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인사이드

남문우 前 변호사 연재 에세이

충남시대 2023. 4. 11. 11:53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사연 2

 

 중국어를 공부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첫째, 나이 탓으로 혀가 굳어서 특히 굴림소리(설전음舌颤音)가 많은 발음을 하기가 힘들어서 억지로 하다보면 혀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둘째, 발음과 성조를 외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외웠다 하더라도 그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또 그것을 다 외운다 하더라도 음절의 높낮이와 장단을 성조에 맞게 발음하여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몇 달 후에 내가 단골로 다니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중국식당에 가서 사장에게 “어떤 음식이 제일 맛이 있느냐?”를 중국말로 “你好! 什么饭菜是好吃?”라고 물었더니 중국인 사장이 내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닌가. 중국인이 자기네 말을 못 알아듣다니 이상한 일이지만 이는 중국인의 잘못이 아니라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만큼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나이가 들어서 중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미친놈이나 할 짓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통감하였다. 그러나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내가 아무리 늙었기로서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 산을 넘지 못하랴하는 오기가 생겨 더욱 정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젊은 세대보다 한문을 많이 알기 때문에 뜻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선생님이 먼저 읽으면 학생들이 따라 읽기를 두 번 한 다음에 앉은 차례대로 모든 학생들에게 읽게 하거나 두 사람을 한조로 서로 대화 형식으로 두 번 반복하여 읽게 하고 나서 선생님이 문장을 해석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그날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새로 나온 단어를 외어 쓰거나 문장을 외우는 숙제를 내어 다음시간 에 발표하도록 하고 그다음 시간에는 시작과 동시에 전 시간에 낸 숙제를 가지고 시험을 보아 학생들이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늙어서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열심히 숙제문제를 외워서 시험시간이 되면 “매도 먼저 맞으면 낫다”는 속담도 있어 자청해서 제일 먼저 발표하곤 했다. 젊은 학생 중에는 생업이 바빠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외어오지 않아서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책을 보면서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책망도 안하고 또 시험 답안지를 걷거나 채점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렇게 안하면 학생들이 집에서 공부를 않기 때문에  시험을 보는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만 말씀 하셨다. 그러나 외워서 만점을 받은 문제도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잊어 버리고 마니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렵기는 하지만 점점 재미도 붙어 더 열심히 계속하게 되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후에 컴퓨터에 들어가 보니 500개의 기초 중국어 단어집이 있어서 그것을 작은 수첩에 옮겨 두 권을 만들어 하나는 내가 갖고 한 권을 서울 올라가는 길에 두현에게 주면서 “컴퓨터에 보니 기초중국어 단어집이 있어서 너 주려고 만들어 왔으니 이것을 참고로 열심히 해라” 하고 주기까지 했다.그렇게 하면 두현이가 더 열심히 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던 중에 막내 아들이 회사일로 미국으로 2년간 출장 근무 명령이 나서  2016년 11월 중순경 미국으로 떠난후 손자인 두현이도 엄마, 누나와 함께 아빠 따라 2017년 2월 초에 미국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두현이 중국어 공부는 몇 달만에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나는 일순간에 공부하는 목적을 잃고 말았으니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한달에 한번정도 회식도 있어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기 때문에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다녔다.
 처음 시작할때는 25명이던 학생 수가 시간이 갈수록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생겨 점점 줄어들어 홍북읍 홍천 문화마을  도서실로 이전하여 공부할 때 는 겨우 8명 밖에 남지 않았으나  모두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만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오붓하여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겨울철에도 저녁 7시부터 공부하다 보니 밤에 자동차를 운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늙은이가 밤에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니 그만 다니라고 성화를 대는 바람에 저녁에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러는가 싶기도 하여 할 수 없이 봄이 돌아오면 다시 나오겠다고 약속하고, 2019년 겨울에 학원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코로나19 사태로 그 학원도 문을 닫는 바람에 다시 학원 다닐길도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중국어 공부를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학원에 다닐 때보다는 게을러진 것이 사실이다.
 공부하면서 손자를 위하여 간체자(简体字) 1500자(字) 를 찾아 노트에 적어 두현이가 귀국하면 주려고 준비까지 했는데 어찌된 노릇이지 이녀석이 1년 반만인 2018년 8월 경에 귀국하고서도 중국어 공부를 다시 할 생각을 안해서 말도 못하고 답답하기 만 하다. 귀국하자마자 중학교에 입학하여 아침에 학교 가서 공부를 마치면 곧바로 학원에 갔다가 밤 11시가 넘어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오는 것을 보고 차마 “왜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 않느냐?” 고 나무랄 수도 없고 속만 태울 뿐이다.
 이제 시간이 흘러 벌써 두현이도 고등학교 1학년생이니 방학이 끝나면 2학년에 올라가 대학 입시 준비에 매달려야 할 판이니 중국어 공부는 물 건너 가버린 것이다. 
이제는 두현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가고 나서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문우 (변호사, 전 홍성지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