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사법시험 합격Ⅱ
밤새 고독감 속에서 지내다가 아침 아홉시 정각에 맞추어서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 오래 기다리던 애인을 만난 듯이 반갑고 기뻤다.
그 중에서도 연휴가 끼거나 정초를 맞아 사흘씩 쉬는 날엔 사흘 내내 아무데도 못 가고 혼자 텅 빈 사무실에 고독을 씹으며 책만 본다는 것은 여간 참기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 겨울에 직원들이 퇴근하면 난방을 끄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사무실에 차있던 온기가 식지 않아 그 이튿날 아침 다시 난방이 들어올 때까지 견디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연초 사흘간 난방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사무실 온도도 급격히 내려가 고독감과 추위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튼 나는 15회 고등고시에서 총점 2점이 모자라 떨어지고 나서 16회 시험에 자신감을 가지고 응시하였으나 또 떨어졌다. 그런데 나는 떨어지고 나서 점수를 알아보고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15회 시험 때는 시험공부를 제대로 못하고도 총점 2점이 모자란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자신만만하게 시험을 치르고 예상문제도 나와 스스로 만족스럽게 답안을 썼다고 생각한 16회 고등고시 시험 점수는 평균 56점 정도 밖에 안 되는 형편없는 점수가 나온 것이다.
그 때 비로소 고등고시 시험은 참으로 어렵고 만만하게 보아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시험 명칭이 고등고시에서 사법시험으로 바뀐 후에도 1, 2회 모두 낙방하고 말았다. 그 때의 좌절감이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당시에는 다행히도 1년에 2번 또는 3번 씩 사법시험이 있어 나는 잠시 좌절하다가 금세 다음 시험준비를 위하여 마음을 고쳐 잡고 왜 시험을 보는 대로 떨어졌는지 곰곰이 원인 분석을 하였다.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사람의 시험 성적을 분석하여 각 과목마다 잘 하고 못하는 것이 없이 항상 평균 오십점 대의 점수를 받는 자는 합격할 가망이 없고, 시험 볼 때마다 점수 차이가 심하고 어떤 때는 70점을 넘을 때도 있고, 과락점수(사십점 이하)를 받는 등 기복이 심한 사람은 오히려 합격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나는 떨어진 시험 점수를 분석한 결과 잘 볼 때는 70점이 넘는 과목도 있고, 실수한 과목은 점수가 나쁘게 나와 점수 차가 심하여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한 가지 문제점은 나는 신경이 예민해서 시험 전날에는 잠이 안 와 컨디션 조절을 못하고 시험 당일 명쾌한 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4회 때는 잠을 못 자고 시험장에 나가 시험 중에 잠이 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떨어졌기 때문에 15회 때부터는 시험 전날 약방에 가서 수면제를 사서 밤 아홉시경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하면 수 백길, 수 천길 낭떠러지로 나의 몸이 거꾸로 떨어져 내리는 꿈을 꾸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잠을 안 잔 것 같이 머리가 무겁고 띵하여 기억이 희미하게 되어 시험장에서 제대로 된 답을 써 낼 수 없어 계속 떨어지고 만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시 제3회 시험 전날에는 사무실 근처에 있는 약방에 찾아가서 나의 현재의 신상을 밝히고 “시험 보기 전날 잠이 안 와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안 잔 것 같이 머리가 무겁고 기억력이 흐려지니 아무런 부작용 없는 수면제 없느냐”고 사정을 했더니, 그 약사가 좁쌀만한 하얀 알약 다섯알을 주면서 “이것을 잠자기 삼십분 전에 한 알씩 먹고 자면 잠을 편히 잘 것이다”고 해서 그 약을 사 가지고 와서 밤 아홉시경에 한 알을 먹고 이부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면서 잠을 청했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아침에 깨어나니 다른 수면제와는 달리 머리가 날아갈 듯이 가볍고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이제 나의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제 3회 사법시험 첫날 시험을 보게 되었다.
첫째 날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치르고 밤 아홉시에 자리에 누우면서 남은 수면제를 머리맡에 놓고 “만일 잠이 안 오면 이 약만 먹으면 어제 같이 잠을 푹 잘 수 있으니 걱정 없다”는 생각으로 약을 먹지 않고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곧 잠에 떨어져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잠이 오고 안오는 것은 약의 효과보다는 심리적 요인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잠이 안 온다고 미리 짐작하고 잠을 청하려고 애쓰면 쓸수록 잠은 안 오고, 반대로 잠이 안 오면 이 약을 먹으면 되니 아무 걱정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이 스스로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그 날 이후로는 수면제를 더 이상 먹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자고 시험장에 나가 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1964년 8월 20일 드디어 제 3회 사법시험 합격자 10명 중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대개 합격자 발표 이삼일 전에는 합격자 명단이 나와 총무처 고시과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합격여부를 미리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행정법 문제 중 “행정심판 전치주의를 논평하라”는 문제를 너무 간략하게 장단점만을 기술하여 답안지를 써내 아무래도 행정법 점수가 잘 안 나올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시험보고 나서 이번에도 떨어졌다 생각하고 미리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또 합격에 대한 기대도 않고 일만 열심히 하였다.
발표 이틀 전, 사무실에서 같은 과에 근무하며 평소 농담 같은 것을 않고 말수가 적은 유필수 계장이 그저 지나가는 말로 “남 계장, 고시 합격했대”하기에 나는 믿어지지 않아 “누가 그럽디까?”하고 물으니 대검 총무과장한테 전화 왔는데 “남 계장이 합격자 열 명 중에 들었대”라고 말하여 즉시 대검 총무과장에게 전화했더니 자기가 총무과 고시과장으로부터 검찰청 직원 중 남 계장이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면서 축하한다고 해서 비로소 합격했나 하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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