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9회)

충남시대 2024. 6. 11. 13:14

사천진 포구 임검소장으로 부임


1968. 3. 1

  오늘은 3.1절. 강릉에서는 서울보다 대문 앞에 태극기가 더 많이 꽂혀 있다.  

  근무교대를 마치고 돌아왔다. 어제는 15, 16호 소년수 감방에서 2시간 동안 처음으로 교양강의를 했다. 그놈들은 내 강의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낮에는 한 놈을 수사계 사무실로 데려가 처음으로 따귀를 때리며 훈계했다. 그 애의 자존심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나한테 매 맞은 것을 흐뭇하게 느끼도록 배려한 나를 고맙게 여겼다. 나는 유치장 근무를 하며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동무는 경찰체질이 아니라메.”
  소년수 옆 독방에 수감된 무장공비 이승태가 내게 한 말이었다. (먼 훗날 이승태는 내 대표작 장편『칼날과 햇살』의 주인공이 된다.)

  .....내레 자수한 기 아니었디, 어드러케 김일성 수령님을 배신하갔어, 그런다. 
                                                      -『칼날과 햇살』도입부


1968. 3. 3

  “......카토브는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육체의 주인도 아니며 목소리의 주인도 아닌 자기 위에 놓인 따뜻한 이 손에 넘겨주었다.”
  위의 묘사는 너무나 인간적인 격정이다. 그것은 최고의 관상觀想이요 서정시가 아닐 수 없다. 그 단말마적인 카오스는 가장 체험적이며 그렇기에 진실한 것이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다름 아닌 청산가리였              - 앙드레 말로의『인간조건』참조

  나는 고뇌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잔아


1968. 3. 9

  여기가 어디냐? 
  내가 이곳 진리해안초소(72거점)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그런 흥분뿐이었다. 파도소리 괴괴한 모래톱 초막 속에 앉아 망망한 동해를 바라보며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고독을? 신을? 죽음을? 그런 것들은 이미 파란 달빛에 녹아버린 지 오래다.
   300여 가구의 어촌인 사천면 진리 포구. 나는 어제 자원해서 이곳에 발령을 받았다. 유치장 근무를 한 탓에 묵호지서처럼 좋은 곳을 택할 수 있었지만 조용히 공부하기 위해 모두 싫어하는 해안 초소 근무를 지망했던 것이다. 경무과장은 조회 석상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칭찬까지 했다. 영전을 양보하는 나를 본받으라고. 내 실속을 위해 볏짚으로 만든 게막 같은 초소를 택했는데, 멋쩍은 칭찬이었다.
  저게 무슨 소린가?
  쏴쏴하다가 갑자기 쿵 하고 무너지는 소리. 궁창이 열리고부터 쉬지 않고 무너지기만 하는 저 파도소리를 시로 읊고 노래 부르다니. 파도소리는 공포의 시원이다. 신이 있다면 그분은 점잖지 않은 분.
  막사 뒤에는 공동묘지가 누워 있고 우측에는 송장을 나르는 상여집이, 그리고 좌측에는 주문진항의 등댓불이 빙빙 돌고 있다. 이런 것들에게 신은 얄궂게도 달빛을 비쳐주다니. 신이 점잖은 분이라면 53킬로밖에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을 이토록 미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1968. 3. 14

  드디어 나는 그토록 선망해 온 어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72초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진리 2구) 외딴 초가집에 방 2개를 월세 500원에 얻어 놓고 오늘 택시로 짐을 날랐다. 아버지가 기거하실 건넌방 흙벽을 도배하고 방바닥에는 왕골자리를 깔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셋집은 일제시대에 철길로 축조한 둑 근처에 있고, 그 둑 너머에는 밭과 소로길, 그리고 길을 따라 초소가 있는 긴 모래톱이 누워 있다. 소로길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진리 1구인 포구가 나오고 좌측으로 가면 공동묘지가 나오고 소나무숲을 지나 영진 백사장이 나타난다. 이사라고 해서 직원들을 초대했지만 반찬이 없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조카딸 연하가 준비한 식사였다.
  청진회 회비 300원을 서울 홍경에게 보냈다. 청진회는 내가 고교시절 4대공립에서 2명씩 선정해서 조직한 친목단체다.
  멀리 수평선에 불빛이 아른거린다. 고깃배였다.


1968. 3. 27

  램프는 전깃불보다 눈이 덜 피로한 것 같다. 하지만 석유 타는 냄새가 탈이다. 밤새 책을 보면 아침에 콧구멍이 시꺼멓다.
  내일은 강릉으로 유격훈련을 받으러 가야 하니 그만 자야겠다. 어저께 종합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100 - 40이었다. 영양실조?

  공산주의는 고통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상을 보편화한다.


1968. 4. 4

  천진회 회원들에게. 
  지금은 밤 1시 45분. 내 보잘 것 없는 두 친구가 찾아올 시간이다. 한 놈은 눈알에 핏발이 엉기고 한 놈은 코가 묘하게 아래로 처져 볼품없는 놈이지만 여기 동해안의 어촌에는 친구가 아쉬운 곳이라 그들은 내 유일한 친구이며 이젠 그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눈알이 빨간 놈은 찾아올 때마다 한 손엔 수류탄과 기관총, 다른 한 손엔 레닌과 모택동의 이론을 짬뽕한 새로운 혁명전쟁 전략을 쥐었고, 심보가 야릇한 다른 놈들은 살벌한 기색은 없어도 능글맞은 눈초리로 53킬로 짜리 내 육신을 가차 없이 녹여버리는 지능범이다, 대관령의 녹지 않은 하얀 눈, 봄을 부정하는 세찬 바닷바람, 수평선 위에 가물거리는 어선의 돛, 제철을 만나 분주히 나래를 퍼득이는 오리떼, 하얀 모래사장, 그 위에 세워놓은 2평 들이 해안초소, 죽음보다 더 무서운 파도소리, 그놈들은 매일 나를 제멋대로 홀린다.


1968. 4. 7

  등잔불 밑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진지를 먹여드릴 때 반찬으로 김을 드렸더니 그건 잡수신다. 엉거주춤 엎드려 드시다가 요에 떨어진 밥알 하나를 집어 드신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밥 한 알을 아끼시다니!


1968. 4. 9

  아버지 소변을 뉘어드리고 식구들 방에 뉘시니 "내 방에 데려다다구. 편히 누울란다." 하신다.
  건넌방에서 자꾸만 아버지의 헛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가위눌리시는 모양이다. 요즘은 헛것이 보이는지 벽에 걸어둔 빗자루를 보고 "네 삼촌이 왔나보다." 하신다. 형제가 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처럼 당신을 푸대접하여 결국에는 절간을 찾아 먼길을 떠나시게 만든 그 형제를. 저토록 착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한스럽다. 악한 아버지, 야비한 아버지였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할까.
  요즘 매일 아버지 때문에 집에서 대기하는 형편이다. 동료들의 배려로 밤에도 자주 집에 들러보곤 한다. 낮에는 한 시도 나가지 않고 방에서 밥상에 책을 놓고 읽으며 아버지를 살핀다.
  나는 美에도 욕망이 있다고 했는데 흄의 현대예술철학이 생각난다.
  내 고통은 뉴 모럴(new moral)의 모체다.
  습작품「오줌싸개」를 쓰다.


1968. 4. 10

  근무도 포기한 채 아버지 곁에 머문다. 어찌할 수 없다. 그래 돌아가세요. 돌아가셔서 어서 저를 데려가세요. 실컷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혼자 시부렁거린다. “신령님, 우리 아들에게 복을 내려주소서! 상복上福을 내려주소서!


1968. 4. 11. (음력 3월 13일)

  오후 5시 30분. 연하가 저녁쌀을 가지러 아버지 방에 들어갔다가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소리친다.
  "삼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이럴 수가! 불과 한 발짝 사이에, 그것도 창호지 한 장 사이로, 임종을 못하다니! 그 순간을 위해 한 시도 자리를 뜨지 못했는데. 그처럼 조용히 돌아가셨단 말인가! 나는 미친 듯 문턱을 넘었다. 새우잠으로 입과 눈을 뜨신 채 아버지의 육신은 굳어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잠드신 채 돌아가셨을까? 한숨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단말마도 없이 돌아가셨단 말인가!
  나는 굽은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펴드리려다, 눈을 감겨드리려다, 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으려다, 장례비를 걱정하려다, 형제 친척 하나 없이 천리 객지에서 혼자 처음 당한 일에 어쩔 줄 몰라 눈물마저 흐르지 않는다. 아버지를 고쳐 뉘시고 솜으로 귀와 코를 막고 방을 청소하고 나서 밖으로 나가 허둥대다가 방에 들어가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