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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장 출신 남문우 변호사 자전(自傳) 이야기

충남시대 2023. 3. 28. 10:44
검사생활 하면서 있었던 일들 Ⅰ

 

정실과 원칙 이야기

 

 나는 검사 임관 전에 1961년 4월 1일부터 1966년 9월 30일까지 검찰청 일반직 공무원(6,7급)으로 5년 반 동안 대검찰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다른 검사들보다는 일반직 직원들을 더 많이 알고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내가 1966년 12월 1일 검사 임명을 받고 서울지방검찰청에 근무하게 되자 나를 아는 직원들이 사건 배당자인 차장검사에게 자기가 봐주고자 하는 사건을 “남 검사”에게 배당해 달라고 부탁하여 나에게 배당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그들의 부탁대로 들어주다가는 원칙 없이 정실에 흐르는 결정을 할 것을 걱정하여 원칙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하되 봐 주어도 되는 것은 질질 끌지 말고 깨끗이 봐 주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 대로 결정하되 그에게 안 되는 사유를 친절히 설명하여 이해를 구해 왔기 때문에 별로 욕을 먹지 않고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사건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검사가 되기 전에 같은 과에 근무하면서 내가 늘 고맙게 생각하던 계장이 있었다. 그런데 검사가 되고 1년이 지난 후에 나에게 와서 “내가 고소장을 위에 부탁하여 남 검사님한테 배당케 하였으니 철저히 조사하여 피고소인을 엄벌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 고소장을 검토해 보니 고소인은 당시 모 인권옹호 단체의 간부 직원 모씨였고, 피고소인은 단국대학교 재단 사무처장인데 고소 내용인즉 당시 단국대학교 소유인 동대문구 숭인동 소재 산비탈에 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단국대학 측에서 서민들에게 각자 점유하고 있는 땅을 팔기로 계약하여 서민들은 땅 값을 모두 납부했는데 이를 담당한 단국대학교 재단 사무처장이 그 돈을 받아 대학 재단에 납부하지 않고 횡령했다는 것이다.

 

 나는 고소장을 읽어보고 왜 피해를 당한 판잣집 소유자들이 고소하지 않고 인권옹호단체의 간부 직원 이름으로 고소했는지 의문이 가서 단국대학으로부터 땅을 사기로 했다는 판잣집 소유자들을 차례로 불러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땅 값으로 지불했는가를 확인해 보니 모두들 땅값을 인권단체 간부 직원에게 지불했고, 영수증도 받았다면서 내놓기에 살펴보니 영수증은 모두 인권단체 명의로 발행되어 있어 영수증 사본을 임의 제출 받아 압수하였다.

△ 남문우 변호사 젊은시절

 

 그리고 나서 고소인인 인권옹호단체 간부 직원을 불러 물어보니 자기가 속한 인권옹호 단체에서 서민들인 판자촌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하여 자기들이 판자촌 주인들로부터 땅값을 직접 받아 단국대학 측에 납부했는데 피고소인이 횡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권옹호 단체 간부 직원이 판잣집 주인들로부터 받았다는 땅값의 액수와 판잣집 주인들로부터 압수한 인권옹호 단체 명의의 영수증에 나타난 금액이 맞지 않고 영수증에 적힌 금액이 훨씬 많았다.

 

 나는 결국 인권옹호 단체 간부 직원이 판잣집 서민들로부터 영수증을 발부하고 받은 금액 중에서 상당 액수를 횡령하고 일부만을 단국대학 측에 납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단국대학 측에서 판잣집 주인들에게 대금 납부를 독촉하자 우매한 간부 직원이 자기 죄가 탈로날까 봐서 선수를 쳐서 검찰 친지를 통하여 스스로 고소장을 작성하여 제출케 하였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명색이 서민들의 인권보호를 주 업무로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권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오히려 밑바닥 인생으로 살아가는 판자촌 서민들의 돈을 뜯어먹다니 통탄할 일이었다. 천사의 탈을 쓰고 실제로는 악마로 변신하여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마귀와도 같은 짓이었다. 그러고도 자기 죄를 모면하려고 무고한 사람을 고소까지 하다니 이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나에게 위 고소장을 맡긴 검찰청 계장도 내용은 깊이 모르고 인권옹호단체 간부 직원의 말만 믿고 나에게 부탁했으리라 여겨 부탁한 계장을 불러 “고소장 내용을 수사하다 보니 단국대학 재단 사무처장이 죄인이 아니고 인권옹호단체 간부 직원이 오히려 서민들로부터 땅값을 받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판자촌 사람들로부터 압수한 영수증을 보여 주어도 그 계장은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인권옹호단체 간부 직원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는 수 없이 “인권옹호단체 간부 직원을 당장 구속하려다가 그래도 당신이 부탁한 것이라 시간을 줄 터이니 빨리 그 간부 직원으로 하여금 횡령액을 판잣집 서민들에게 변제하면 불구속 기소하여 주겠지만 횡령액을 변상하지 않으면 구속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인권옹호 단체 간부 직원을 불러 횡령죄와 무고죄로 인지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고 나서 “시간을 줄 터이니 빨리 횡령액을 변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구속하겠다”고 통보하였다.

 

 그리고 나서 며칠 기다리는 동안 숭인동 판자촌 사람들도 처음에는 인권옹호단체 사람들이 자기들의 권익을 위하여 일해주는 줄 알고 고맙게 생각하고 모든 것을 맡겼다가 자기들로부터 받아간 땅값을 횡령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개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합의할 시간을 주었으나 인권옹호단체 간부 직원이 피해액을 변상할 생각은 않고 딴 짓만 하고다녀서 불러서 긴급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자 나에게 사건을 부탁했던 계장이 찾아와서 “상대방을 처벌해 달라고 맡겼더니 거꾸로 고소인을 잡아넣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기에 나는 “전에도 여러 번 사건 내용을 설명하여 이해한 줄 알았는데 검찰청 직원이 사리를 따지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으나 그는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 이후에는 나와 마주치는 일이 없어서 그의 의중을 모르지만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나의 참 뜻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을 구속한 후에 혹시 나의 판단이 옳은지 객관적인 판정을 받아보려고 적부심사 신청이나 보석 신청을 하라고 기회를 주었으나 모두 기각된 것으로 기억된다.

 

미완.
다음호 부터는 변호사님 산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