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8회)

충남시대 2023. 4. 4. 13:14
치부와 한은 천양지차여 이놈아

 

 “그노므 객살이 꼈응게 바다구경 허자구 예꺼정 왔지 워디 함부로 올 딘감유. 서울보담 몇 배나 더 먼디유. 여기 오는디 워뜨게 왔능가 아세유? 기차를 타고 서울꺼정 와설랑 거기서 또 기차를 타고 밤새 달리구두 이튿날 한낮이 돼서야 강릉에 당도혔어유. 그러구두 또 뻐스를 타구설랑 한 시간여를 덜커덩덜커덩 달리고서야 사천이란 디를 왔는디, 거기서 또 시오리 길을 걸응게 그제서야 게우 바다가 뵈더라구유. 하여튼 강릉이란 디가 멀기는 육시럴허게 멀드먼유.”
  “충청도에도 바다가 있잖아요?”
  “물론 바다가 있쥬. 허지만 갯구뎅이가 씨커먼디 워디 바다 맛이 나야쥬.”
  “갯구뎅이라뇨?”
  “갯뻘 말유, 갯뻘.”
  “갯벌은 그 나름의 정취와 향기를 지녔잖아요?”
  “해금내를 향기라구요?”
  “해감내는 생명이 태동하는 거룩한 징조랄 수 있죠.”
  “강 형사님은 말씀이 워째 그리 곱데유? 허기사 갯벌을 타고 밀려오는 파도를 보믄 우주만물의 조화속이 훤히 들여다뵈는 것 같어유. 워찌 보믄 칠렁거리는 동해의 파도보담 더 신비스렁게유. 갯뻘물은 껌정물잉게 영 기분이 아니구나 싶었는디 말씀을 듣구 봉게 그 물색이 참말루 오묘허네유. 허지만서두 동해에 와서 봉게 아침마다 벌겋게 뜨는 햇뭉어리가 맴을 동허게 헌단 말유. 사는 게 힘들어서 죽고 싶다가도 그놈의 햇뭉어리만 쳐다보믄 도루 살맛이 생긴당게유. 혀서 바다 허믄 동해바다쥬.”
  “하지만 해가 지는 서해의 일몰은 더 장관이죠. 지는 해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더 들쑤시잖아요?”
  “그 말씀은 맞는 말인디유, 저처럼 세상을 헐값으로 보는 사람한테는 서해바다가 처량혀 뵌단 말여유. 바닷물이 눈물로만 뵌당게유.”

  갑자기 황억배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동호는 황억배가 왜 세상을 헐값으로 보는지 그 사유가 궁금했다. 황억배를 허무에 빠지게 한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걸 알면 그의 심상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이번 사건을 다루는데 참고가 될 터였다. 동호는 황억배에게 술을 권하며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느냐며 은근히 그의 속을 떠보았다. 하지만 황억배는 말없이 술만 마셨고 대신 송두문이 싱겁게 한마디를 뱉았다. 
  “이 사람은 눈물을 등에 지고 사는 작자구먼유. 술 한 잔 들어갔다 허믄....”
  “시끄러! 니까짓 게 내 속을 워찌 안다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는 거여?”
  황억배가 고함을 쳐서 송두문의 말을 잘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송두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아, 계집 내쫓은 게 무슨 벼슬이라도 헝 거여? 맨날 그노므 것 땜에 신상을 달달 볶게?”
  “뭐여? 이놈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웬 계집 타령여?”
  황억배가 발끈하자 송두문이 또 항억배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바람피운 여편넬 내몰았는디 뭔 미련이 남아서 저 지랄로 신상을 달달 볶는 거랴?” 
  “너 헐 말 다혔냐? 아무리 술기운이 올랐다손 쳐도 헐 말이 있고 안 헐 말이 있는 벱인디, 더군다나 강 형사님 앞이서 나미 여편네 치부꺼정 건드려 쓰겄어? 긍게 니가 막가자 그거구먼? 쌍놈!”
  “여이 썩을 놈아! 내가 니놈 여편네 치부를 건드려 득 볼 게 뭐겄냐 이놈아. 강 형사님도 그 말을 듣고 너를 무시헐 양반여? 외려 그 말을 들으믄 니 불쌍헌 영혼을 감싸주실 분잉게 그런 염렬랑 꽉 붙들어 매란 말여. 사람이 서로 친헐려믄 자기 치부부텀 까놔야 되는 벱을 너처럼 무식헌 놈이 알겄냐만, 손해봤다고 생각되걸랑 너도 내 치부를 까내봐.”
  “까낼 게 있어야 까내보지 이놈아. 생쥐처럼 약아빠진 니놈헌티 까낼 게 한 톨이라도 있겄냐 그 말여.” 
  “왜 읎어 이놈아. 우리 아버지 머슴살이 헝 건 치부가 아니고 뭐여? 우리 여편네 푸성귀 뜯어먹다 채독 든 건 치부 아니고 뭐냐구? 니놈은 쌀밥 먹고 자랐지만 난 보리꽁뎅이만 먹고 자랐는디 그게 치부 아니고 뭐냔 말여. 니놈도 알지? 우리 엄니 사탱이 가릴 고쟁이가 읎어서 동네웃음 산 것 말여. 그런디도 나헌티 치부가 읎냐?” 
  “그건 치부가 아니고 한이잖여. 치부허구 한허구는 천양지차여 이놈아. 치부는 소름이 끼치지만 한은 눈물이 나는 벱잉겨. 치부는 맥이 빠지지만 한은 독이 오르는 벱이다 그 말여. 그렁게 치부는 살맛을 죽이지만 한은 살맛을 살리는 벱이다 그 말여. 그런디두 뭐가 워쪄? 날더러 니놈 치부를 까내보라구? 생쥐보담 더 약어빠진 놈 같으니라구.”
  “허허, 뭐가 워쪄? 생쥐 같은 놈? 이런 급살맞을 놈을 봤나!”
  “그만 조용들하시죠.”
  동호는 이때다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분위기를 눙치고 나서 송두문에게 “작대기로 쳤을 때 공비는 어떤 행동을 취했나요?” 하고 물었다.
  “간단했쥬. 비루먹은 나귀처럼 팍 쓰러졌응게유.”
  “앞으로 쓰러졌나요 옆으로 쓰러졌나요?”
  “옆으루유.”
  “오른쪽? 왼쪽?”    
  “왼편으루유.”     
  “왼쪽이 맞습니까?”
  이번에는 황억배에게 물어보았다. 순간 송두문이 황억배를 쏘아보았다.    
  “맞어유. 왼편으루 팍 쓰러졌슈.”      
  “권총은 어느 쪽 손으로 빼주던가요?”
  “왼편으루 쓰러졌응게 오른손으루 빼줬쥬.”
  “오른손이 맞습니까?”
  이번에는 송두문에게 물었다. 
  “맞다마다유. 오르편으루 쓰러졌더라면 왼손으루 빼줬을 거구유.”
  “자 받으시죠.”
  동호는 송두문에게 빈잔을 내밀고 술을 따라주었다. 황억배의 말이 검거 당일보다 어눌하지 않고 당당해진 데에 의심이 들었지만 더 깊이 캐물을 수는 없었다. 경찰서에서는 그들의 공로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중이고 이미 상부에도 보고가 된 상태였다. 들리는 말로는 국방장관이나 내무장관이 직접 시상할 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