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법을 고안해내는 실험실의 매개물
1968. 1. 1
금년부터는 자극적인 생활을 해야겠다. 전화위복으로 일관해온 내 인생. 나는 거듭거듭 부딪치는 난관과 실수를 언제나 이롭게 전환시키며 살아왔다. 강릉에 와 있는 것이 행운이다. 유현목 감독의 <막차로 온 손님들>을 감상했다. 방화(국산영화)는 오래간만이다. 새로운 전위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본 것이다.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모처럼 망중한을 즐겼다. 태백의 계곡을 바라보며 오늘이 명절이라는 것도, 나 혼자 멀리 와 있다는 것도, 그 먼 곳이 서울이란 것도 잊은 채 조용한 멜로디에 빠져보았다.
해질 녘이 되어서야 해풍에 날리는 거리의 먼지를 마시며 교동 셋방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생각해 봤다. 내가 걸어온 모습이 바로 현실이며 막차로 온 손님일 거라고. 밤에 메모를 뒤적이다가 공군시절에 동료들이 써 준 추억 싸롱을 읽고 혼자 웃었다. 내 인상에 대한 낙서가 재미있었다. 나를 도둑놈, 강도와 같은 인상을 지녔다고 쓴 것도 있었다. 대개는 나를 인상파, 사색파, 뭔지 이상한 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록하리라
벽과 책장과 손바닥과
천정과 시계침과 내 영광 속에도
기록하리라
일러두리라
바보와 가난한 자와 점장이와
정복자와 조물주와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에도
잊지 말고 기록하라고
- 잔아 -
친구야, 빨갛고 노란 단풍을 고운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야채를 잘못 먹고 채독벌레에 시달리는 육십 노파의 부루퉁한 얼굴 색으로 보이는 그런 시력을 갖고 있는 우리는 과연 환자일까?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동공 속에는 공포가 스며있겠지?
1968. 1. 2
겨울 바람이 유치장 창문을 요란스레 흔들고 있다. 강릉의 겨울바람은 유명하다. 바람만 없다면 강릉의 겨울은 적적할 것이다. 낮에는 뒷동산에 올랐다. 여기저기 다소곳한 분지를 끼고 여유 있게 들어선 가옥들이며 울타리처럼 에두른 울창한 수림이며 멀리 보이는 푸른 동해와 태백능선, 강릉은 내 마음에 드는 고장이다. 여기 바닷가에 와 사는 게 다행이듯 유치장 간수 생활 역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 앞에는 언제나 300여 명의 특수한 대중이 있고 12명의 근무자 중에서 유일하게 죄수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어떤 폭력범은 엎드려벗쳐를 시켜놓고 엉덩이를 패는 내게 “더 때리세요. 조장님한테 맞는 건 조 금도 억울하지 않아요.” 하며 울기도 했다. 또 종교적 입장에서 병역을 거부한 도그마에 빠진 자들 도 내 말을 이해하고 따랐다. 나는 죄수들에게서 값진 인간미를 느끼고 있다. 어느 경제사범은 내 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법을 고안해내는 실험실의 매개물입니다. 순교자일지 모르죠.” 나는 그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 사실 그럴지 모른다. 우리가 다른 누구를 악인이라고 부르는 것
은 상대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법률은 존속하고 유토피아나 범죄 없는 낙원은 환상에 불과하다. 죄의 개념도 시대성에 따른 상대적인 지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들은 항시 목말라하고 있으며, 물을 주지 못하는 현실 즉 시대성의 모순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람이 몹시 분다. 밤 1시에 교대하고 귀가하는 길에서 그 북풍 답잖은 훈훈한 바람에 실컷 취해본다. 전신주나 지붕이나 나뭇가지 사이로 흩날리는 날카로운 바람소리. 아 답답하다. 도대체 현실이란 무엇일까? 현실이란 역사를 만들기 위한 한갓 장식품에 불과한 걸까?
1968. 1. 4
어딘가 안개에 싸인 섬이 있다. 그 섬에는 성이 있다. 성 속에는 램프가 켜진 커다란 방이 있다..... 그들은 누군가가 와서 문을 두드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공포를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 메테르링그의 <틈입자>에서
1968. 1. 5
내일 새벽이면 5년 징역 선고를 받은 무장간첩을 서울까지 압송해야 한다. 내 가방 속에는 그가 소지했던 소련제 권총과 실탄, 나침판, 시계가 들어 있다. 하우프트만의 <철로지기 틸>을 읽고 있는데 내 품속에 안겨 있다가 ABC 한 알을 먹고 곁에 누운 테호가 잠을 자지 않고 자꾸 말을 건다. 눈에 분홍색 꽃이 핀 걸로 보아 제깐엔 감기가 심한 모양이다.
“아빠아 서울에 갔다오머언 인절미 떡 큰 것 사다주지?”
“오냐.”
“아빠아 나 학교 가먼 공부 잘한다?”
“오냐.”
“아빠아 돈 막흔 벌어서 나하구 농사 짓구우 그리구우.....아빠아 할머니는 눈을 뜨게 해달라구 손으루 빌어. 할아버지 깰까?”
“주무시게 깨우지 마.”
그놈은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고 나서 또 재잘거린다. 잠이 안 오는 모양이다.
“아빠가 담배 피먼 연기 퐁퐁 난다아.”
나는 생각했다. 어린이 눈에는 모든 게 신비스럽게만 보일 거라구. 그래서 묻고 그 물음을 확인 하려는 듯 되물으며 대답을 기다린다고. 어린이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도 신비한 형상으로 느껴질 거라고. 그것은 왜 그러냐고 근본적인 이유를 물을 때 더욱 놀라게 된다고. 그렇다. 어린이의 눈에는 형상의 신비성이나 그 속성의 신비성이나 차이 없게 느껴진다. 어른은 이미 사물의 형상은 알고 있어서 어린이의 말이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속성에 대해서는 깜찍하게 들린다. 그것은 어른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상의 앎 자체가 왜곡된 것이며 여기에서 우리는 어린아이가 묻는 거와 같은 회의懷疑를 가지고 순수한 학學의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놈의 하찮은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를 깨달은 셈이다. 이것이 바로 창작의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사물에서 그것을 진실로 알려고 탐색하는 것이 배움의 자세일 것이며 창작의 방법이기도 하리라.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어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이런 배움의 진리를 흔하게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뭐냐?>는 질문 이나 <담배를 피우면 왜 연기가 나냐?>는 질문이나 그 물음의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답이 다를 뿐이다. 하도 그놈의 잔소리가 심해서 내가 농조로 “앗다 그놈 참 잔소리 꽤나.....” 했더니 “이 노므 아빠야 왜서 말도 못 하게 하나아.” 한다. 나는 깔깔 웃었다. 니체는 비장한 초인주의를 주창하여 시세에 반항하였고 입센은 중간 지점에서 방황하였고 졸라는 전적으로 다수자의 편을 들었다.
1968. 1. 8
3일간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슴 아픈 출장이었다. 하루하루 변모하는 서울 상황에서 그것을 보고 느끼며 나는 얼마나 가슴 조였던가!
이번에는 5년 선고 받은 무장 간첩을 압송했다. 그의 손목과 내 손목을 결박한 채 신세계 백화 점을 구경시키고 서대문 로터리 화양극장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함께 감상했다. 그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가장 무식한 것은 가장 순수한 것이며 가장 자의식적이 아닌 생활이 양심적인 생활이다.
- 타고르의 <비노디니>를 읽고
1968. 1. 9
깊은 밤, 타골의 작품을 읽다 말고 무언지 손에 잡힐 듯한 것을 잡지 못한 채 소설 읽기를 중단했다. 무언지 손에 잡힐 듯하다. 먼지 같은 것이다. 그건 구체적인 형상의 분자들일 텐데, 그것을 모두 주어 모으면 뚜렷한 형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것들을 모으면 내가 찾는 ‘그것(lt)’이 만들어질 텐데..... 인생은 결코 유희도 아니요 시험도 아니다. 자체가 최고의 진실이며 더 할 수 없는 본체이지 않으면 아니 된다.
- 미국 일리노이주 주립대학에 유학 중인 학래의 편지에서
1968. 1. 10
다음은 내 생각이다. 소설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지만, 가장 논리적인 것을 논리적이 아니게 속이는 요령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밤에는 그동안 틈틈이 읽어왔던『형이상학』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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