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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3회

중대에 이렇게 한 기수가 많이 오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영부영한다며 선임들은 우릴 힘들게 했다. 내무반에 들어가 선임에게 전입 신고를 하였다. 내무반 한쪽에 머리를 박고 다른 한쪽에 다리를 쭉 뻗어 얼차려를 받았다. 6월 23일 무더운 여름에 그렇게 한참을 하자 고요한 가운데 땀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힘에 겨워 내무반 바닥에 떨어진 친구들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열중쉬어’ 한 상태에서 앞으로 전진을 외쳤다. 머리가 아파 전진하지 못하는 동기들은 몽둥이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신고를 마친 다음 얼굴과 손을 씻고 중대장에게 전입 신고를 마쳤다. 내무반에 들어온 후에는 각 선임 기수별로 집합하여 이러쿵저러쿵 잔소리와 간단한 얼차려를 받았다. 취침 점호가 끝나고 12시에 ‘기상’이라는 ..

이상헌 자서전 2025.05.27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2회

기관총 사격이 끝난 후 며칠간 귀가 먹먹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야외훈련장으로 출장을 갈 때면 호남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고속버스에 하늘거리는 블라우스를 입은 아가씨라도 보면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세수도 잘하지 못해 눈만 빤짝거리는 새까만 우리 얼굴, 군에 오기 전에는 모두 한가락한다며 뽐냈던 친구들인데 지금은 거의 거지 몰골이다. 황하 교장에서 훈련 마치고 훈련소로 돌아올 때면 모심기 위해 물이 가득한 논으로 몰아 올챙이 포복을 시킨다. 미지근한 물이 온몸에 닿을 때면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다. 거지 떼들은 ‘멋진 사나이’ 우렁차게 부르며 거지가 아닌 신사임을 목놓아 외쳤다. 금마에 있는 하사관학교 졸업 후 단풍 하사들이 왔다. 힘든 하사 교육을 받아서인지 그들의 눈매가 무서웠다. 그들은 이등병 계급장..

이상헌 자서전 2025.05.27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1회

밥을 먹고 잘 갔다 오라는 친구들의 말을 뒤로하고 이리저리 생각하며 훈련소 부근으로 택시를 탔다. 저녁 다섯 시에 훈련소로 들어갔다. 많은 훈련병과 가족이 훈련소 정문에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호객꾼이 도장이 있어야 한다고 해 막도장 하나를 파고, 나는 홀로 와서 남들의 이별 장면을 보며 유유히 정문을 통과하였다. 조교가 우리 집결지로 안내하였다.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모두 도착할 때까지 인원 점검을 계속했다. 컴컴해질 무렵 인원 점검이 끝나고 4열 종대로 모여 조교들에 이끌려 갔다. 정수리를 계속 몽둥이로 내리치는 바람에 거의 머리에 손을 얹고 30연대에 도착했다. 30연대 조교들에 인계한 후, 인솔 조교들은 떠났다. 가자마자 원산폭격과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얼차려가 시작되었다. 송..

이상헌 자서전 2025.05.27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1회)

김영삼 정부에서 공직자 재산 공개1993. 2. 16 밤늦게 군 출신 동창들이 습격하듯 집에 찾아왔다. 군 출신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이기정 해군제독, 손덕규 공군 준장, 김성직 육군 소장, 유치노 대령, 장영명 대령, 이명남 대령, 유원구 대령, 엄수현 대령(국방대학원 교수) 그리고 이성렬 예비역 대령과 조흥은행 지점장 윤용하가 일행이었다. 그들은 내 출판기념 케잌을 사 와 촛불을 켜놓고 아내와 함께 끄도록 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술을 마시는 중에 마침 내일 중국으로 귀국하는 임명옥이 와서 중국 노래와 심청전을 불렀다. 대단한 실력임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상해대학교 성악과를 나왔다.1993. 2. 17 며느리가 애기를 데려왔다. ..

연재소설 2025.05.27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0회)

1993년은 잔아(김용만)의 해1993. 1. 28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갠지스강 보트 관광에 나섰다. 나는 보트에 앉아 강변을 바라보았다. 이미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강변을 뒤덮다시피 했다. 손으로 강물을 휘저어보았다. 여기까지 시신을 씻은 땟물이 배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결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시신도 이 강물에 씻기고 싶었다. 기왕이면 강 상류에서 내 몸 하나만 씻기고 싶다. 아니, 내 시신도 저들처럼 강가 탁류에서 씻겨볼까? 장작개비로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을 둘러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신이 드나드는 골목길을 답사하고 유적지를 관람할 때도 그런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후 7시에 출발하는 야간특급열차를 타고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칼카타로 향했다. 이튿날..

연재소설 2025.05.27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69회)

링가(Linga)와 요니(Yoni)의 결합체인 맷돌1993. 1. 19 오늘은 에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에 응했다. 4시에는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술판에서 임재걸 문화부장이 나를 세워 소개하며 노래를 시켰다. 여기저기서 『늰 내각시더』를 외치며 박수쳤다. 숙명여대 김주연 교수가 가장 크게 소리쳤다. 내 옆에는 서울대 조남현 교수와 이문열 소설가가 앉아 있었는데 이문열 소설가도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추켜세웠다. 매일 배달되는 여러 편지와 엽서 중에 유일하게 용고동창 이정실의 편지도 들어 있었다. 그는 전화에서도 “어떤 대중소설보다 네 작품을 읽으니 쪽쪽 빨려든다”고 흥분했다. 나는 이정실에게 “네가 문학 평론가가 돼.”라고 했다. 통할 수 있는 동창이 있어 다행이었다. 김철환도 탈랜트..

연재소설 202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