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 발표
1972. 7. 4
오늘은 기념할 날이다.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1972. 8. 3
박정희 대통령 헌법 73조에 의거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발표.
광택센터에서 유리재생, 색유리도 시작했다. 손은 항상 칠과 화공약품이 묻은 상태여서 살색이 보일 때가 없다. 그런 바쁜 중에도 밤에는 틈틈이 독서한다. 주로 철학서와 문학 작품이다.
1972. 8. 31
연일 평양발 뉴스다. 평양시내 모습이 방영되었다.
1972. 10. 17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2. 11. 21
개헌 국민투표가 전국에서 실시되었다.
유신헌법이 확정되었다. 찬성률 91.5%.
1972. 12. 23
박 대통령을 8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지난 15일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처음 실시되어 2359명을 뽑았고, 이들이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았다.
안동, 경주까지 출장하여 차를 광냈다.
1972. 12. 31
제야의 종이 울린다. 보신각종이 울리자 군중들이 환호한다.
새벽 4시에 강릉행 버스를 타야 한다. 어서 아버지 산소에 가고 싶다. 아내는 과일, 소고기, 명태,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드셨던 김을 챙겼다.
1973. 1. 1
새해부터는 내 생활의 50프로를 MAMON. 나머지 50프로는 소설로 작심했다.
1973. 2. 27
오늘이 유신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허수아비 국회다. 3분의 1은 대통령이 뽑게 되었다. 유신이란 명목으로 영구 집권을 합리화한 것.
광택센터 소문이 엄청난 모양이다. 경북도내 1, 2, 3, 정비업자회의장에서 “명덕노터리에 있는 광택센터인가 뭔가에서는 일을 잘해준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여러분도 그러한 정성으로 아이디어를 짜내 써비스하시오.”라고 칭송하더라는 것.
우리 공장에 오는 손님마다 “대구 돈 다 긁는다.”고 떠든다. 대구 시내 자가용 500여 대가 거의 내 단골(도꼬이)이다. 10여만 원의 떡값 정도 밖에 안 되는 자본금으로 이만한 수입을 올리는 건 기적이다. 손님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
1973. 3. 6
휴대용 고급 일제 녹음기를 마이크까지 50000원에 샀다.
태호와 유라를 혼냈다. 태호는 말을 잘 안 듣는 데다 색연필을 잃어버렸고, 유라는 감기에 걸리고도 자꾸 양말을 벗어 혼냈더니 금방 찾아다 신는다.
1973. 3. 28
경산에 있는 영남대학교로 외상값 12,000원을 수금하러 갔다. 처음 가보는 길. 어서 대학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1973. 4. 3
세차장에 불이 나는 바람에 우리 공장에도 불길이 번졌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불이 난 후로 장사가 훨씬 잘 된다. 이틀 동안에 30000원을 벌었다. 지난달에는 150000원이 올랐었다. 직공들과 혜정에게 월급을 줬다.
1973. 4. 11
차체 전체를 도장하는 승용차들이 밀려 즐거운 비명이다. 10일 동안에 5대를 온누리 도장했다. 1급 정도의 공장 일거리다.
유라가 요즘 노래를 배운다고 녹음기 마이크를 잡고 귀염을 떤다. 그놈이 새벽에 똥을 싸는 바람에 내가 재빨리 준비를 해준다. 잠결에 “아빠 쉬아.”하면 오륙 초 동안에 준비완료한다.
70만 원짜리 적금을 들었다. 어서 집을 장만해서 부모님을 모셔야지.
1973. 5. 10
부처님오신날. 공장 문을 닫고 직공들과 온 식구가 경산 영남대 앞 저수지로 놀이를 나갔다. 피라미 새끼 몇 마리를 잡아 고추장에 끓여서 소주를 마셨다.
태호가 친구의 빵을 훔쳐먹었다. 빌러 가든지 매를 맞던지 하라고 했더니 그놈은 빌러갔다와서 장한 일을 했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10원을 줬다.
1973. 6. 24
대구시에서 공장을 이전하라고 하니 큰일이다. 무허가라고 정비공장들이 진정한 모양이다. 부산, 대전, 안동, 포항까지 다녀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대전에 있는 삼화2급공업사 내에 세를 들었다. 100000원 선금에 월세 50000원이다. 월급 30000원짜리 기술자와 5명의 직공을 구했다. 가족은 태호 학교 때문에 대구에 둘 수밖에 없었다.
1973. 7. 22
고생한 보람으로 한 달에 27만 원 올렸다. 재료비 10만 원, 인건비, 세 50000원을 제하고 7만 원 벌었다. 그런데 사장놈이 돈을 더 내라고 트집을 잡는다. 충청도 양반은 옛말이다.
어머니 음성을 녹음했다.
1973. 8. 24
대구에서 다시 개업했다. 아내와 둘이 4대를 닦아 7300원을 벌었다. 기분이 좋다. 자전거에 아들딸을 태우고 고기찌개가 기다리는 셋방으로 달렸다.
유라는 엄마가 오이 맛사지를 하니까 저도 따라 한다. 여우다. 입술에 루주를 먹칠하기도 하고 예쁘다고 하면 티비 화면에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1973. 9. 16
추석. 양구에서 강릉, 속초를 거쳐 영진 바닷가 공동묘지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려 있었다. 아버지 산소에 소주를 올리고 온 가족이 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실까. 식구들이 흙을 손으로 쥐어다 무너진 묘 구석을 메웠다. 그리고 달이 뜰 즈음 산소를 떠났다. 자꾸 어둠에 싸이는 산소를 뒤돌아보았다.
1973. 10. 9
대구 유지인 제일택시회사 이 회장을 만나기로 약속한 ‘해다방’에 들어가니 마담이 거지가 동냥온 줄 알고 “나가!”라고 소리친다. 고무신에 기름 범벅이니 이해가 간다. 깎지 못한 수염과 머리털. 정말 세수할 새도 없이 바쁘다. 내가 빙그레 웃자 저쪽 구석에서 늙은 이 회장이 “김 사장?” 하고 나를 부른다. 마담은 자기 업소의 최고 단골인 이 회장이 나를 찾는 걸 보고 놀라며 미안하다고 양주 두 잔을 대접한다. 그리고 애매하게 레지 아가씨들을 불러놓고 나무란다.
“느그들은 만날 광택센타로 차를 배달하면서 김 사장님을 모르나? 간나들!”
“거지복장인데 우째 알겠능교. 커피도 기사들이 시키는데예.”
“그래, 거지 맞아. 나는 커피도 시킨 적이 없거든.”
내 말에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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