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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장 출신 남문우 변호사 자전(自傳) 이야기

충남시대 2023. 2. 9. 16:09
대검찰청 중앙수사국 직원 시절Ⅱ

 

 

 1962년 말경 중앙정보부에서는 범죄분석과를 신설하고 대검찰청 수사국의 협조를 얻어 우리나라 경찰과 검찰에서 인지하여 수사한 모든 범죄에 대하여 각종 통계를 만들어 그것을 자료로 “범죄분석지”를 발간하여 범죄수사 및 형사정책의 자료로 제공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종로구 경훈동에 있는 당시 경제기획원 통계국 2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천공수(穿孔手)로 여자 직원 40명을 선발하여 일선 경찰서에서 범죄인지하여 송치할 때 첨부하여 송부해 오는 범죄통계원표 3매(발생통계원표, 검거통계원표, 피의자 통계원표)를 천공기를 이용하여 40명의 천공수들이 펀치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를 아래층 경제기획원 통계국에서 설치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에 넣어 각종 범죄통계표를 만들고 그 자료를 근거로 학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범죄 원인 분석 등 논문을 기고 받아 각종 통계표와 함께 한 권의 “범죄분석지”를 만들어 전국 검찰과 경찰에 배포하는 것이 범죄분석과의 임무였다.

 

  나는 범죄분석과 신설 후 얼마 안 되어 중앙정보부에 파견되어 “범죄분석지”를 발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각종 양식에 맞추어 통계표가 나오면 그 통계표를 분석하여 분기별 범죄 특징 등을 기술하여 논문을 작성하고 특정분야, 예를 들면 소년 범죄의 원인과 대책, 학생범죄의 원인과 대책, 강력범죄의 원인과 대책, 여성범죄의 원인과 대책 등에 대하여는 해당 통계자료를 첨부하여 대학 교수 등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논문을 쓰게 하여 “범죄분석지”에 수록하였는데, 나는 전문가들을 찾아 그들의 원고를 받아오는 것이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다.

 

 내가 찾아 다니면서 원고를 부탁한 분들은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인 김기두 박사, 고려대 법대 남흥우 교수, 연세대 법대 정영석 교수, 이태영 변호사 등 쟁쟁한 분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1963년 4월말 드디어 『범죄분석』 창간호를 만들어 각 검찰청과 경찰에 배포하게 되었다. 정보부에서는 일년 여 간 범죄분석과를 운영하다가 1964년 7월경 천공수 등 직원과 함께 모든 업무를 대검찰청 중앙수사국에 이관하였고, 그 이후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국 4과에서 이 일을 맡게 되었다.

 

 내가 범죄분석과에서 일하는 동안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범죄분석과의 여직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범죄분석과의 인적 구성은 과장 한 명, 계장 세 명, 차트사 한 명, 서기급 한 명의 남자 이외에 사십명이 넘는 여자들만 있어 대부분 남자들만 근무하는 다른 검찰청의 분위기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나는 계장으로서 범죄분석지 원고 작성, 편집 등 「범죄분석」지를 만들때만 바쁘고 천공수들이 각종 범죄 원표를 카드화하여 컴퓨터에서 각종 통계표가 나오는 동안은 한가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에는 조용한 서류 창고에 가서 책을 읽고, 저녁에는 혼자 사무실에서 공부하다가 사무실에서 자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여자 직원들과 대화가 없었고, 특별히 상사라고 해서 일일이 간섭하고 귀찮게 하는 일이 없으니 모든 여자 직원들이 나를 좋게 보는 눈치였다. 때로는 여자 직원들이 인생 상담을 하거나 가정문제 등을 꺼내어 조언을 구하기도 하여 그들의 상담 역할을 하여 주었고, 평소 착실하게 보아온 여자 직원 두 명을 내 친구 두 명에게 소개하여 결혼까지 주선한 일이 있다.

 

 여자 직원 중에 고려대 법대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 있었는데, 고려대학교 응원단장을 할 정도로 성격이 쾌활하고 노래, 춤 등 재능이 풍부하여 그녀는 항상 과의 분위기를 잡았고, 봄가을로 가는 야유회장에서는 림보 춤을 추는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였다. 후에 그녀는 자기의 재능을 살려 탤런트가 되었고 지금도 가끔 TV를 보면 출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범죄분석과 과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장에 부임한 임모 과장이 기능직 공무원인 여자 직원들을 일선 검찰청에 출장을 보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범죄통계의 정확성 여부는 일선 경찰서에서 작성하여 송부하는 범죄통계원표(발생, 검거, 피의자)의 정확한 작성에 의하여 좌우되는데 초창기라 익숙지 못하여 각 일선 기관에서 작성하는 범죄통계원표의 작성내용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범죄분석과 직원이 전국 일선 검찰청에 나가 일선 담당자들을 모아 놓고 범죄원표 작성 요령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직원들이 일선 검찰청에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여성 공무원 비율이 높고 정규 공무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많으니까 문제 되지 않겠지만, 그당시는 정규직 여성 공무원 수가 거의 없다시피 하였고, 어느 조직 보다 보수적인 검찰에는 정규 여성 공무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더욱이 여자 직원들은 타자수나 천공수 같은 기능직이나 임시 공무원으로 범죄수사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범죄원표 작성에 대한 교육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우리 계장들은 과장에게 여자 직원을 지방검찰청에 출장 보내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수차 건의했지만 과장은 계장들의 말을 듣지 않고 여자 직원 두명을 출장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여자 직원들이 출장을 떠난 날 저녁 때가 되어 난리가 났다. 여자 직원들이 일선 검찰청 검사장실에 들어가 대검에서 출장왔다고 신고하자 일선 검찰청에서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전화가 왔고 이어서 대검 고위층에 “어떻게 여자 기능직 직원을 출장을 보내느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대검에서는 과장에게 문책 전화가 오고 대검 다른 직원들은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인데 과장의 미친 행동을 막지 못했느냐”는 비아냥거리는 전화를 해와 우리 계장들은 애를 먹었다.

 

 결국 출장 간 여자 직원들은 출장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고 여자 직원 출장 문제는 그렇게 헤프닝으로 끝났다. 어떻든 나는 경운동 범죄분석과 사무실에서 기숙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그렇게도 갈망하던 제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