웅담 녹용 등을 싹쓰리해 갈 저질 관광객일 거라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 얼른 빠져나왔다.

1996. 1. 14

  돈무앙 공항을 이륙한 여객기는 3시간여의 비행 끝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며 신비스러운 땅으로 느껴지는 네팔(Nepal)의 카투만두 국제공항에 내렸다. 국제공항이라 부르기가 멋쩍을 만큼 어설프고 황량한, 마치 시골의 간이역을 연상시키는 공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