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4회)

충남시대 2024. 10. 22. 14:58

경찰직공무원 사표를 내다



  1971. 6. 15

  오늘 드디어 서울경찰청 인사계를 찾아가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간청했다. 상사들이 고마웠다. 자꾸 눈물이 흘렀다. 이제 의지할 곳도 없다.
  사실 고생을 각오하고 선뜻 사표를 제출한 것은 경찰생활을 그만둬야 소설 창작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소설 창작이 우선이었다. 글쓰기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인생이었다.
  중앙청 연금국장실에서 내린 지시로 두 달 걸려 찾을 퇴직금을 2시간 만에 찾았다. 처음 만져보는 목돈이었다. 225,000원.
  퇴직금을 들고 가족들과 함께 양구 처가댁에 갔다. 그곳에서 3일간 지내며 여러 가지 살 궁리를 했다. 장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정미소를 맡아달라고 했지만 거기에 얽매일 수는 없었다. 떠나기 전날에는 장인으로부터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워 즉시 장인과 함께 오토바이 2대로 나눠 타고 양구까지 50리를 달렸다.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공군 동기생 헌무를 만나 의논하고 싶었다. 춘천 원주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헌무는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모 걱정 말거레이. 중앙동에 광택센터를 차릴 긴데 잘 됐구마. 늬가 맡으레이. 그라고 살 집도 마련했으이까네 집 걱정도 말거레이. 철거될 집이지만도 5년은 견딜 거구마. 방이 3개고 마루도 넓으이까네 네 식구 살기는 넉넉할끼라. 초량동캉 중앙동은 재개발로 야단인 기야. 부산진역에서 부산본역을 지나 중앙동까지는 훤히 넓혔는기라. 늬가 부산중학 다닐 때 이용하던 초량역은 경부선에서 없어진기라.”

1971. 7. 26

  장맛비가 지루하다. 못처럼 일기를 썼다. 부산 생활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중앙동 시외전신전화국 옆 주차장을 겸한 이 <광택센터>는 자동차를 그라인더와 콤파운드를 사용해서 광내는 곳이다. 130여 평의 대지는 내가 퇴직금으로 세를 얻었고 기계와 시설은 헌무가 돈을 댔다. 차가 드나드는 정문 옆에는 내 아이디어로 만든 <광택센터>와 <야간주차장> 간판이 서 있고 공장 건물에는 <전기콤파운드>란 커다란 글씨와 번개표 마크가 그려져 있다. 직공 4명을 데리고 부산에서 처음 시도하는 업종으로 요금은 800원에서 1500원까지다.

1971. 9. 15

  기능공이 되어가는 내 모습이 대견스럽다. 부산 자가용계에서 일을 잘해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난생처음 스스키복(작업복으로 상하가 붙은 하얀 옷)을 입은 채 가족을 데리고 송도로 택시를 몰았다. 네 가족이 사진을 찍고 생선회를 먹었다.
  어제는 직공들을 데리고 광복동으로 지라시(선전물)를 뿌리러 나갔다가 극장에 들어가 <노들담의 꼽추>를 감상했다.

1971. 11. 18

  부산대학교 여학생들이 공장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부잣집 딸들인데 고생을 사서 한다. 기특한 학생들이다.
  밤에 자동차 부동액을 사러 나갔다가 늙은 남자 장님이 구걸하는 걸 보고 20원을 주었다. 10원을 주려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20원을 준 것이다.

1971. 12. 10

  아내가 리어카 포장마차(참새집) 장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오뎅, 우동, 토끼고기, 닭고기, 김밥, 꼼장어 등이다. 나는 온종일 차를 광내고 밤이 되면 리어카를 한적한 개울가 언덕길에 끌어다 주고 곧장 집에 돌아와 애들을 돌봐야 했다. 내가 소설 습작에 매달리는 동안 유라는 태호 곁에서 새록새록 자고 있지만 깨어나면 엄마를 찾으며 울어댔다. 나는 유라를 포대기로 감싸 업고 포장마차로 나가 음식을 장만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밤늦게야 아내에게 유라를 맡기고 나는 포장마차를 끌고 집에 돌아왔다.

1971. 12. 30

  아내가 참새구이 장사를 하는 동안 나는 태호 유라와 놀다가 유라를 재우기 위해 이불로 똘똘 말아 손수레에 싣고 포장마차로 갔다. 그래도 요놈이 잠을 자지 않는다. 아내는 조금밖에 못 팔았다며 기가 죽어있다. 장사가 끝나자 나는 포장마차를 거둬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유라를 태운 손수레를 끌고 내 뒤를 따랐다. 손수레는 유라를 태워서 끌고 다니려고 내가 만들었는데 바퀴는 동그란 왁스통을 구멍 내 만들었다. 손수레는 내가 어린 시절에 갖고 싶어 했던 구루마(일본어)였다.

1972. 1. 5

  아내에게 영원한 기념으로 미제 18K 금목걸이를 6500원 주고 사주었다. 그 목걸이에는 금잉어가 달려 있다. 아내는 좋아 어쩔 줄 모르면서도 현금 저축을 못 한 게 아쉽다고 한다. 나는 그 목걸이를 <참새집> 천막 노점에서 떨고 서 있는 아내의 목에 걸어주었다. 잉어는 카바이트 불빛에 반사되어 번적거린다. 신화처럼 요사한 여성을 의미하는 잉어가 바로 수니가 되기를 바라며 그 잉어 목걸이를 샀던 것이다.
  아내와 리어카 노점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오빠는 잠에 곯아떨어져 있고 동생은 옷 궤짝 위에서 오빠가 올려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내가 그놈을 껴안고 뽀뽀하며 달랬더니 금방 헤헤거린다. 낮에는 엄마가 빨강 고무신을 신겨 놓으니 마당과 공장 뜰을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직공들이 자가용 속에 가두어도 시트를 밟고 좋아라 한다. 주둥이에 사탕과자를 발라 엉망인 채.

1972. 2. 21

  닉슨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닉슨의 중국 방문은 양국 간의 외교관계 정상화의 신호탄이 되었고, 상호 신뢰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사실은 월남전을 빨리 끝내고 싶어한 닉슨의 의중이 작용한 것.

1972. 2. 27

  부산대학교 여학생 3명이 공장에 들어와 차를 닦고 있다. 폐유를 태워 데운 물에 걸레를 빨아 손님 차를 열심히 닦는 아가씨들의 손길이 어여쁘다. 부잣집 딸들이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데 대단한 결단이다. 앞으로 가업을 승계하려면 그런 고생쯤 체험해보고 싶다는 아가씨들이 존경스럽다.

  헌무가 밀수범으로 공탁금 30만 원을 걸고 우선 풀려났다.
  며칠 전에는 이상무가 군용 휘발유와 경유를 팔아먹다가 중앙정보부에 걸려 헌병대에 달려갔다. 애매하게 나도 군수기지사령부에 걸려갔다가 금방 풀려나왔다.
  
1972. 4. 4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

  소설 습작을 하다가 갑자기 사색에 빠졌다.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체本體는 부단히 개량되려는 의지태意志態이다.’                                       - 소설가 잔아

1972. 4. 26

  헌무에게 이용당하기 싫어 대구로 옮기려고 다녀왔는데 대구에는 자가용 대수가 적어 고민이다. 대구 시내 세차장이 모두 48군데지만 써비스 마인드가 없어 승산이 크다. 아직 그런 서비스 업체가 없으니 선수를 치면 성공할 것 같다. 

1972. 6. 13

  대구에 장소를 물색했다. 경북여고 정문 앞에 있는 세차장 주차장을 계약했다. 처음에는 명덕노터리에 붙은 150여 평 논에 흙을 돋아 시작할까 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세차장 주차장을 얻은 것이다.
  밤에 헌명이가 찾아와 내 앞에서 빌며 떠나지 말라고 사정했다.

1972. 6. 18

  공장시설을 끝내고 드디어 개업했다. 나는 대구에서 채용한 2명의 직공을 데리고 중심가를 다니며 <자동차전기광택센타> 광고지를 돌렸다. 오후에는 택시에 장비를 갖춰 골프장으로 향했다. 승용차가 꽉 들어찬 주차장에 짐을 풀고 나서 나는 가장 더러운 차를 골라놓고 기사를 찾았다. 이빨 사이에 이쑤시개를 꽂은 젊은 기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다가왔다.
  “와 부르는 기요?”
  “이 차를 무료로 광내드리겠습니다. 본네트가 유리처럼 반짝거리게요.”
  “진짠교? 사기 치는 거 아닝교?”
  “두고 보시면 알잖아요.”
  “칠을 까먹는 것 아닝교?”
  “아무 걱정 마세요.”
  “사투리가 묘한데, 고향이 어딘교?”
  “충청돕니다.”
  “충청도라카모 양반 아이가. 속이진 않겠구마. 닦아보소.”
  나는 보로에 연마제 콤파운드를 묻혀 본네트를 닦고 나서 양털그라인드를 돌렸다. 그라인더는 손님을 모으는 선전효과에 불과했다. 웽 하는 소리에 많은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라인더 작업을 멈추고 본네트에 왁스를 칠한 다음 보로로 문질렀다. 유리처럼 빛나는 본네트에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와아! 기똥차구나!”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