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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장 출신 남문우 변호사 자전(自傳) 이야기

충남시대 2023. 2. 22. 15:00
사법시험 합격Ⅲ

 

 

 나는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 하늘을 찌를 것 같이 기쁘고 그 기쁨을 나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나 이상으로 사법시험 합격을 고대하던 아내에게 한 시간이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합격자 명단을 보기 전에는 나 스스로 합격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만약에 아내에게 말했다가 뒤집힐 경우 그 실망감을 어찌 감당하랴 싶어서 정식으로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나 혼자 가슴을 졸이면서 합격자 발표일까지 이삼일을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 미쳐 몰랐다.

 

 드디어 발표날인 1964년 8월 20일 오후, 같은 과 직원 이영훈, 강정훈 등 직원 서너명과 함께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광화문 옆벽에 붙여놓은 합격자 명단 발표를 보러 갔다. 나보다 몇 발짝 앞서 뛰어간 이영훈 등이 “남문우 있다!”고 소리쳐서 나도 뛰어가 보니 열명의 합격자 명단이 적혀 있고, 내 이름을 확인하는데 한참 걸려 비로소 내가 정말 합격 했구나 하고 안도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고시공부를 시작한지 4년 만에 나의 대학 동기들 보다 평균 오육년 늦게 또 실제 나이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제 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사법시험과 관련해서 아내의 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여기에 소개한다.

 

 평소 나의 아내는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꿈을 잘 꾸어 용케도 그 꿈이 현실과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꿈을 믿게 되었는데, 시험 볼 때마다 시험을 본 후 아내에게 “혹시 꿈꾸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안 꾸었다”고 가볍게 대답하고선 시험에 떨어지면 아내는 “나는 당신이 진작에 시험에 떨어질 줄 알았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어떻게 떨어진 줄 알았느냐”고 물으면 “당신이 시험 보던 날 당신이 높은 산을 어렵게 기어올라가다가 9부 능선에서 미끄러져 내려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꿈을 꾸었는데 어떻게 합격하느냐”고 해서 “왜 진작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 “당신이 실망할까 봐서 말 안 했다”고 하였다.

 

 내가 시험에 합격할 때도 시험을 보고 나서 “당신 꿈을 꾸었느냐”고 물으니 “안 꾸었다”고 해서 그런 줄 믿었는데 막상 합격하자 아내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나는 당신이 이번에 합격할 줄 알았다”고 웃으면서 내가 시험을 보던 날 꾼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젊은 시절 남문우 변호사의 가족사진

 

 당시 우리 가족들은 아현동 원형(집주인 아들 이름)이네 건넛방에서 셋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방은 단칸방이었고 문을 열면 솥이 걸린 주방이 있었다. 수돗물이 귀하던 때라 그 옆에 물독을 놓고 물이 나올 때 물을 받아 물독에 부어두고 물을 먹던 때였다. 아내가 꿈에 주방 옆의 물독 위에 매달아 놓은 조기가 살아나서 우리 독 안에서 누런 비늘을 반짝이며, 아가미를 벌떡거리며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주인집 원형이 어머니가 살아 있는 조기를 보더니 자기가 가져가려고 달려드는 것을 아내가 물독을 덮고 못 가져가게 막아 살아 있는 조기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꿈에 조기가 살아서 벼슬을 상징하는 누런색을 띄면서 물을 마시는 꿈을 꾸었으니 당신이 이번에는 꼭 합격할 것이라 믿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나는 “당신은 내가 물을 때는 꿈을 안 꿨다고 하더니 왜 그런 좋은 꿈을 꾸고서도 말을 안 했느냐”고 하자 아내는 “좋은 꿈을 미리 이야기하면 효험이 날아가기 때문에 말을 안 했다”고 해서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어쨌든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과 신기한 꿈 덕분에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여기고 모든 영광을 아내에게 바치고 싶었다. 꿈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는 시험 합격한 후에도 계속해서 시험에 떨어지거나 시험 기일은 임박했는데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마음 졸이고 걱정하는 꿈을 계속 꾸었고, 최근까지도 그런 꿈을 꾸곤 한다.

 

 꿈속에서 시험에 떨어지면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는데 시험 준비는 전혀 안 되어 몸을 달다가 막상 꿈에서 깨어나면 꿈이었구나 깨닫고 안도의 숨을 쉬곤 하였다. 아마도 최근까지도 이런 꿈이 계속 나타나는 것은 내가 몇 년간 시험 공부하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여 그 옛날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기도 한다.

 

 

법무부 차관과 장관으로부터 받은 교훈Ⅰ

 

 

 내가 1964년 8월 20일 제 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모든 일간지에 합격자 열명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최고령자로 나에 대한 프로필 기사가 났고, KBS방송국에서 내가 사는 셋방에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여 나의 자라온 환경과 공부한 경위, 가족 관계 및 앞으로의 계획 등에 관하여 대담 형식으로 약 칠분 간 녹화하여 1964년 8월 26일 오전 일곱시 삼십분에 “오늘이 있기까지”라는 제목으로 라디오 방송에 방송되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어머니는 손자와 아들이 옛날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고 기뻐하셨고, 아내는 물론 동생들 모두 “이제 우리 집안은 살아나게 됐다”면서 기뻐했다. 어머니는 얼마 후,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큰아들을 서울법대를 나와 사법시험까지 합격시켰고, 둘째와 셋째 아들도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시켰다는 공로로 충남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하셨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