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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장 출신 남문우 변호사 자전(自傳) 이야기

충남시대 2023. 1. 17. 10:20

 당시 나는 취직이 시급했으나 그것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오직 목표인 고등고시 합격 때까지 가족들의 생계비를 조금이라도 보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는 말할 것도 없이 어느 직장이 고등고시 시험 준비에 도움을 줄 것인가에 있었다.

 

 국토개발대 요원 합격은 법무부를 지원했기 때문에 대검 중앙수사국과 같은 부서여서 당연히 9급 공무원보다는 두 단계 위 계급인 7급 공무원인 중앙수사국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나 문제는 대검 중앙수사국과 법원 일반 직원 중 어느 곳이 고등고시 시험 공부에 도움이 되느냐였다. 나는 당시 무지한 생각으로 아무래도 고시 공부하기에는 범죄 수사하는 기관보다는 재판을 하는 법원이 훨씬 시험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1961년 4월 1일 오전 9시, 서울지방법원에 첫 출근을 하였다. 법원장에게 신고하고 다시 사무국장에게 인사를 갔더니 “여러분 우리 법원에 오신 것을 축하한다. 그러나 앞으로 근무시간에 고등고시 공부를 하는 것을 금하니 근무 시간에 책 볼 생각을 하지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닌가. 곧 이어 나는 경리과로 배치되어 사무실에 갔더니 책임자가 주판을 내주면서 “주판을 많이 놔 봤느냐, 앞으로 주판을 많이 써 먹게 될 것이니 익숙해지게 연습하라”고 하여 나는 고등고시 시험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대검 중앙수사국을 버리고 법원으로 왔는데 너무나도 나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즉시 고등고시 시험공부를 못하는 직장에는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점심 시간에 환영회를 한다고 남으라는 것을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 사표를 써 가지고 법원에 들어가 과장에게 사표를 내고 “나는 다른 뜻이 있어 법원에는 다닐 수 없다”고 했더니 과장이 펄쩍 뛰면서 “왜 보직이 마음에 안 들면 원하는 부서에 재배치 할 것이니 희망하는 부서를 말하라, 당신은 성적도 좋아 2등으로 합격해서 우리는 대우하는 차원에서 좋은 곳으로 배치했는데 희망 부서를 대면 보내주겠다.”고 간곡하게 권유하는 것을 나는 뜻을 이미 정했기 때문에 그의 청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와 결국 서울지방법원으로 발령 받은 지 4시간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대검찰청 중앙수사국 직원 시절Ⅰ

 

 

△ 남문우 변호사님 젊은 시절

 

 나는 1961년 4월 9일 대검 중앙수사국에 첫 출근하여 검찰청 일반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무실에 출근해 보니 직원 모집 시험과목이 고등고시 시험 과목과 비슷한 과목을 주관식으로 치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수사관 열명과 서기(7급) 스물 네명은 모두 고등고시를 준비하다 들어온 사람들로서 나의 대학 동기생도 윤주천, 권순일, 목요상 등 3명이나 있었고, 모두 중앙수사국 직원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고등고시 공부를 하기 위하여 임시로 들어온 사람들 같았다. 중앙수사국은 기존에 있던 기관이 아니라 그 동안 경찰과 검찰, 군 부대 등에서 맡아오던 대공사철 업무를 주관하여 처리하기 위하여 생긴 신설기관이었으므로 당장 하는 연속 업무는 없었고, 업무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새로 부임한 정희택 중앙수사국장은 원대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중앙수사국을 이끌어 가기 위하여 온갖 정열을 쏟는 것 같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앞으로 대검 중앙수사국을 미국 CIA와 같은 세계적인 기구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자. 앞으로 전 세계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일할 것이고, 중앙수사국 전용 비행기도 구입할 것이다.”라고 왕성한 의욕을 보였다.

 

 내가 중앙수사국 직원이 된 후, 45일 만인 1961년 5월 16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5·16혁명을 맞았다. 5·16혁명이 나자마자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생기고 중앙정보부가 생겨 중앙수사국이 하려던 모든 업무를 중앙정보부에서 하게 되어 중앙수사국은 탄생한지 45일 만에 할 일을 모두 잃고 말았다.

 

 우리들은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처음에는 위 사람의 지시로 밖에 나가 정보 수집을 하러 다녔으나 책만 보다가 아무 경험 없이 하는 정보수집인들 제대로 될 리 없었고, 그것이 아무 쓸모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앞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대하여 토론하고 국가의 앞날도 걱정하였다.

 

 그러다가 모두 고등고시 공부하다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등고시 시험 준비에만 열을 내게 되었고, 나도 아직 낫지 않은 배를 움켜쥐고 법률 책을 읽었으나 건강이 온전치 못하여 머리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일 없이 보내던 중, 중앙정보부에서 중앙수사국 직원 중 서기 스물 네명 전원에 대하여 필동에 교육장을 차려놓고 미국 CIA요원 두명을 초청하여 정보교육을 시켜 우리들은 2개월 간 중앙정보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기간 동안 우리는 점심 제공을 받는 등 최상의 대우를 받았다.

 

 교육이 끝나갈 무렵 정보부에서 나온 담당관이 우리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당신들은 모두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여 중앙수사국에 들어온 수재들이고, 또 정보교육까지 받았으니 정보부에 온다면 사무관으로 승진 발령할 것이니 정보부로 오라”고 회유하였으나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모두 중앙수사국이나 정보부에 가서 출세하려고 공무원이 된 것이 아니고 모두 고등고시 시험공부를 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보부의 호의를 거절하고 다시 검찰청으로 되돌아왔다.

 

 중앙정보부에서는 자기들의 직원을 만들려고 비싼 돈을 들여 CIA요원을 강사로 초빙하여 교육시켜 놓았으나 한 놈도 남지 않겠다고 모두 검찰청으로 되돌아 왔으니 몹시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 무렵 동료 중 목요상, 석춘재, 양춘용 등 세명은 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중앙정보부 교육을 마친 후 사표를 내고 떠나갔다. 나는 당시 몸이 아파 13회 고등고시 시험을 치르지도 못했지만 동료들이 합격해 나가는 것을 보고 몹시 부러웠고, 나는 언제 합격의 기쁨을 맛 볼 수 있을까 하고 탄식하기도 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