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인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법정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배승태를 호송해온 동호는 피고석 뒤에 앉아 그의 태도를 지켜보았다. 방청석에 빈자리가 없을 만큼 관심이 쏠리는 재판이었다. 무장공비의 재판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검거와 자수의 정황에 대한 심리분석이 방청객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피고는 스스로 자기 목을 옭아매고 있잖은가. 방청객 태반이 피고에게 동정의 눈길을 주는 재판정이었다. 동호는 피고인에 대한 자기의 동정적인 심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정의와 진실에 너무 집착하는 자기 자신이 혹시 결벽증 환자는 아닐까 싶었지만 자부심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진술이 시작되자 법정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 사실만 보아도 방청객이 심정적으로 누구 편에 동조하는 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지난번 삼척․울진 사건에서 피해를 당한 가족들도 끼어 있을 터였다. 창설 된지 반년 남짓한 향토예비군이어서 전투 중 희생이 큰 데다 심지어 자기 동네에서 잠복근무를 하다가 자기 가족을 공비로 오인하고 총을 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치열한 상황이었다.
변론이 시작되었다. 변론은 그동안 동호가 주장해온 진술이나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동호는 변호인을 만날 때마다 무의지적 상태에서의 즉발능력(卽發能力)을 강조했고 변호인 역시 그걸 중심 변론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국선 변호사일망정 나름대로 정성을 쏟고 난 변호인은 첫 번째 증인으로 동호를 내세웠다. 동호는 변호인의 반론에 한마디라도 더 보탬이 되리라 다짐하며 증인석으로 침착하게 걸어나갔다.
“송두문으로부터 처음 진술조서를 받은 사람이 증인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송두문의 말에는 피고가 검거될 당시 권총을 쏘며 반항했다고 진술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조서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그때 피고인도 함께 있었습니까?”
“피고인은 보호실에 있었습니다.”
“증인은 송두문의 진술을 듣고 그 총기의 성능을 검사해보았나요?”
“즉시 검사해보았습니다.”
동호는 즉시란 말에 힘을 주어 답변했다. 증인의 그런 의도를 간파하기라도 한 듯 변호인은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즉시란 어느 정도의 시간 차이를 뜻하나요?”
“그러니까 조서를 받고 나서 즉시 뒤뜰로 가서 쏴봤습니다.”
“그래서 불발될 만한 하자라도 발견했나요? 일테면 총알이 들어 있지 않았다든가 아니면 노리쇠가 작동되지 않았다든가....”
“격발해보니까 이상 없이 발사되었습니다.”
“몇 번째 격발실험에 발사되었나요?”
“첫 번째 격발이었습니다.”
“그럼 총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이군요.”
“네.”
“그런데, 이건 다른 내용의 질문일지 모르지만…….”
변호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검거한 장본인이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는데도 굳이 발사실험을 하면서까지 사실 유무를 확인한 이유가 무엇이죠?”
동호 역시 답변에 뜸을 들이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자기 진술을 객관적인 입증으로까지 다짐해주려는 변호인의 비의(秘意)에 동조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뜸을 들임으로써 자기가 되레 무장공비의 입장을 두둔해줄 수밖에 없었던 그 당위성을 좀더 선명하게 부각시킬 성싶어서였다.
“송두문씨의 태도에 좀 애매한 점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답변해줄 수 있겠습니까?”
“같이 행동한 황억배씨에게 진술을 요구했을 때 송두문씨가 황씨에게 보인 예사롭잖은 눈치 때문이었습니다.”
“예사롭잖다뇨?”
“황억배씨가 실인즉슨.... 하고 말문을 열려고 하자 송두문씨가 말조심하라는 눈치를 주었거든요.”
“그래서 황억배씨는 어떤 진술을 했습니까?”
“자기는 너무 겁이 나서 공비의 자세한 행동을 보지 못했노라고만 답변했습니다.”
“황억배씨의 진술을 수긍할 수 있습니까?
“수긍은 못하지만.... 불발이라고 주장하는 데다 피고인 역시 그렇게 주장하고 있으니....”
동호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총기에는 이상이 없던 걸로 보아 쏘지 않았을 거다 그 말이군요?”
동호는 확실한 대답을 피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기만 했다. 변호인은 무슨 심증을 굳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두 번째 증인으로 송두문을 불러 세웠다. 송두문은 좀 상기된 표정이었다.
“증인은 직업이 어부인데 고기를 받아다 팔기도 한다면서요?”
“돈이 아슁게 쬐끔씩 받아 팔 때도 있쥬.”
“그럼 장삿속이 밝겠군요?”
“장사를 얼매나 혔다구 장삿속이 밝데유? 그러구 바다에 안 나가면 맨날 움막에 틀어박혀 사는디 뭔 장삿속이 밝겠슈.”
“왜 신고를 하지 않고 직접 검거하려고 했나요?”
“지서꺼정은 멀구 그간에 도망칠 게 뻔허잖어유.”
“상대방은 무기를 소지했을 텐데 그럴 용기가 생겼습니까?”
“졸고 있응게 황씨허구 둘이 잡을 수 있겠구나 생각혔쥬.”
“황억배씨와는 같이 지내는 사인데 보수를 주나요?”
“아뉴. 둘이 잡은 고기를 노나먹어유.”
“함께 지낸 지 얼마나 됩니까?”
“일 년도 안 됐슈. 오래 산 게 아닌디 재수 읎게 무장공비가 들어왔구먼유.”
“다정한 친구 사인데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떠납니까?”
거기에서 송두문의 답변이 잠시 머뭇거렸다. 기실 막막한 답변이었다. 황억배가 말없이 나갈 리도 없거니와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해도 행선지를 밝혀줘야 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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