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경찰서 유치장은 대용교도소
“늬 속이모 우째 되는공 알제?”
“야.”
“그라믄 이따 오는 기다. 알갔제?”
“야.”
“이 새꺄, 대답이 그게 머꼬?”
주먹 한대가 턱으로 날아갔다.
“야야! 틀림없심더. 퍼뜩 데려올랍니더.”
불량배들은 곱송그리며 대답했다. 직원은 앞장서서 휑 당구장을 나왔다. 밖으로 나온 직원은 곧장 파출소로 돌아왔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저리 안 조지모 씨도 안 먹힌다이. 부산놈들 짠물 먹어 을마나 드센지 아요?”
파출소에 돌아온 직원이 냉수를 마시며 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때려 상처를 내면 속 썩을 일이 생길 텐데.”
“아이요, 부산 놈들은 시시한 매 맞고 고소 안 하요. 그기 부산 사내 의린 기라.”
그는 껄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꼭 태풍이 쓸고 간 자리 같았다.
새로 개정된 경찰복이 지급되었다. 미국식을 닮은 복장이라고 했다. 흉장은 사색하는 겸양의 상징으로 고개 숙인 독수리를 새겼고 넥타이는 핀을 끼우게 되었다. 특히 웃옷자락을 괴춤 속으로 집어넣고 어깨띠 없는 까만 가죽 혁대를 두르게 되어 있어 간편하고 멋있어 보였다. 옷감도 고급스러웠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직원들은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옷을 몸에 맞게 줄여 입었다. 가뿐한 몸으로 근무하게 되어 기분이 상쾌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제7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동래고등학교 강당에서 밤새 개표장 경비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감찰실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여자가 또 말썽을 부렸네.”
나는 곧장 감찰실로 달려갔다.
“자네의 사표를 이상히 여기고 여기저기 상급 관청을 뒤졌다는 거야. 그래서 부산 전출이 들통난 거지. 암튼 일이 복잡하게 됐네.”
“감찰이 그녀의 진정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무엇보다 서울 상관들의 체면이 걱정되었다. 사표를 수리한 것처럼 꾸며서까지 부하 직원의 장래를 걱정해 준 서울 상관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자한테 어떻게 해주면 되겠습니까?”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이런 방법을 써보면 어떨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 말이네. 저어 혼인신고만 해놓고 별거하란 말야. 사실은 애엄마가 다녀갔는데 그걸 바라는 눈치였어. 끝내 남자가 싫어하면 동거는 안 해도 좋으니 자네와 인연만 끊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혼인신고만은 안 됩니다. 그냥 사라지겠습니다.”
“서울 상관들이 다치게 됐는데도 상관없다 그건가?”
“그 일도 제가 사표를 내고 사라지면 깨끗해질 겁니다.”
“깨끗해져? 그 여자가 뭐랬는지 아나? 만약 자네가 사라지면 그분들을 시켜 찾도록 하겠다는 거야. 그 여자는 이런 말도 했네. 자네가 사표 내고 사라질 때 진짜 마지막인 줄 알았다는 거야.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피가 철철 흘렀다는 거야. 세상이 온통 까맸다는 거야. 모든 걸 다 죽이고 싶었다는 거야. 자네와 떼어놓은 모든 조건들을 다 불질러 태우고 싶었다는 거야. 인간이면 인간을 태우고 돈이면 돈을 태우고 운명이면 운명을 태우고 싶었다는 거야.”
그때 애나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술은 까맣게 타 있었다고 감찰은 말을 덧붙였다. 칼침을 맞을지 몰라 말을 조심했다며 감찰은 뿌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떤 대안으로도 징계위원님들 괴롭히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자넨 멋있는 사내야. 그 여자가 미칠 만도 하지.”
“저는 지난번 징계위원회 석상에서 위원님들의 배려심을 보고 처음으로 제 직업에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이 직장에 오래 남고 싶습니다. 그게 지금 사표를 보류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잘 생각했네. 아까도 말했지만 그 여자와 정 살기 싫으면 얼마든지 차선책이 생길 테니 너무 걱정 말게나.”
감찰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옥죄었다.
호적을 올려주고 나자 강원경찰청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동부산경찰서에서 인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부산역으로 갔다. 푸른 동해바다를 상상하니 강원도 발령이 싫진 않았다. 열차에 오르자 몸이 나른했다. 이제 기차는 삼랑진과 대구를 지나 대전에 도착할 테고, 그곳에서 호남선을 갈아타고 논산에서 내리면 먼동이 틀 텐데, 거기서 버스를 타고 부여에 내려 은산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누나네 집에는 아침나절에야 도착했다.
“이게 얼마만이여?”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동생을 보자 누나는 반색하며 다가왔다. 그 소리에 사랑채에서 부모님과 태호가 뛰쳐나왔다. 태호는 아빠 품에 안기며 엉엉 울었다. 얼마나 보고 싶던 아빠였을까. 저녁을 먹을 때도 태호는 아빠 곁을 지켰다. 나는 부모님에게 강원도 전출 사실을 알리고 부임 날짜가 촉박해서 내일 일찍 떠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는 아무 걱정 말고 근무에만 충실하라고 일렀다.
“자리가 잡히는 대로 모시러 올 거예요.”
누나에게 몰래 부모 생활비를 전해준 나는 태호를 데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날이 새자 태호가 깨기 전에 집을 나와 규암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부여 터미널에 도착해서 논산행 버스를 탔다. 논산역에서는 서울행 호남선 완행열차를 타기로 했다. 급행열차는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우선 완행을 타고 가다가 급행과 만날 지점에서 갈아타면 그만이었다. 완행은 느릿느릿 달리는 데다 역에 정차하는 시간도 제멋대로여서 서울에 언제 도착할지 모를 일이었다. 어느새 개찰구에는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는 무임승차여서 개찰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미리 신분증만 보이고 플랫폼으로 나갔다. 좌석은 텅 비어있었다. 한참 후에야 승객들은 자리를 잡으려고 달려왔다.
용산역에서는 내리자마자 곧장 시내버스를 타고 마장동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춘천행 버스는 자주 있는 편이었다. 나는 신분증만 보이고 미리 버스에 올랐다. 어서 경찰청에 들러 신고를 마쳐야 했다. 춘천에 도착하자 곧장 강원경찰청에 들러 인사 담당부서를 찾아가니 모두 퇴근하고 숙직근무자만 남아 있었다. 사정을 알리고 발령 난 곳을 알아보았다. 부임지는 내가 지망한대로 강릉경찰서였다. 기왕 지방으로 좌천된 이상 못 가본 동해안에 호감이 생긴 데다 되도록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춘천에서 원주행 버스를 탄 나는 밤이 이슥해서야 강릉행 야간열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달빛이 자욱한 산협 속으로 파고들었다. 기분이 달뜨기 시작했다. 무슨 환상 세계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기차는 계속 힘차게 계곡을 뚫고 달렸다. 태백능선을 향해 숨차게 달려온 기차는 철암과 통리역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그재그로 전진 후진하면서 홍정역을 내려온 기차가 도계역과 북평역을 지나 동해안을 끼고 달릴 때는 어느새 햇살이 차창으로 스며들었다.
바다!
나는 동해바다를 손에 쥐려는 듯 창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푸르다 못해 검어진 바다, 너르다 못해 하늘을 삼키는 바다. 나는 바다를 보며 바다에 미쳐갔다.
분명 미쳐갔다. 그 미침은 바로 새로운 삶의 모습이었다. 기차를 타고 산협을 달리면서 상상했던 그 희미한 새 삶의 모습,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파도와 어울리는 삶이란 데에 우선 마음이 들떴다. 열차는 점심 무렵에야 강릉역에 도착했다.
경찰서는 시내를 지나 서편 언덕 아래에 있었다. 도로보다 높은 위치였다. 십여 미터의 비탈길을 오르자 정문이 나타나고 넓은 마당 오른편으로 본건물과 유치장(대용교도소)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정문 바로 옆에는 구내매점이 있고 맞은편 마당 좌측에는 단층 구내식당이 있는데 점심을 준비하는 모양인지 굴뚝에서는 연기가 송골송골 피어올랐다. 연기가 흘러가는 언덕바지에는 법원과 검찰청사가 있었다. 나는 먼저 경무과를 찾았다.
“부임 날짜가 하루 늦었군요.”
발령통지서를 내밀자 경무과 직원이 살펴보고 꺼낸 첫마디였다.
“부여 고향에 맡겨둔 애를 돌봐주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근무지는 유치장으로 결재 났습니다. 당분간 거기서 고생하면 곧 좋은 데로 선처될 거니 참고 견디세요.”
직원이 귀띔해 주었다. 나는 낯선 간수직 근무가 당혹스러웠지만 한편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옴스크 감옥생활이 작품창작에 영향을 끼쳤잖은가. 그는 살인범 같은 잔혹한 죄수들에게서 아름답고 진실된 영혼을 발견했던 것이다. 숙소는 임시로 경찰서 마당가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정했다. 근무처와 숙소가 붙어 있는 셈이었다.
출근 첫날 수사과에 들러 과장, 계장, 직원들에게 부임 인사를 했다. 유치장은 수사과 소속이었다. 직원들의 표정이 서먹서먹했다. 지방에 근무하는 경찰관으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는 서울인데 무슨 이유로 좌천되었을까 하는 표정들이었다. 큰 사고를 쳤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잘해보쇼.”
“힘들 거요.”
“놀러온 셈 쳐요.”
시큰둥한 인사치레였다. 같은 국가공무원인데도 좀 배타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날 따라와요.”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경사가 내게 손짓했다. 유치장 책임 반장이었다. 그를 따라 사무실 뒷문으로 나갔다. 사무실과 유치장은 십여 미터의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반장은 잠시 회랑에서 발길을 세우고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유치장 직원들 태반이 신참인데 우선 조장을 맡아줘요. 갑부 을부 각각 네 명씩인데 갑부 조장은 일 년간 근무하다 이번에 교동파출소 차석으로 발령이 났소. 당신도 일 년쯤 고생하면 묵호지서 같은 좋은 데로 발령이 날 거요. 묵호는 외항선이 닿고 밀수품도 많아요. 솔직히 말해서 냄새나는 유치장 근무를 누가 좋아하겠소. 그래서 근무자들이 말도 잘 안 들어요. 당신은 서울서 험한 일을 많이 겪어봤을 테니 이해하고 실수 없이 근무해 줘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저 안에 있는 죄수들은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안 되오. 공연히 인정으로 대해줬다가는 큰코다치오. 저것들은 어떤 수단을 부려서라도 당신을 이나려 들 거고 자칫 잘못하면 약점을 잡고 흔들 테니 절대 죄수를 유순하게 대해줘선 안되오. 사나운 짐승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요. 어쩜 간수를 죽이고라도 도주할 방법을 모색할지 모르니까. 그럼 급한 대로 몇 가지 주의사항을 가르쳐줄 테니 명심해 들어요. 우선 죄수 인원을 철저히 파악하도록 해요. 아침저녁으로 점호할 때마다 명패대로 잘 확인하고 되도록 수감자의 얼굴을 파악하도록 해요. 다음은 서로 내통을 못하도록 감시를 철저히 해요."
'연재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6회) (1) | 2024.05.22 |
---|---|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5회) (0) | 2024.05.14 |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3회) (0) | 2024.04.23 |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2회) (1) | 2024.04.16 |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1회) (1) | 2024.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