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인사이드

남문우 前 변호사 연재 에세이

충남시대 2023. 4. 25. 11:20

 봄이 되면 길가, 밭, 야산 등을 가리지 않고 눈만 돌리면 여기 저기에서 노랗게 피어있는 민들레 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들레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자신의 모습을 예쁘고 고상(高尙)하게 보이려고 한껏 멋을 내어 노란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자기에게 오라고 손짓을 보내지만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린다.
 아마도 비록 외모는 우아(優雅)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지조(志操)없이 아무데나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누워 있어 천(賤)하고 경박(輕薄)해 보여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게 여기는 흔하디 흔한 잡초로밖에 보이지 않는가 보다.
  또한 민들레는 아무 곳에서나 흙만 있으면 주책없이 남의 자리를 빼앗아 뿌리를 내리고 앉아 있어 제거대상(除去對象)의 풀에 지나지 않아 그것을 뽑아버리는데 힘이 들고 귀찮아서 사람들로부터 천덕꾸러기로 천대(賤待)받고 외면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민들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해동(解凍)되자마자 채 녹지 않은 땅을 비집고 나와 제일 먼저 아름다운 자태(姿態)로 우리 인간에게 봄소식을 알려주면서 인사하는 고마운 꽃이다.  

△ 민들레 (사진1)

  민들레(사진1)는 내가 좋아하는 복수초(福壽草) (사진2)와 꽃 모양이나 색깔이 꼭 닮았다. 또 이른 봄에 언 땅을 비집고 나와 제일 먼저 기쁜 봄소식을 우리에게 전하는 점도 복수초와 비슷하다. 
 둘 다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려서 추위로부터 꽃잎을 보호하다가 아침 햇빛과 함께 황금색의 꽃잎을 활짝 벌려 햇빛을 받아들이며 반짝반짝 광채(光彩)를 내는 신비경(神祕境)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점도 같다. 
  다만 민들레는 꽃잎이 가늘고 긴 반면 복수초는 좀 둥근 편이다. 

△ 복수초 (사진2)

  복수초는 꽃이 피어있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우리에게 아쉬움을 주지만 민들레는 오랜기간 동안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친구로서 오히려 더 고마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잡티 하나 없이 순수(純粹)하고 순박(淳朴)한 민들레를 복수초와 같이 잡초가 아닌 귀한 꽃으로 생각하고 좋아한다.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밖에만 나서면 사방에 민들레 천지인데 우리 집 정원에서는 200평 정도의 꽤 넓은데도 불구하고 민들레를 통 찾아볼 수 없다.
  며칠 전 이웃집 밭에 소담스럽게 핀 민들레 꽃이 복수초를 닮아서 마침 갑자기 사라진 복수초를 그리워하던 참이라 복수초를 대신하여 감상하려고 뽑아다가 집안 정원에 심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웃으면서 “아니! 그 흔한 잡초를 무엇 하려고 집안에 심어 정원을 어지러뜨리려고 해요?”라고 핀잔을 주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는 해마다 여름에 채마(菜麻)밭에서 잡초를 뽑는데 멀미를 내고 있던 참이라 그런지 민들레가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 걸어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민들레 한 포기가 하수구의 우수(雨水)맨홀 바닥에다 뿌리를 내리고 맨홀 뚜껑으로 덮은 스틸그레이팅(Steel Grating)을 뚫고 노란 꽃송이를 철망 밖으로 내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 순간 요즘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는 터키의 옛날 오스만 제국의 황실을 다룬 역사드라마 “위대한 세기 쾨셈 2”에 자주 나오는 지하 철창 감옥 장면이 뇌리(腦裡)에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 하수구  맨홀 바닥에  핀 민들레꽃

  민들레가 철망(Steel Grating) 밖으로 꽃잎을 애처롭게 내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죄(罪)도 없이 억울하게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니 살려달라고 애원(哀願)하는 죄수(罪囚)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도 애처롭고 불쌍하여 즉시 핸드폰에 담았다.
  아니 이 넓은 땅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시궁창 냄새가 나는 좁은 맨홀 구멍에 들어가 터전을 잡았단 말인가? 하긴 좋은 땅에서 꽃을 피웠으면 나도 바쁘게 걸어가는 마당에 설사 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잡초라고 업신여기고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까 자기를 희생하면서 나 좀 보라는 애절(哀切)한 마음으로 일부러 나쁜 장소를 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다. 
 사실 나는 그 처량한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들어서 그 꽃을 카메라에 담아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