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나들이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①] 꽃비가 내리는 정자亭子, 사운고택

충남시대 2021. 3. 25. 15:56

사운고택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에 위치한 양주 조씨의 종가이다. 현재 고택 소유자인 조환웅씨의 부친 이름을 따서 ‘조응식 가옥’이라고도 불린다. 사운고택은 국가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운고택이라 이름 짓게 된 것은 조환웅씨의 고조부인 조중세(1847~1898)선생의 호가 사운(士雲)이기 때문이다. 이 고택의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우화정(雨花停)이다. 현판의 글씨는 영조 때 문신 자하 신위(申緯. 회화와 서예에 능하며 조선 3대 묵죽화가)가 썼다. 한자를 풀어보니 ‘꽃비가 내리는 정자’다. 사운고택에 머물 때 뜰 앞에 있는 벚나무의 꽃잎이 마치 빗방울처럼 흩날렸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수려하고 선線이 아름다운 고택에 걸 맞는 이름이다. 봄이 오면 저 우람한 벚나무에 그날처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빗방울처럼 꽃잎이 휘날릴 것이다. 대문 앞에 있는 연지도 봄맞이가 한창이다.

대문채 / 사진 = 진명희



사랑채(우화정) / 사진 = 진명희


사운고택은 행랑채, 사랑채(우화정), 안채(보현당), 안사랑채(얼방원), 광채(현재 고택체험 세미나실)로 이루어져 있다. 초입에는 노신제를 지낸 500년이 훨씬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에겐 더없이 귀하고 영험한 나무이다. 정자 옆에는 250여년이 된 은행나무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양주 조씨는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를 배출한 집안이며 정승만 여섯 명이 나왔고 본채만 99칸에 달하는 명문부호였다. 현재는 60칸 정도만 남아 있다.

우화정 앞에 비석 하나와 연자방아가 눈길을 끈다. 비석에는 고 조응식씨(1929∼2010)가 지은 글이 적혀 있다. ‘배품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조가네 전통을 이어서 나가자’라는 글귀다. 조중세 옹이 문경 현감으로 재직 시 심한 기근으로 가뭄이 들자 사운고택의 양식을 실어다가 문경의 백성을 구제했고 고종31년 홍주의병 봉기 때에는 군량미로 쌀 239두를 보냈다. 우화정이 한국전쟁 시에도 화를 당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덕을 베푼 까닭이라며 그의 선행을 칭송했다.

입구는 여섯 칸 반짜리 대문채다. 왼쪽에 세 칸 반, 오른쪽에 두 칸이다. 그 가운데 사운고택이라 적힌 솟을 대문이 위치한다. 행랑채에서 안사랑채로 들어가는 협문이 있다. 얼방문이라 적혔다. ‘얼’은 큰 어른을 뜻하며 백제의 임금을 뜻하는 글자로 이곳에서 통용되던 한자였다. 장곡면은 원래 오사면과 성지면, 얼방면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1914년 장곡면으로 합쳐지기 전엔 이 지역 명칭이 얼방면이었다. 조 관장은 토속적인 이 단어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안사랑채 대문 현판에 넣었다고 한다.

얼방문 / 사진 = 진명희

솟을대문을 지나면 ‘一’자형 사랑채이다. 사랑채 뒤쪽에는 ‘ㄱ’자형의 안채가 있고 안사랑채는 동쪽 협문의 오른쪽에 있다. 행랑채와 사랑채 사이의 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남서향이라 햇볕이 따스하게 기운다. 건물 뒤쪽으로는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아늑함은 물론 굳은 기개가 느껴진다.

 

누마루 / 사진 = 진명희

사랑채는 다섯 칸 반 크기다. 장방형 돌로 반듯하게 쌓은 기단 위에 지어졌으며, 중앙에 한 칸의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방을 배치했다. 이곳에서 시선을 잡은 곳이 동쪽 끝자락의 누마루이다. 누마루는 선비의 여유와 풍류가 느껴진다. 마음의 여유와 사색을 즐기는 공간이다. 사랑채 앞에는 사방이 판장벽으로 된 ‘부경桴京’이란 건물이 있다. 부경은 아래쪽 사방으로 숨구멍을 뚫어 도정하지 않은 볍씨를 보관했다. 또한 고구려시대부터 집집마다 곡식과 찬거리, 소금 등을 보관하기도 했다. 고택에 올 때마다 조상들의 탁월한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라보이는 풍광과 통풍을 염두에 두고 비치는 햇살조차 생각하며 집을 지었다.

학산서재 / 사진 = 진명희

서쪽에 안채를 통하는 문이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부엌이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여인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조 관장은 갖가지 꽃을 심어 아름다움과 향기를 잃지 않도록 정성껏 가꾸었다. 그리고 안채에 조환웅 관장이 조모를 기려 보현당(寶賢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가세를 자랑하기보다 몸을 낮춰 마을 사람과 어울려 지내고자 하는 마음’이란다. 사운고택에는 역사와 함께 빛나는 또 하나의 귀중한 자료가 있다. 대대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수했던 요리비법이 적힌 <음식방문飮食方文>이라는 한글 음식조리서가 있다. 이 책은 숙부인 전의 이씨(1867∼1938)가 69가지의 조리법을 기록으로 남긴 요리책으로 충청도 반가의 상차림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운고택 초입에 초가가 한 채 눈에 들어온다. ‘학산서재(鶴山西齋)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학산은 종손인 조환웅씨의 호이다. ‘초가지붕은 남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 한 상징적인 곳으로 방문객이 큰 기와집에서 느낄 위화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목적으로 초가를 지었다한다.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며 사운고택의 사방을 다시 둘러본다. 고요함속에 스며드는 선조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말없는 역사의 한 자락이 초봄, 바람결에 스친다. 선비의 글 읽는 소리만큼이나 청량한 하늘빛이다.

*조환웅 씨는 양주 조씨 12대 종손이며 가문의 상징인 사운고택을 지키며, 농사도 짓고 장곡향토유물전시관 관장으로 지역의 역사 발굴, 보존·계승에 앞장서고 있다.

글 / 진명희 문화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