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인사이드

남문우 前 변호사 연재 에세이

충남시대 2023. 4. 4. 13:18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사연

 

 나는 84세 아주 늦은 나이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보통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젊었을 때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해서 써먹기 위하여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 끝자락에 이른 내 입장에서 중국어를 알아둘 필요가 생기거나 앞으로 써먹을 것을 예상하고 시작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에게는 다복(多福)하게도 5남매의 자식들한테서 11명이나 되는 많은 손자 손녀들이 있고 그중에 2명이 결혼하여 증손주들도 4명이나 된다.

 모든 손주들이 사랑스럽지 않은 놈이 없지만 내리사랑이라고 막내 손자 녀석한테 신경이 더 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손주 녀석들은 일년 가야 겨우 한 번정도 전화를 할까 말까 한데 이 녀석은 유독 할머니를 잘 따르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우리가 서울 가면 꼭 할머니 옆에서 같이 자고 하루가 멀다하고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해대니 어찌 더 귀엽지 않겠는가?

 2016년 7월경 막내며느리가 전화로 “아버님 두현(막내손자이름)이가 오늘 중국어를 배우려고 중국어 학원에 등록하고 왔어요” 하기에 어찌나 기쁜지 두현이를 바꾸라고 하여 “두현아 참! 잘했다. 너의 세대는 앞으로 영어는 물론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어는 꼭 할 줄 알아야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열심히 하라. 네가 한다니 할아버지도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터이니 할아버지와 누가 잘하나 내기하자!”고 당시 초등하교 5학년생인 두현이와 약속했다.

 나는 중국어 공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혹시 공부하다가 중간에 어렵다고 그만 둘까 걱정해서 나도 한다고 하면 두현이가 부담을 느껴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할 것 같아서 같이 하자고 덜컥 말을 해놓고 나서 “어! 어찌 감당하려고 애들하고 그런 실행 가능성 없는 약속을 한단 말인가” 금방 후회했으나 애들하고의 약속을 깨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아 할 수 없이 중국어를 공부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수소문한 끝에 홍성중학교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씩 일반인을 상대로 중국어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다.

 교실로 들어서자 30여명의 학생들이 “어! 저 할아버지가 왜 여기 오지?” 하는 눈초리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어찌나 창피한 생각이 드는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 남문우 前 변호사 운동하는 모습.

 언뜻 보아 학생들은 20대에서 40대 후반의 젊은 사람들로 보였고 나같이 늙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홍성이 워낙 조그마한 지방 도시이다보니 검찰청 지청장에다 변호사를 하면서 20여년을 살았으니 내가 아는 사람도 몇몇 보이고 아마도 그들 대부분이 나를 알아 봤을 것이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선생님이 나를 소개하고 “301句로 끝내는 중국어회화”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는데 이미 6과 “你的生日是几月几号?(당신의 생일은 언제입니까?)”까지 진도가 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앉은 순서대로 배울 과목을 읽어 보라고 시키다가 내 차례가 오자 “변호사님 한번 읽어 보시지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하여 “오늘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모르니 다음부터 하겠습니다” 고 겨우 넘어갔다.

 집에 와서 책을 읽어 보니 중국어는 발음하는 방법으로 한어병음법(汉语拼音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자의 발음을 로마자로 음을 달고 그 위에 성조 기호(1성, 2성, 3성, 4성)를 표기하여 음절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음절마다 그 발음과 성조를 외우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모두들 중국어 배우기가 어렵다고 했다.

 선생님은 광천중학교 영어교사로 있는 이상희 선생인데 원래 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분도 아니고 중국에서 5년간 사업을 하면서 중국어를 공부했을 뿐이고 학교 선생도 2008년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실력이 대단한 분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