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동시에 작대기로 쳤습니까?
“저걸로 잡았습니까?”
“예에.”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동호는 보호실 쪽으로 걸어가며 건성으로 말했다. 직원 하나가 문 앞에 지키고 서 있는 침침한 보호실 구석에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수갑이 채워진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텁수룩한 사내의 눈이 부엉이의 그것처럼 괴물스러워 보였다. 무장공비! 동호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도저히 인간이랄 수가 없었다. 수세미 같은 머리털과 수염, 경계하는 눈초리와 표독스런 이빨, 영락없는 야수였다.
공비의 모습을 대충 살펴본 동호는 다시 근무석 쪽으로 나와 공비가 소지했던 권총과 단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두 부락민에게 의자를 내주어 책상 앞에 앉히고 백지와 볼펜을 챙겨놓았다. 간단한 진술부터 받아둘 참이었다. 먼저 키가 크고 똘똘해 보이는 부락민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찌 되시죠?”
“송두문인디유.”
“나이는?”
“서른 둘이구먼유.”
“직업은?”
“고깃배를 타쥬.”
“여기가 타향 같으신데?”
“맞어유. 충청도서 예까정 흘러왔구먼유.”
“저분 성합은?”
“황억배.”
“어느 사이죠?”
“한 집에 살어유. 배도 같이 타구유.”
“한 집에 사시다뇨?”
“우린 고향친구 사인게유.”
“검거 당시를 자상하게 설명해주시죠.”
동호가 자세를 고쳐 앉자 송두문이 먼저 “그러쥬.” 하고 말을 받았다. 그는 담배를 두어 모금 더 빨고 나서 찬찬히 말을 엮어나갔다.
“바다에 그물을 치러 출항하기 전인디유, 마악 동이 틀려구 할 때였슈. 저 친구가 먼저 일어나서 아침밥을 안치러 부엌으로 들어갈라든 참인디,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 거유. 군복을 입었더란디 얼매나 겁이 났겄슈. 보나마나 공빌 팅게유. 맨날 공비 얘길 귀따갑게 들었응게유. 혀서 저 친구는 조심조심 되로 방에 와설랑 제 귓구멍에다 입을 대고 공비! 그랬어유. 그 소리를 듣고 낭게 얼른 신고부터 허야겄다 그런 생각이 후딱 들더라구유. 그런디 생각을 다시 혀봉게 지서는 십리나 떨어졌구, 병력이 출동할려면 시간이 숼찮이 걸릴 테구, 그새 공비가 깨서 달아나기 십상이구, 혀서 이참에 큰 공이나 세워보자, 혀서 지서에 연락헐 걸 포기허구, 친구랑 합심혀서 작대기를 들구, 부엌으로 살곰살곰 다가가서, 거적문을 살짝 들춘게 증말로 도깨비처럼 생긴 괴물단지가 아궁이에다 코를 쑤셔박고 졸고 있는디 참 가관이데유. 우리 둘이서 나란히 아궁이께로 살곰살곰 다가가설랑 냅다 작대기로 목쟁이를 후려쳤쥬. 대갈통을 칠려다가 목숨은 살려야 물건이 되겄다 싶었응게유. 그런디 그 요상한 것이 거꾸러질라다가는 펄떡 상체를 세우더니 품 속에서 총을 빼설랑은 제 가슴을 쏘더란 말유. 질겁을 했쥬. 혼비백산이 바로 그런 디에 쎠먹는 말일 거구먼유.”
“그래서요?”
“그런디 조상이 돌봐줬는지 총알이 안 터졌슈. 이때다 허구설랑 우리 둘이서 재차 작대기로 후려칭게 그제사 나자빠지더라 그 말유.”
“그래서요?”
“혀서 후딱 달려들어가지구 저 친구는 두 팔모가지를 비틀고 저는 권총을 낚아채구설랑 그놈 허리에서 칼을 뽑았쥬.”
“어떻게 총을 빼앗았는지 더 자세히 설명하시죠.”
“허허, 그냥 낚아채지 워뜨게 낚아채유.”
“공비가 반항하던가요?”
“총이 불발헝게 넋이 빠져갖구 꿈쩍도 못허더라구유. 이제 죽었구나 허구 포기혔겄쥬. 그러구 또 저 친구가 얼매나 힘이 장사야쥬. 팔을 비트는디 닭모가지 비틀 때보담 더 쉬웠당게유.”
“작대기로 맞은 부분이 정확히 어디죠?”
“허허, 목쟁이라고 말혔잖어유.”
“목덜미가 맞습니까?”
“그래유.”
“두 분이 동시에 쳤습니까?”
동호는 갑자기 황억배를 향해 캐물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의 허점을 찔렀던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총이 불발이었다 해도 가슴에서 총을 빼낼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면 그깟 어부 둘 정도는 맨주먹으로라도 해치웠을 것이며 더군다나 시퍼런 단검도 지녔잖은가. 동호는 거듭 황억배에게 다그쳤다. 황억배는 마지못해 “실인즉슨.....”하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송두문의 앙칼진 시선이 얼른 황억배의 입을 막았다. 동호는 송두문의 눈치가 이상하다싶어 황억배를 다그쳤다.
“말씀을 계속해보시죠. 사실인 즉......”
“암것도 몰러.”
황억배가 동호의 시선을 피하며 반말로 찍 내갈겼다.
“팔을 비틀었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다뇨?”
“실인즉슨 덜컥 겁이 낭게 가슴이 떨려서 암것도 뵌 게 읎어유. 공비를 워뜨게 혔는지 팔을 워뜨게 비틀었는지 쬐끔도 생각이 안 난당게유. 무조건 송씨가 시키는 대로만 혔는디 그게 생각이 잘 안 난다 그 말유.”
자기의 답변이 좀 소홀했다 싶었던지 몇 마디 토를 달고 난 황억배는 배를 내밀어 두둑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동호는 송두문의 검거 주장에 석연찮은 기미가 보여 더 캐묻고 싶었지만 공무원다운 말로 예의를 차렸다.
“당국으로부터 그만한 대가를 받으실 겁니다. 반공업무를 담당한 저로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진술조서를 받은 동호는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하려고 공비의 권총을 들고 뒤란으로 나가 총알 하나를 발사해보았다. 총은 아무 이상 없이 발사되었다.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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