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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장 출신 남문우 변호사 자전(自傳) 이야기

충남시대 2022. 12. 13. 10:22

군대 생활의 추억Ⅱ

 

그 외 사병들은 초등학교 중퇴자나 무학자가 대부분이었으며, 초등학교 졸업자도 몇 사람 안 되었다. 중대원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 농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하다가 군대에 온 사람들이었고, 집이 서울인 사람은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임하사나 하사관들을 제외한 사병들은 군인다운 기백이나 용감성을 찾아볼 수 없었고 빛 바랜 누더기 옷에 몇 달 굶주린 거지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사병들이 입은 군복은 저녁에 지어 입으면(보수) 다음날 다시 찢어져 매일 저녁 꿰매 입어야 했다. 또 사병들이 하는 일이란 아침에 사역병으로 집합한 후 야전삽과 대검을 가지고 산으로 내몰려 소나무를 베어 연대 연병장에 차려 놓은 제재소에서 켜서 건축자재를 만들어 군 트럭으로 실어내어 파는 소위 후생 사업을 하고 있었다. 

△남문우 변호사 군인시절의 모습 (뒤에 오른쪽)


 아침저녁으로 나누어주는 밥은 항상 정량부족으로 육사출신 소대장들이 밥그릇을 들고 사단사령부까지 뛰어가서 항의하는 촌극이 자주 벌어지곤 하였다. 그래도 그 때 육사출신 소대장들의 정의감과 용감성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육사에서는 참 교육을 잘 시켰구나. 앞으로 육사출신들이 모두 군 장교로 자리를 차지하는 날 우리 국군도 제자리를 잡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부대에 배속된 그 다음날 죽을 뻔한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배속 첫날 내가 소속된 부대가 정해져서 내무반에 들어가 분대장에게 신고하고 내무반원들과 인사를 하고 앉아 있는데, 계급이 병장인 분대장이 “어느 대학 다니다 왔느냐”고 묻길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에 재학 중에 왔다고 대답했더니 분대장 이하 전 대원이 부러움 반, 질투심 반의 눈초리로 나를 원숭이 보듯 하여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마침 비가 와서 벌채작업을 못 나가고 분대원 전원이 내무반에서 칼빈총 수입(소제)를 하던 중 나는 칼빈총을 분해하여 깨끗이 닦은 후 다시 조립하다가 실수로 손가락이 물려 손가락에 상처가 나고 금방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손가락이 아파 참고 있는데 분대장이라는 사람이 “자식 대학 나오면 뭐하나, 총기 수입도 못하는 놈이”라면서 모욕적인 말을 하였다.  

 나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서 아픔을 참고 있는 부하에게 “얼마나 다쳤느냐?”고 위로는 커녕 욕설을 하면서 모욕을 주는 것에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아무리 상관이지만 개인적인 실수를 가지고 인격적인 모욕을 하지 마십시요” 하고 대꾸했다. 그 순간 분대장이 “야 이놈 봐라, 기록카드에 잉크도 안 마른 새까만 졸병놈이 상사에게 반항하는 것이냐? 야 이새끼 이리 나와”하면서 자기가 수입하던 총대를 거꾸로 잡고 나를 때리려 달려들었다.

 나는 순간 가만히 있다가는 총개머리로 맞아 죽을 것 같아 나도 내가 수입하던 칼빈총 개머리를 거꾸로 잡고 일어나면서, “내가 아무리 졸병이지만 개인적인 일로 모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덤벼봐라, 너 죽고 나 죽자”면서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분대장에게 달려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총개머리 판을 거꾸로 잡고 결투하듯이 한참을 싸웠다. 

 그 때 마침 우리 막사 옆을 지나가던 선임하사가 달려 들어와 우리 둘을 떼놓지 않았더라면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맞아 죽거나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선임하사가 둘을 떼 놓고 싸운 이유를 물어 내가 대충 경위를 설명했더니 선임하사가 내가 지금 중대장님께 보고하고 올 것이니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여 우리 두 사람은 떨어져 씩씩거리고 있는데, 중대장실에 갔다 온 선임하사가 나를 데리고 중대장실로 가는 것이었다.

 중대장님은 나에게 온화한 말로 “남 일병, 여기는 대학과는 다른 군대다. 그러니 사회에서와 같이 생각하면 안 되고, 상관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남 일병의 행동은 군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으나, 군을 잘 몰라 한 것으로 보아 이번 한 번은 모든 것을 불문에 부치고, 또 분대장이 같은 일로 남 일병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 앞으로 잘 적응해서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도록 하라”고 훈계하고 나를 내보내고 나서 분대장을 불러 비슷한 주의를 준 것으로 안다.

 나는 그날 인자하고 훌륭한 중대장을 만나지 못했으면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후 그 중대장 성함이 김삼용(金三龍)대위이고, 고려대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제대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 찾아 뵙고 고마운 마음의 표시를 하기 위하여 고려대학교와 육군본부에 편지 등을 통해 그분의 소재를 알고자 여러 번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그분의 주소를 몰라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하여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위와 같은 사건이 있은 후 악질인 분대장의 지시와 간섭을 어떻게 받으며 살아갈까 고심한 끝에 분대장의 지시를 받지 않으려면 분대장이 시키기 전에 내가 솔선하여 먼저 일을 처리하고 되도록 분대장이 안 보이는 데서 더욱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다음날부터 즉시 실행에 옮겼다.

 보통 아침 기상 시간이 여섯시인데 나는 한시간 먼저 다섯시에 일어나서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당번을 정하여 밥을 타다 배식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나는 매일 당번을 자청하여 밥을 타다가 분대원들에게 나누어주고 밥을 다 먹은 후에는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나서 “선착순 집합”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야전 삽과 대검을 들고 제일 먼저 집합하여 산으로 나무를 베러 가곤 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몸은 고되었으나 마음만은 분대장의 지시를 안 받고 그의 얼굴을 자주 안 보니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약 1개월 가량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그 악질로 생각했던 분대장이 나에게 오더니 “남선생 내가 남선생을 잘못 보아 실수를 했으니 용서하시오. 앞으로 유감 갖지 말고 잘 지냅시다.”고 말하면서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내가 그 동안 그를 미워했던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여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지요.”라며 그의 손을 잡고 흔들어 대면서 속으로 ‘참으로 훌륭한 사람을 내가 오해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 후 그는 나에게 친절히 하면서 내가 청소하는 빗자루도 빼앗아 자신이 스스로 쓸기도 하고 어쩌다 게으름을 피우는 졸병들에게 “야! 남 선생 반만 닮아라.”고 야단을 치곤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