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7회)

충남시대 2023. 3. 28. 10:43
권총 빼준 거이 이상하외다

 

  동호는 공비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몸에 포승을 질렀다. 그리고 호송 직원과 함께 지프에 태우면서 얼른 등짝을 훔쳐보았다. 목덜미가 아닌 등짝에 붉은 작대기 자국이 한 줄 그어져 있었다. 
  한 줄뿐이라니.....
  타박상을 보는 순간 동호는 이번 일이 단순한 공비 압송에 그칠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비는 강릉까지 달려오는 동안 묻는 말에도 입을 다문 채 살기찬 눈으로 연방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강릉에 도착하여 유치장에 수감되고서야 공비는 몸에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는데 밥도 잘 먹고 담배도 곱게 받아 피웠다. 목욕을 시켜주고 새 이부자리로 잠자리를 돌봐주자 그제야 숨겨온 자기의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이튿날 대충 정황조사를 하는데도 순순히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밥을 훔쳐먹기 위해 산에서 내려와 움막에 침투한 과정과 솥뚜껑을 열고 밥을 꺼내먹은 과정, 그리고 피로와 식곤증이 겹쳐 아궁이 앞에서 졸다가 두 사람에게 작대기로 당한 과정을 진술했다. 어부들의 진술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몇 군데 차이가 나긴 해도 체포로 인정할 만했다. 그런데 조서의 핵심이랄 수 있는 기소 조건이 달린 부분에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작대기에 등짝을 맞고 권총을 빼앗긴 분분이 체포논리와 자수논리가 교차하는 지점일 텐데, 동호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작대기로 등짝 한번 얻어맞고 권총까지 뺐는데, 혹 불발이었다 해도 무술이 뛰어난 살인 전문가가 권총과 칼을 탈취당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작대기가 무서웠디요.”
  자수논리를 부정하려는 그의 몸부림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저토록 죽고 싶은 걸까? 살기 위한 진술이 아니라 죽기 위한 진술이 연민의 단계를 넘어 재미마저 느끼게 했다. 자기에게 유리한 증언이 아닌 불리한 증언에 매달리는 공비와 그와는 반대로 용의점을 찾기보다 용의점을 벗겨주려고 애쓰는 형사의 모순된 주장 사이에서 동호는 어느새 쾌감마저 느껴졌다. 죽고 사는 문제를 희화시키고 있다는 쾌감이었다.  
   “철부지 같은 말로 통할 것 같소? 잠을 자다가도 즉발할 수 있을 텐데 어부의 작대기가 무서워 권총을 꺼내줬다, 그걸 믿으란 말요? 그런데도 검거됐다구?”
   “비몽사몽이라 당했습네다. 아궁이가 뜻뜻해서 졸았디요. 기럼 졸았디.”
   “아무리 졸다 맞았다지만 가슴에 품은 권총을 쥐고 잤다면서 그걸 그냥 빼줘요? 방아쇠만 당기면 될 텐데? 그리고 당신 등짝에는 맞은 자국이 분명 한 군데였소. 그것도 피가 날 정도의 상처가 아니라 붉으스름한 흔적에 불과했소. 그 정도의 충격인데 대항하지 못했다고?” 
   “길쎄, 나도 기건 이상하외다. 하디만서두 느닷없는 실수, 기거이 인간의 약점 아니갔수? 느닷없이 살고, 느닷없이 죽고.......”
   동호는 그의 여유스런 말이 반가우면서도 “살기 싫어서 그러는 거요?” 하고 소리쳤다. 배승태와의 그 묘한 대거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두 어부의 진술에 의심이 든 동호는 그들이 살고 있는 움막을 찾아갔다. 미리 연락을 취한 터라 그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이 달뜬 그들은 연락하러 들른 지서 직원에게 문어회를 안주 삼아 술을 대접하고 있었다. 보상금만 타면 팔자가 늘어질 판이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터였다.
  동호는 술판 분위기가 깨지지 않도록 그들이 내미는 술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 술판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허튼소리가 나오게 되고 그 허튼소리 속에 솔직한 진술이 묻어나게 마련이었다. 동호는 축하한다는 인사를 먼저 주고 나서 “두 분이 고향친구 사이라고 하셨죠?” 하고 가장 편한 대화부터 꺼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송두문이 먼저 말을 받았다.
  “고향에도 농사치가 읎는 처지라 먹고살기 힘들어서 예꺼정 흘러왔구먼유. 들대 같으믄 농사치가 풍더분헐지 몰라도 우리네는 첩첩 산중잉게 들판이라구 혀야 미친년 볼기짝 만혀서 품팔이감도 읎구먼유. 혀서 앉아 굶으나 서서 굶으나 매한가지다 생각허구설랑은 엣다 모르겄다, 아즉은 젊은디 워디 가면 굶어죽으랴, 그러큼 맴을 단단히 먹구설랑 둘이 훌훌 떠났쥬. 그러구선 대전꺼정은 나왔는디 거기서 워디로 갈까 허다가는 저 친구가 허는 말이 같은 값이면 물고기나 실컷 먹어보자고 혀서 예꺼정 흘러왔구먼유.”
  송두문은 신이 나서 말을 좔좔 엮어나갔다. 보상금은 타놓은 거나 진배없으니 돈가방 들고 처자식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동호는 송두문의 말에 재미를 느끼고 일부러 두 사람에게 야지랑을 떨었다.
  “충청도에도 바다가 있잖아요? 산협에도 저수지나 개울이 있을 테고.”
  “말씀 마슈. 저수지나 내깔이 있긴 혀두 물고기는 씨가 말랐슈. 내깔은 웬 잡놈이 죄 들쑤셔서 송사리 새끼 하나 읎구, 저수지란 저수지는 몇 해째 가물다봉게 고기란 고기는 다 밟혀죽었쥬.”
  “고기가 밟혀죽다뇨?”
  “으이구, 형사님은 고기가 지천인 물가에 사싱게 잘 모르시겄지만 가뭄이 들면 곡식은 타죽구 물고기는 밟혀죽는다 그 말에유. 데부뚝 밑창꺼정 쫙 말라가지고 물이 째잭째잭허믄 고기가 타죽을 판인디 어느 시러배놈이 고기 타죽는 걸 보구만 있겄슈. 어른 애 헐 것 읎이 왼 저수지에 사람이 백절을 칭게 발바닥에 밟히는 고기가 부지기수다 그 말유. 그렁게 요새는 저수지서 물고기 구경허기가 처녀 사탱이 구경보다 더 힘들구먼유.”
  “그럼 여기 사시면서 고기는 실컷 드시겠네요?”
  “천만에유. 한 톨이라도 더 팔아서 집에 보내야 처자식 안 굶어죽쥬. 허기사 짜트리 정도는 아쉽잖게 먹는 셈이지만, 하여튼 예가 충청도 산골보단 훨씬 낫구먼유.”
  그때였다. 동호는 물론 지서 직원까지 송두문의 말에 재미 있어하는 모습을 보고 황억배가 슬며시 한마디를 거들었다. 
  “실인즉슨 물고기도 물고기지만 객살이 낀 것도 무시할 순 읎어유.”
  “객살이라뇨? 역마살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