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일반직 공무원으로 검사 직무대리를 한 사연Ⅰ
나는 1964년 9월 1일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제6기생으로 제 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열명과 먼저 합격한 세명과 함께 입학하여 사법대학원생이 되었다. 당시 사법대학원 학생들에게는 국가에서 사무관으로 대우하여 판례연구비 명목으로 매월 사무관 봉급에 해당하는 돈을 주었다.
나는 대검찰청 검찰주사(6급) 신분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사법대학원생을 사무관(5급)으로 대우해 주었기 때문에, 이중 공무원 신분을 가질 수 없어 사법대학원 입학 전에 대검찰청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나보다 먼저 합격한 중앙수사국 동료 직원들도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사표를 내고 나갔기 때문에 나의 사표 제출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직속 상관이시던 대검 중앙수사국장이 나의 가정형편을 잘 알고, 당시 검찰총장께 말하여 나에게 검찰청에 계속 근무하면서 사법대학원에 다니라고 사표를 수리하지 않아 사법대학원 수료 때까지 계속 검찰청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나는 대검찰청 직원이 된 후 중앙정보부에 파견 나가 검찰청에서 받는 월급과 중앙정보부에서 받는 정보비 등으로 겨우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살았는데 내가 검찰청에 사표를 내면 2년간 사법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가족들의 생계비 조달이 나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그렇다고 사표를 안 낼 수 없어 사표를 냈는데 중앙수사국장과 검찰총장이 나의 가정 형편을 잘 알고 사표 수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를 불러 “남 계장이 사표를 내면 2년간 사법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가족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이냐, 아무 걱정 말고 사법대학원에 다니면서 사무실 일도 열심히 하라”고 지시하였다. 나는 원칙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분들의 호의를 고맙게 받고 그 대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여 그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리라 다짐하였다.
그 덕택으로 사법대학원에 다니면서 검찰청에서 받는 월급과 사법대학원에서 나오는 판례 연구비 등을 받아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었다. 문제는 1년 후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받고 검찰청 실습을 나갈 때였다. 당시 검사시보는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와 소추권을 가지고 검사와 똑같이 사건을 배당받아 처리할 수 있는 때였다.
나는 현행법상 검찰 일반직 공무원으로서 검사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검사 직무대리 발령 전에 또 다시 검찰청에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대검찰청 총무과장은 당연히 나의 사표가 수리될 것을 생각해 나의 사표로 공석이 될 주사 승진 대상자의 성명과 나의 사표를 동시에 검찰총장에게 올렸다. 그런데 사표를 낸 후 다음날 당시 검찰총장 비서관이 전화로 “검찰총장께서 부르시니 지금 즉시 검찰총장실로 오라”고 하여 총장실에 찾아가 검찰총장께 인사를 드렸더니 검찰총장이 “지금 사표 내면 가족들 뭐 먹이려고 그래. 아무 걱정 말고 사법대학원 졸업 때까지 그대로 있으면서 일이나 열심히 해”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이번에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받고 검사의 직무를 하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검찰 일반직 공무원이 검사의 권한을 행사하는 꼴이 되므로 더 이상 일반직 신분을 가질 수 없습니다.”고 말했으나 검찰총장은 “검찰총장인 내가 허락하는데 무슨 문제냐, 잔소리 말고 나가봐”하고 역정을 내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나와 그대로 검사시보의 자격으로 검사 직무대리를 4개월간 하였다.
검찰총장의 배려 덕에 사법대학원에 다니는 2년 간 두 군데서 월급을 받아 가족들을 부양하며 사법대학원 학업을 마치고 1966년 8월 30일 사법대학원에서 수료증을 받고, 같은 해 9월 30일 검사 임관을 앞두고 세 번째 제출한 사표가 수리되어 5년 5월 간의 검찰 일반직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나를 보살펴 준 신직수 검찰총장의 이야기를 잠깐 하고자 한다.
검찰총장님은 1951년도에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다가 전역 후 변호사로 활동 중 5·16 혁명 직후인 1963년 12월 검찰총장에 임명되어 1971년 유월까지 장장 8년간 역대 최장수 검찰총장을 역임하고 그 후 법무부장관, 정보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서른 여섯의 젊은 나이에 검찰총장에 임명되자 어느 공무원 조직보다 권위적이고 보수적 조직인 검찰청에서 반겨할 리 없었다.
더욱이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몇 십 년간 검사생활을 하면서 대검 검사로 승진하여 권위의식과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대검찰청 검사들과 전국 검사장들은 자기들보다 십여 년 이상이나 나이가 어리고 경력도 고작 군법무관 생활 몇 년에 불과한, 계급도 소령으로 전역한 검찰총장을 상사로서 반갑게 받아들일리 없었다.
그러나 검찰총장은 몇 달 안에 권위적이고 냉대하던 검사장들을 굴복시키고 말았다. 그것도 지위와 강압이 아닌 인간적인 대접으로 콧대센 대검 검사와 전국 검사장들을 감복시켜 그들의 존경심을 받아낸 것이다.
예를 들면 대검 검사에게 업무지시를 하려면 당연히 총장실로 불러지시하면 될 것을 총장님이 직접 대검 검사실에 들러 “애로사항 없느냐”고 묻고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상대방 인격을 존중해 주고 상대방 의사를 유도하여 업무처리를 하니 콧대 센 대검 검사들도 차츰 검찰총장의 인격적 대우에 감복하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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