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비가 어떻게 장사속을 익혔지?
“자네도 알디만 내레 북한에 두고온 식구밖에 더 있갔어? 우기고 우기다가니 누나가 자꾸 조르니께니 장가는 들었디만서두.”
결혼을 하고 몇 달이 지나자 누나는 시내 목 좋은 곳에 가게를 마련하여 동생한테 횟집을 차려주었다. 배승태는 지화와 함께 밤낮으로 장사에 매달렸다. 손님도 하나 둘 불어났다. 결혼 이듬해에는 아들도 낳았다. 아들 이름은 지화의 요구대로 강할 강자에 돌림자인 식자를 붙여 강식이라고 지었다. 배승태는 자식을 얻게 되자 세상살이가 즐겁기만 했다. 애가 귀염 떨 나이가 되고부터는 이북에 두고 온 아내 생각도 점점 희미해져갔다. 장사도 한 해가 다르게 번창해갔고 십 년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집과 상가를 장만해서 업소도 넓혔다. 배승태는 점점 사업에 재미가 붙어갔다. 주변에서도 신망을 얻게 되었고 지역사회 일에 참여한 후로는 경계의 눈초리로 보던 사람들도 친절히 접근해왔다. 배승태의 사업 수완이 멀리까지 소문나면서 손님이 더욱 북적댔다. 배승태는 음식 솜씨뿐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는 대인관계에도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한번 찾아온 손님은 내 친절에 녹아개디구 단골이 되었더랬어.”
배승태는 또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손님을 대접했으며 항상 자기를 낮은 위치에 두고 손님을 왕처럼 모셨다. 종업원도 가족처럼 아껴주었다. 수입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종업원의 복지를 먼저 배려했다. 종업원 생일날에는 꼭 선물을 챙기고 파티를 열어주었다. 종업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자상한지 심지어 자기의 아들이 업소에 나오는 것도 꺼려했다. 종업원들도 자기의 귀여운 자식을 떼어놓고 나와 일하는데 주인 자식이라고 해서 업소에 나다니면 꼴이 좋지 않다는 게 배승태의 생각이었다.
“식재료도 상질로 골라 썼디. 마진을 따지디 않았어. 알간?”
배승태는 음식을 잇속 챙기는 상품으로 여기지 않았다. 식재료도 제일 싱싱한 걸로 골랐다.
“내레 음식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긴 거라메.”
사실이었다. 음식이 사랑의 대상이니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을 테고 손님은 자연스레 불어나기 마련이었다. 배승태는 서비스의 원리를 터득했던 것이다.
“맞네. 자네야 말로 진짜 장사꾼이네. 그런데 살인 전문가가 어떻게 그런 장사속을 익혔는가?”
“기왕이면 전문가가 돼야잖갔어?”
배승태는 헤헤벌쭉 웃었다. 꼭 바보 같은 웃음새였다. 사람이 환경변화에 따라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 가랑잎 속에 몸을 숨기는 고도의 은폐술. 몸을 날리면서도 정조준하는 사격술. 그런 무장공비가 이번에는 장사에 요술을 부린 셈이었다.
“세상이 달래 보였디. 남한이 썩은 줄 알았더랬는데 기게 아니구나 싶었어. 장사에도 자신감이 생겼구. 기런데 에미나이는 나한테 늘 불만인 게야. 손님도 자기가 끌었다구 떠벌렸디, 빨갱인 독해개디구 손님이 안 붙는다는 게야. 에미나인 맨날 히히대기만 하구 기거이 장사 요령인 줄 안 거라메.”
헤푼 웃음은 자칫 신임을 잃기 십상이고 음식마저 품위를 잃게 된다는 것이 배승태의 생각이었다. 지화의 잘난 체는 도를 넘어 드디어는 남편을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녀가 나이 사십을 넘기고부터는 남편을 무시하는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단골손님으로 드나들던 사내들과 어울려 술을 도가니로 마셔대더니 나중에는 아예 장사를 팽개친 채 밤마다 바깥출입하는 게 일쑤였다.
지화가 바깥 나드리를 시작한 지 일 년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연일 찜통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터라 그 잘금대는 비가 고맙기만 했다. 남편이 업소에 나가 온종일 장사에 매달리는 동안 집안에서만 뒹굴던 지화는 해가 기울 무렵이 되자 몸치장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들과 어울릴 판이니 언제 돌아올지 모를 외출이었다.
밤늦게야 장사를 마친 배승태는 서둘러 집에 돌아왔지만 정답게 맞이할 가족이 없었다. 벌써 오십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가족들에게서 대접을 받아야 할 나이였다. 북한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은 항상 젊고 어린 시절의 얼굴로만 기억하고 있어 자기도 젊은 나이로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다. 남편을 반기는 아내와 아버지를 반기는 자식이 그리웠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아들녀석마저 인기척을 내지 않으니 더욱 쓸쓸했다. 배승태는 아들 방에 대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았다.
“강식이 방에 있네? 지금 공부 하고 있네?”
하지만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분명 아들이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고 있을 텐데.....
“강식인 아빠 온 줄도 모르고 머 하네?”
배승태는 자상한 목소리로 재우쳤다. 그래도 아무 대꾸가 없자 손잡이를 잡고 방문을 밀어보았다. 문이 잠겨 있었다. 문이 잠긴 걸로 보아 분명 안에 있을 텐데 웬 일일까?
“강식이 자네?”
이번에는 노크를 해봤다. 그때였다. 방문이 확 열리며 강식의 일그러진 얼굴이 아버지를 꼬나보았다. 방안 공기가 탁해 보였다. 담배 냄새였다.
“어드래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게가?”
배승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뚱거렸다. 그때 아들 입에서 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와 자꾸 시끌 떠시능교?”
처음 들어보는 말투였다. 그 버릇없는 말투가 방안의 담배 냄새와 겹치는 순간 배승태는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거실이 빙빙 돌았다. 저게 내 자식인가 싶었다. 강식이 방문을 쾅 닫았다. 한참동안 제자리에 서서 정신을 가다듬은 배승태는 다시 방문을 열었다. 강식은 빳빳이 서서 아버지를 꼬나보기만 했다. 배승태는 치미는 화를 눌러 참으며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네?”
“.....”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네?”
“.....”
“기동안 말 잘 듣고 공부도 잘 했더랬는데 왜서 이러디?”
“말하기 싫소. 퍼뜩 잠이나 자소.”
강식이 소리쳤다.
“메야? 기거이 애비한테 할 소리가? 이 간나새끼!”
배승태는 강식의 뺨을 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가슴이 떨리고 목이 탔다.
“고맙다 이 간나새끼! 늬놈도 에미년처럼 놀아나갔다 이거디? 나도 살기 싫은데 잘됐구나야 이 간나새끼!”
“어무이를 누가 저리 만들었는데 그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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