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5회)

충남시대 2024. 5. 14. 15:01

감히 통치자를 어떻게 팹니까?



  “특히 목욕이나 면회시킬 때, 또는 검취(檢取)나 재판받으러 호송할 때 눈여겨보고 말소리를 잘 살펴요. 식사시간에도 조심할 게 있소. 수저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오. 수저 동가리로 칼날을 세워 사고를 내거나 자해할지 모르니까 조심해요. 단체로 난동을 피울 경우도 있소. 그러니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방마다 한 명쯤 통할 놈을 만드는 게 좋을 거요. 하여튼 규정만 잘 지키면 별 탈 없을 테니 그리 알고 항상 냉정을 잃지 말도록 해요.”
  주의사항을 강조한 반장은 유치장 철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근무자의 문고리 여는 소리가 들리고 출입문이 열렸다. 반장은 나를 유치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수사과 사무실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숨통을 틀어막는 악취가 밀려왔다. 꼭 송장 썩는 냄새였다. 속을 뒤트는 그 악취 때문에 도저히 유치장 근무를 견뎌낼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감방 철창마다에서 나를 바라보는 300여 명의 죄수들이 흡사 지옥의 악귀 같다 싶어 등골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들은 낯선 틈입자인 나를 맛있는 먹이나 되는 양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그런 갈등도 잠시일 뿐, 쉬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야릇한 마력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 마력이란 어둠침침한 철책 안의 죄수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섬뜩한 무섬이었다. 뒤헝클어진 머리칼들 하며 뜸 들어 부스스해진 몰골과 거기에 눌어붙어 데굴거리는 흉물스런 눈알들이 사람의 것이 아닌 마치 악귀의 그것 같다 싶어 무섬기를 느꼈던 것인데 그 무섬기가 괴상한 힘이 되어 머뭇거리는 나를 유혹했던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힘이었다. 색다른 중력세계에서나 응용될 무슨 물리적 에너지랄까. 하여튼 그 힘이 정신을 맹맹하게 홀렸다.
  나는 조심조심 근무석 쪽으로 걸어갔다. 긴 복도를 따라 20여 개의 감방이 엮여 있고 그 복도 중간쯤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유치인명부가 놓여 있는데 전임 조장으로부터 간단한 근무 요령을 들었다. 대충 설명을 끝내자 그는 손을 잡아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새 부임지로 떠날 사람이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너무 낙담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곧 익숙해지겠죠.”
  “나도 처음에는 긴장이 되었지만 이 사람들과 일 년을 지내고 나니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솔직히 말해서 정이 들었다랄까, 이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추한 모습을 이미 드러낸 때문인지 솔직한 점이 많아요. 되레 바깥사람보다 순진해 보일 때가 있어요. 어리석기도 하고요. 어리석으니까 걸려들었겠지만.”
  “죄수들에게 동정적이군요.”
  “동정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내 시각이 변했다는 게 옳을 거요. 암튼 이 사람들이 가해자로만 느껴지지 않거든요.”
  “너무 감상적인 게 아닐까요. 환경의 적응이랄까. 그런데 냄새가 지독하네요.”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머쓱해진 조장은 한번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나가면서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는 향수를 뿌릴 수 없거든요.”

  나는 유치장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먼저 근무석 맨 좌측 방에서부터 우측 끝까지 20개의 방을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1호에서 16호까지는 일반 감방이고 17호는 소년수방, 18호는 독방, 19호와 20호는 여죄수 방이었다. 방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한 방에 10명부터 20명까지 수감되어 있는데 그들은 내가 철책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도 하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어떤 방에서는 와 하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마치 권투시합에서 승리한 챔피언에게 보내는 그런 환호였다. 나는 정말 챔피언답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멋있군, 참신하게 생겼어.”
  “저런 사람이 더 까다롭더라.”
  그런 말들을 들으며 차례로 살펴가자 감방이 금방 낯익어 보였다. 18호 독방을 지나 여감방 앞에 이르러서는 30여 명의 여수들이 상냥한 눈웃음과 손짓을 보내주는 바람에 숫제 기분이 달뜰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젖먹이를 안고 철창 안에 갇힌 한 젊은 여죄수의 모습이 눈에 띄는 순간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앞줄에 앉아 있던 삼십대 초반의 간통범이 간드러지게 흔들었다.
  “첨 뵙네요. 서울서 오셨다죠?”
  나는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전출 온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어떻게 부임 첫날부터 그런 비밀을 알았을까?
  “강릉이 좋대서 왔소. 그런데 내가 서울에서 온 걸 어떻게 알았죠? 정확히 말하면 부산서 왔소만."
  “정보망이 그쯤 돼야 통치할 수 있잖아요? 제 성은 홍이라고 해요. 이름은 마담이고요. 성과 이름을 합쳐 부르기도 해요. 홍 마담, 어감이 부드럽죠? 하지만 성깔머리는 더럽게 사나워요. 대가리로 철책을 받을 때도 있고 수틀리면 단식도 불사하죠. 그런 저를 국민들은 빵장으로 뽑아주었고 지금 잘 따르고 있어요.”
  “이제 더 소개할 게 없습니까?”
  “제 약점을 잡아서 팰라고요?”
  “감히 통치자를 어떻게 팹니까?”
  “하여튼 우리 같은 쓰레기 인생을 긍휼히 여겨주세요.”
  “나도 유치장에 들어와 있으니 똑같은 쓰레기요. 암튼 서울 촌놈 잘 봐주쇼. 강릉 사람 인심 좋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쩐지 으시시합니다.”
  “흥, 저렇게 겸손 떠는 어른치고 편한 사람 없더라.”
  “난 표리가 부동한 사람이오. 그럼 편히들 앉아 쉬어요.”
  나는 부드러운 말로 받아주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냉정하게 다듬었다. 차가운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가는 자칫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강릉경찰서 유치장은 교도소나 진배없을 만큼 규모가 컸다. 강릉시를 비롯하여 고성군, 속초시, 양양군, 명주군, 삼척군 등 강원 동부지역에서 모인 삼백여 명의 수용자 수로 보나 수감자의 유형으로 보나 교도소와 다름없었다. 간수 근무자의 기능면에서도 그러했다.
  서울 등지로 죄수들을 압송하려면 열서너 시간 동안 비포장길을 달려야 되니 죄수들을 그냥 유치해 두었던 것이다. 수용자 계층도 기결수, 미결수, 소년수, 여수(女囚), 그리고 공소 이전의 피의자와 심지어 경범까지 두루치기로 모아 놓아서 교도소도 아니고 유치장도 아닌 명칭이 좀 애매한 대용교도소였다. 죄명 또한 시시한 절도나 폭행부터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강력범에다 공갈, 사기, 횡령 등 얌체범, 세금을 포탈한 경제사범, 집총을 거부한 병역사범, 태백산맥 나무를 잘라먹은 산림범, 심지어 간첩, 무장공비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유치장의 내부 구조도 일반 교도소와 거의 비슷했다. 감방과 복도 사이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철창으로 칸막이가 되어있고 각 감방 철창에는 출입문과 쥐구멍만한 배식구가 뚫려 있는데 그 배식구 옆에는 수도꼭지가 솟아 있어 식수와 청소용 따위의 허드렛물을 조달해 주었다. 세면이나 목욕은 복도 맨 끝에 별도로 마련된 욕실에서 단체로 실시했다. 감방과 마찬가지로 복도와 철책으로 칸막이된 욕실 내부는 일반 목욕탕처럼 중앙에 냉수가 철철 넘치는 대형 욕조가 있고 몸을 담글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빙 둘러서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 써야 했다. 자살 따위의 사고 방지를 위해 샤워 꼭지를 벽면에 시설할 수 없는 데다 목욕 시간이 제한돼 있어 많은 인원이 바글댈 때는 서로 물을 퍼 쓰려고 늘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감방 하나씩 차례로 목욕을 시키는 동안 요령이 없는 작자는 때를 밀지도 못하고 맹물만 뒤집어쓴 채 그냥 나와야 될 판이었다. 일분이라도 더듬거렸다가는 감시자에게 손바닥으로 등짝을 얻어맞기 일쑤였다. 찰싹찰싹 손바닥 매를 맞으면서도 물 한 바가지라도 더 끼얹고 싶어 안달하는 죄수가 태반이었다. 어느 죄수는 숫제 사타구니에 비눗물을 묻힌 채 쫓겨날 판이었다. 다음 차례가 옆방 탈의실에서 발가벗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어쩌다 인심 좋은 간수는 마지막 적선하는 셈 치고 손수 물을 떠서 사타구니에 끼얹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성깔이 까탈스럽거나 갓 부임한 신출내기 간수는 막무가내로 규정만을 지켰다.
  “좆 먼저 닦는 법도 몰라?”
  간수들의 신칙은 대개 그러했다. 사실 먼저 물을 댈 부분은 사타구니였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나 가릴 것 없이 밤마다 손때 묻히는 곳은 거기였다. 더구나 여수들의 허벅지를 봤을 경우 남자들은 더 음탕한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여수들은 대개 사타구니를 사리지 않고 벌렁 누워 있거나 개중에는 노골적으로 단웃음을 보내기도 했다.
  이튿날은 비번이어서 나는 처음으로 경포대를 찾아갔다. 여름철인데도 바닷가는 한산했다. 동해안을 통틀어 서울 피서객은 한 명도 없었다. 경포해수욕장에도 서울을 비롯한 외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바닷가는 어디서든 멱을 감을 수 있어 해수욕장이란 호칭부터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부유층이 찾아가는 대천해수욕장이 유일하게 호칭을 달고 있을 정도여서 서울 사람들은 거의가 한강 백사장에서 피서를 즐겼다.

  간수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 언도공판이 있는 날이었다. 단체 호송 업무를 맡은 나는 죄수 27명을 묶어 법정까지 호송해야 했다. 비번 직원의 지원을 받아 공판장에 나갈 죄수들을 복도로 꺼내 압송 준비를 했다. 그들 중에는 중학생 또래의 앳된 소년범 네 명도 끼여 있었다. 전신주에 올라 전선을 끊어다 팔아먹은 특수절도였다. 전선도둑은 당국의 특별한 관심사여서 참작의 여지가 없었다.
  죄수들 중에는 육십 대 초반의 사기범도 한 사람 끼어 있었는데 유독 엄살을 잘 떠는 영감이었다. 그는 유치장 문밖으로 나오자 오줌이 마렵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모두 포승을 질렀으니 법정까지 참아요.”
  내가 냉정하게 말했지만 영감은 계속 까탈을 부렸다.
  “그걸 누가 모르우, 오줌보가 터지는 걸 어떡하란 말야?”
  “그래서 포승을 지를 때 미리 싸랬잖아요”
  “할 수 없군. 바지에 싸야지, 시팔!”
  내가 포승을 풀고 수갑만 채운 채 화장실로 데려갔다.
  “이젠 사기를 치지 마세요. 노후에 편히 쉬셔야죠.”
  “내가 일부러 사기 치는 거요?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잖소. 그래서 버릇이 된 걸 어쩌란 말요. 암튼 앙탈을 부려서 미안하오.”
  영감은 변기 앞에 서서 일부러 천천히 지퍼를 열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줌발이 없었다. 억지로 서너 방울 짜냈을 뿐이었다. 일부러 꾀병을 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바깥공기를 더 쐐야 살지 정신이 돌아버리겠소. 그러니 조장님이 이해해 줘요.”
  영감은 연방 헤헤거렸다. 내가 역정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