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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50회)

야비한 인간만 되지 마라1983. 12. 22   그동안 업소를 정리하고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매일 수도권 주변의 해안을 여행했다. 오이도에도 두세 번 다녀왔다. 놀고먹어도 배는 곪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음식장사 경험이 풍부하니 또 식당을 차리면 된다.   태호가 처음 공부란 말을 꺼낸다. 삼성반도체 주차장에서 차를 정리해주고 몇 푼 받는 모양인데 큰 자랑이다. 어떤 식으로 그놈에게 한恨을 가르쳐줄지가 걱정이다.   태호가 2종면허를 땄다고 한다. 집을 나가긴 했어도 월 23만 원씩 돈을 모으고 면허증을 딴 것이 대견스럽다. 나는 태호에게 일렀다.   “위기를 찬스로 만들어라.” 1984. 1. 4   오랜만에 태호가 낀 온 식구가 제사상을 차렸다. 내가 보관해 둔 상복을 태호에게 입히고 둘이 어머니 산..

연재소설 2024.11.2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9회)

트로이 목마 현장에서1982. 1. 1   도가에는 현빈(玄牝)이 있었으니 그건 谷神이다.   요즘 다시 노장자서(노자와 장자의 저서), 공맹자서(공자와 맹자의 저서), 대학, 중용 등을 읽고 있다.   밤을 새우며 습작하고 읽는다. 태어나서 처음 행복감을 느낀다. 그토록 목매달던 공부가 아닌가! 1982. 3. 4   한국일보 문화센타 소설반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하루, 3개월 동안 40000원. 서울대 전광용 교수가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그의 대표작『꺼삐딴 리』는 일제강점 말기와 50년대의 기회주의적인 풍토와 지도층 인사들의 반민족 행위를 비판한 작품이다.   나는 옛날부터 不朽(불후)란 낱말을 좋아했다. 일기장 첫머리에도 라고 썼던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표현의 욕망을 지닌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재소설 2024.11.1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8회)

10·26사태와 5.18민주화운동1878. 3. 9   겨우 살만 하니까 떠나다니. 어디서 울고 있느냐. 어서 돌아오라!   수니는 만날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미치겠다. 수니가 손님이 밀리는 업소를 팽개치고 나간 것도 그 오해 때문이다. 의정부 생질녀가 외숙모 펀지를 대신 붙여주었다. 편지 첫마디부터가 내 가슴을 울렸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저는 지금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은 환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속옷은 건넌방에 있으니 찾아 입으세요.....   정말 미치겠다. 왜 이리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기야 그 깊은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내가 잘못이다. 나는 아내에게 보고 싶은 마음을 원고지 열 장 분량이나 썼다. 무엇보다 유라가 보고 싶어 못 견디겠다. 유라 체취를 온 ..

연재소설 2024.11.12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7회)

가난한 밥집 주인이 주례를 서다1975. 5. 13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여 유신헌법 반대, 부정, 비방행위를 금지시켰다. 1975. 7. 26   서울 봉천1동(당곡)에서 이잣돈을 얻고 전당포에 시계를 잡혀 과일과 야채장사를 시작했다. 용산시장에서 무 배추와 과일을 받아와 팔았는데 일반시장 상인들은 도매가로 떼다 팔지만 나는 몇 포기씩만 떼다 파니 시장보다 비싸거니와 상품 질이 떨어져 팔리지 않았다. 가끔 아는 사람들이 동정으로 팔아줄 뿐이었다.   야채장사를 접고 건축현장에서 일용직으로 품을 팔았다. 하지만 판넬을 나르기에는 힘이 부쳐 위험했다. 등에 판넬을 메고 2층 3층에 오르다 넘어지면 즉사할 판이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해봐요. 원래 약체라 공사판 일은 포기하소.”   오야지(감독자)의..

연재소설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