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철창신세 비운의 여수란다
“노인네라 마지못해 봐주지만 다시 이런 짓을 하면 몇 배 고통을 줄 테니 조심해요.”
“조장님이 변소로 데려갈 줄 알고 객기를 부려본 거요. 미안하오, 다신 안 그러리다.”
조장이 변소에 데려갈 줄 알았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를 무름하게 봤다는 말인데, 하지만 이제부터는 경찰 3대 사고 중의 하나인 도주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근무규정에 따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법원은 경찰서와 바로 이웃하고 있어 호송이 편했다. 검찰청과 한 건물 안에 있었다. 재판이 있는 날은 청사 마당이 부산했다. 재판은 오후 늦게야 모두 끝났다. 점심때부터 흐려지기 시작하던 날씨는 해가 기울면서 기어이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맞으며 죄수들을 챙겨 유치장으로 호송했다. 죄수들을 유치장에 데려와 풀어놓자 감방마다 술렁대기 시작했다. 재판 결과를 놓고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웠던 것이다. 누구는 변호사를 잘 써서 집행유예를 받았고 누구는 변호사를 잘못 써서 형량을 무겁게 받았다고 투덜대는가 하면 미리 점 쳐두었던 사람의 형량을 놓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짓궂은 죄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저녁 식사가 배달될 때까지 계속 잡담을 늘어놓았다.
저녁밥은 구내식당 종업원들이 비를 맞으며 날라 왔다. 통째로 퍼온 음식을 차례대로 감방 복도에 놓고 양재기에 밥과 국을 따로 퍼서 철책 속으로 넣어주었다. 밥은 콩과 보리를 섞은 잡곡밥이었고 반찬은 시래기 된장국과 통조림 한가지지만 죄수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덜퍽지게 먹어치웠다. 그나마 음식이라고 트림하는 죄수들도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감시근무에 들어갔다. 나는 일호 쪽으로 먼저 갔다가 데스크가 있는 중앙부를 지나 여감방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인사가 덜퍽졌다. 개중에는 이것저것을 부탁하는 죄수들도 있었다. 그들의 부탁은 일상생활의 건의사항부터 연락사항이나 변호사 선임에 대한 자문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애인과의 불화 문제에 대한 신세타령 등 인간적인 대화를 요구하는 죄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간수에게 말하고 싶은 게 많았다.
“어서 오세요, 홀아버님.”
ㅂ19호 앞에 이르자 홍 마담이 간드러지게 인사를 했다. 다방 마담 출신인 그녀는 전에도 횡령으로 들어온 적이 있어 별이 두 개째였다. 하지만 별이 하나라고 고집을 부렸다. 횡령은 전과로 수긍하지만 간통은 범죄가 아니라고 우겼다. 횡령의 별은 수치스런 별이지만 간통의 별은 영광의 별이란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다시 말해서 법보다 더 구속력이 강한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통죄는 수치나 징벌의 고통을 초월하는 순교자적인 희생이라고 으시대는 판이었다.
“사랑하는 사이의 통정을 어찌 매도하는지 모르겠어요.”
홍 마담은 그렇게 지껄인 적이 있지만 며칠 내로 합의가 이루어져 풀려날 거라던 그 며칠이 일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고 지금은 묵은돼지가 되어 방장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녀는 어구상을 하는 어느 유부남과 눈이 맞아 몰래 동거생활을 해오다 남자의 아내에게 들통났던 것이다.
“저도 서울에서 왔어요. 고향이 서울이거든요.”
“왜 여기까지 흘러온 거요?”
“물길 따라왔죠. 고기는 물에서 놀아야 하니까요.”
“물은 서울이 더 좋잖소?”
“설악산에 놀러왔다 그분을 만난 거예요.”
그분이란 간통으로 함께 걸려온 남자를 말했다.
“빨래 좀.”
갑자기 홍 마담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알랑거렸다.
“규정 시간에 빨도록 해요.”
“그것 땜에 그래요.”
“그게 뭔데?”
“이봐요, 결혼 전과자가 그것도 몰라요? 아드님도 있다면서요?”
홍 마담이 하얀 이를 까내며 웃었다. 내 몸이 순간 움찔했다. 죄수들은 간수의 신상을 귀신처럼 알아낸다지만 어떻게 혼자 살고 있으며 자식이 있는 걸 캐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멘스하는 여자와 살아본 적 없어요.”
“그럼, 애는 어찌 낳노?”
“무위자연에서 그냥 생성한 거지.”
“여자가 낳은 게 아니면..... 그럼 동정남이 낳은 자식?”
홍 마담은 또 하얀 이를 까내며 웃었다.
“그럼 이따 시간을 내줄 테니 그때 빨아요.”
나는 홍 마담의 편의를 봐주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 본적이 충청도인 접대부 출신의 절도범이 방장한테 점수를 따보겠다고 수작을 부렸다.
“지금 당장 편의를 봐주시면 안 돼유? 숙녀한티 그런 편의도 못 봐줘유? 우리 언니 을마나 이뻐유? 맘도 갈대꽃처럼 연허구유.”
“얘, 나서지 마. 방정맞게시리 누가 널더러 비행기 태달랬어?”
홍 마담이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고참은 신참이 간수와 얘기하는 걸 은근히 꺼렸다.
“얼래 참, 언니는 왜 공연시리 화낸대유?”
“요게 깐죽거려?”
“언니 편을 들어서 한 말인디 워째서 그 말이 깐죽이래유?”
“요년 봐라, 감히 누구한테 말대꾸야?”
“아아니, 당신이 별스런 사람인감유? 당신이나 내나 새장에 갇히긴 매일반이디.”
“요게 썅!”
간수 앞에서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홍 마담은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그만들 그쳐요.”
내가 조용히 타일렀다.
“쳇, 저런 도둑년이 있는데 충청도를 양반고지라고? 내 참 기가 막혀.”
“뭐유? 당신은 서울 사람잉게 남의 서방하구 붙었수?”
“히야, 요년 봐라. 못하는 말이 없네. 좋아, 내가 참지. 그 대신 너 이따 보자!”
그 말에 절도범 아가씨는 금세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죄송하게 됐슈”하고 싹싹 빌었다. 며칠전 그 아가씨가 입감되던 날 밤 멋도 모르고 홍 마담 앞자리에 앉았다가 머리채가 뜯긴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폭행은 당연히 간수가 제지해야 되겠지만 오랜 전통에 근거한 그네들의 불문율을 몇몇 간수의 감시로 제지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햇돼지는 묵은돼지한테 실컷 얻어맞고도 감히 일러바치지 못했다. 그날 밤에도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하는 비명을 듣고 간수가 달려갔을 때는 모두 누워 잠든 척했고 그 절도범 아가씨 역시 아무 말 없이 누워서 헝클어진 머리칼만 만지
작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수습해 놓았던 것이다.
사실 그쯤의 피해로서 그네들은 원망을 품지 않는다. 그만큼 그네들은 한정된 환경 속에서 포기라고 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익혀갔다. 그들은 점점 행복이란 어휘가 낯설어지고 고통이란 투박한 어휘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여수들이 무심히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만큼이나 투박한 어휘.
풀잎사귀 매만지며 사랑을 했었건만
지금은 철창신세 비운의 여수란다
누가 오라 여기 왔나 누가 가라 여기 왔나
십구호야 이십호야 하얀 내 집 여감방아
나는 홍 마담을 빨래터로 보내주며 그 절도범 아가씨를 구박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옆방으로 향했다.
“조장님.”
20호 쪽으로 두어 발짝 옮겼을까. 홍 마담이 또 나를 불러세웠다.
“이십호 빵장한테서 인사 받아 본 적 있으세요? 입이 너무 무겁다죠?”
홍 마담이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인사 받아 본 적 없소.”
“조심해요. 아무래도 보통 여자가 아닌 것 같아요. 가족이 면회와도 한 번도 만나준 적이 없고 변호사 선임도 거절했대요. 이십호 사람들도 그녀가 변소에 가는 걸 아무도 못 봤대요 글쎄. 아마 모두 잠든 새에 살짝 다니나 봐요. 또 머리 빗는 걸 한 번도 본 사람이 없대요. 그런데도 늘 감은 머리처럼 정결하잖아요? 우리 방을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눈을 준 적이 없어요. 대학 나온 티를 내는 건지 원. 암튼 무서운 여자예요. 그러니까 사람을 칼로 찔렀겠죠.”
20호 방장은 사랑하는 남자를 칼로 찌른 상해범이었다. 그 젊은 상해범은 모든 수감자의 눈길을 끌었는데 그녀가 복도를 지나게 되면 유치장은 온통 탄성과 휘파람소리로 떠들썩했다.
“유치장에 선녀가 나타났군.”
“살결이 이슬방울보다 더 투명해.”
“저 여자 몸에선 향기가 풍긴다며?”
말은 꼬리를 물었다. 그녀는 이미 신비스런 존재로 꾸며지고 있었다. 어제 그 상해범이 검찰청 검취를 받기 위해 불려나갈 때였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8호실 살인범 청년과 지난번 오줌 소동을 벌였던 사기범 영감이 입방아를 찧었다.
“저 여자 몸에서 빛이 나죠?”
“뭐라구? 무슨 빛이 난다는 거야?”
“저것 보세요, 주위가 환하잖아요?”
“이 사람 돌았군.”
“제가 돌은 게 아니라 영감님 눈에 때가 껴서 안 보여요. 그러니 사기를 그만 치시고 눈을 깨끗이 씻으세요.”
“자넨 사람을 죽여서 눈이 밝아졌나? 아무리 봐도 보통 계집인데 무슨 얼어죽을 빛이야? 낯짝도 아랫볼이 처져 고집이 쎄겠는걸.”
두 죄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 마치 환상과 현실이 칼싸움하는 만화 같은 장면이 연상되었다. 내가 그 상해범 여수에게서 내막을 들은 것은 검취를 받으러 감찰청으로 호송할 때였다.
“저는 그 남자를 인간으로 여기지 않아요.”
포승이 질린 채 언덕길을 걸어가던 상해범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동거하고 반년쯤 지나서였어요. 외박을 자주 하던 남자는 일 년이 가까워질 무렵 아주 잠적해버리고 말았어요. 제 여고 동창이기도 한 부잣집 외동딸과 몰래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 갈 수속까지 밟았던 거죠.”
동창과의 불륜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던 상해범은 남자의 본처라고 하는 애엄마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그녀는 산동네 단칸셋방에서 두 살짜리 딸과 살고 있었다. 기미 낀 얼굴이 여인의 고통스런 지난날을 말해주었다. 생김새부터가 온순하고 착해보였다. 본처를 만나본 상해범은 먼저 자신을 책망했다.
”저는 철저히 불행해지고 싶었어요. 임신한 아내를 팽개치고 잠적해 버린 그런 야비한 인간을 사랑한 저 자신을 철저히 파괴하고 싶었어요. 그 남자를 동해안 호텔로 데려가 약과 물컵을 내밀었죠, 하지만 그 남자는 끝내 죽어주지 않았어요. 약봉지와 물컵을 침대 머리맡으로 치우며 저를 껴안더군요. 섹스로 제 맘을 풀어주려는 수작이었죠. 그래서 과도로 옆구리를 깊숙이 찔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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