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비한 인간만 되지 마라
1983. 12. 22
그동안 업소를 정리하고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매일 수도권 주변의 해안을 여행했다. 오이도에도 두세 번 다녀왔다. 놀고먹어도 배는 곪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음식장사 경험이 풍부하니 또 식당을 차리면 된다.
태호가 처음 공부란 말을 꺼낸다. 삼성반도체 주차장에서 차를 정리해주고 몇 푼 받는 모양인데 큰 자랑이다. 어떤 식으로 그놈에게 한恨을 가르쳐줄지가 걱정이다.
태호가 2종면허를 땄다고 한다. 집을 나가긴 했어도 월 23만 원씩 돈을 모으고 면허증을 딴 것이 대견스럽다. 나는 태호에게 일렀다.
“위기를 찬스로 만들어라.”
1984. 1. 4
오랜만에 태호가 낀 온 식구가 제사상을 차렸다. 내가 보관해 둔 상복을 태호에게 입히고 둘이 어머니 산소에 갔다. 아직 잔디가 엉성한 봉분에 코트를 벗어 덮어드려라 했더니 정성스레 덮어드린다.
“너는 할머니 빈젖을 빨고 자랐어.”
성묘를 마치고 나서 태호는 퇴주에 취한 애비를 산소 아래에 대기시킨 택시에 태운다.
1984. 4. 12 (음력 3. 12)
아버지 제사상을 수리 중인 가리봉동(구로공단 5거리: 현재는 가산디지털단지) 새 점포에서 조촐히 차렸다. 그러니까 내일 오후에 동해안 바닷가 초가집 뒷방에서 아버지는 그 한 많은 생을 마치신 거다.
아내의 말대로 명동보다 사람이 많은 구로공단에 가게를 얻은 게 다행이다. 개업은 허가증이 나오는 대로 열 계획이다. <춘천옥> 간판도 달았다. 보쌈과 막국수 전문집이다. 보쌈은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도한 메뉴였다.
돈이 없어 가게 수리를 아내와 내가 직접 맡아야 했다. 미장 일만 해도 아내는 모래를 치고 나는 시멘트를 버무려서 쇠손으로 발랐다. 도배도 우리 부부가 대충 때웠다. 이웃들이 “이런 데서 전기세나 나오겠수?” 하고 동정을 표시했는데 알고 보면 동정이 아니라 큰 식당을 지닌 업주들의 업신여김이었다.
1984. 4. 18
태호의 구속 통지를 받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진 군과 두 놈이 차를 훔쳐 타고 금강 유역을 여행하다 장항 부둣가에 있는 임검소에서 불심검문에 걸렸다는 것이다.
장사 때문에 아내는 동행할 수 없어 나 혼자 장항선 특급열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먹구름에 얼룩진 달빛을 바라본다. 밤늦게 서천역에 내려 경찰서를 물으니 장항에 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장항으로 달렸다. 해변에는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다. 밤이 늦어 여관을 찾았다. 억지로 취하고 싶어 가게에서 맥주를 샀다. 이튿날 면회를 신청했다. 죄수를 다루며 살아온 내가 내 자식을 면회 오다니. 철조망으로 가려진 빠끔한 창을 사이하여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 죄송해요. 이게 제 모습에요. 참으려 했는데 사채놀이로 배를 채운 놈들이 제 돈을(운전 품삯) 떼어먹으려 하고 경험 부족이라고 잘 안 써줘서. 집에 가봤더니 조그마한 가게를 수리한다고 모래와 벽돌을 쌓아둔 꼴이 처량해서..... 우리 집이 제일 정직하게 살아요. 아버지가 정직하게 사시는 걸 보면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하며 태호는 눈물을 펑펑 쏟는다.
“네 말은 옳다. 하지만 인간사는 그게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석가님 같은 분이 계신 거다. 네 품삯을 가로챈 그들도 나쁜 짓인 줄 알며 그러는 것이다. 다만 그네들은 법을 피한 것뿐이다.”
나는 내 아들이 <죄와 벌>의 라스코르니코프로 보였다. 그놈을 품에 안아주고 싶었지만 철조망이 가로 놓였다. 하지만 주의는 줘야 했다.
“내 아들은 다른 저 사람들과 다르다. 내 아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태호는 수감자들 중에 사연이 동정할만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리도 애비의 심성과 똑같단 말인가.
“하지만 알고 죄를 저지른 것과 맹목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태호가 그네들과 다르다는 걸 자꾸 강조해주었다. 그놈은 변호사도 사지 말고 1년 2개월이면 나갈 수 있다며 애비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애쓴다. 차라리 여기에 들어와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가슴이 쓰렸다. 제깐에 능력 있는 자식이 돼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이젠 자신이 없어요.” 나는 그 말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몰라 망설였다. 군대에 들어온 셈 치고 규정을 따르고 솔선해서 모범수가 되라고 당부했다. 가출을 포함하여 그놈의 튀는 행동은 그놈의 문학성文學性 때문이다.
“아버지 그만 올라가세요.”
“오냐, 늘 엄마 아빠를 생각해라.”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바닷가에서 허둥대다가 군산행 배를 탔다. 뱃머리에 서서 몰래 눈물을 쏟는 동안 어느새 배가 선창가에 멈춘다. 노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도로 그 배에 올라 장항으로 돌아왔다. 조사계장에게 전화를 걸려고 임검소에 들르니 마침 태호를 검문했다는 박 순경을 만났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맘이 착잡하군요.” 한다. 나는 되레 그를 위로해주며 담배를 사주고, 우리 애를 유치장으로 찾아가 위로해주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렇게 하는 데는 태호가 경찰관을, 즉 법을 신뢰하고 죄를 싫어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조사계 직원들과 점심을 하면서도 내 아들의 착함을 이야기하니 그들도 알고 있다며 전직인 나를 공손히 예우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혹 집행유예가 가능할지 몰라요.”
직원의 말이었다. 하지만 태호 혼자가 아니라 공범이 있고 더구나 진 군은 전과자여서 걱정이었다. 다시 조사계에 들르니 애들 둘이 나와 있었다. 내게 배려해준 셈이다. 계장이 직접 우리 부자를 따로 만나게 해주었다. 고맙다. 나는 태호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저런 친구를 상대하지 마라.”
“예.”
“너는 엄마와 동생과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예.”
다시 태호를 껴안고 얼굴을 부볐다. 모래 홍성으로 압송한다는 계장 말을 들으며 직원들과 악수하고 나올 때 진 군을 바라보았다. “이런 고생 싫으면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말라.”
집에 돌아와 검사 앞으로 편지를 썼다.
1984. 5. 1
오늘이 춘천옥 개업 날이다. 조촐한 개업식이다. 연락할 친척이나 친구도 없고 건물주인과 거래하던 쌀집과 이웃 가게 서너 군데만 연락하고, 시루떡을 해서 손님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달간 계속 보쌈과 막국수를 어떻게 맛을 낼지 고민하고 연습해왔다. 막국수에는 전분을 더 넣어보고 보쌈고기는 보드랍고 맛있는 항정살로 결정했다. 이익을 무시하고 비게는 발라냈다. 참기름도 최고품을 쓰고 고춧가루도 태양초에 호고추를 배합했다. 비율에 신경을 썼다. 아내의 음식솜씨가 대단했다.
나는 음식을 나르면서 손님들의 반응에 촉각을 세웠다. 금방 좌석마다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맛있는데?”
“손님 끌겠어.”
“히트 치겠는데?”
하지만 내 귀에는 인사치레로만 들렸다. 아니, 그렇게 해석하려고 애썼다. 자만심은 패배의 요인이 된다.
첫 날 매상은 10만 원 정도지만 인사 상 팔아준 손님이 있을 성싶어 매상을 7만 원으로 줄여 게산했다.
1984. 5. 2
오늘 매상은 12만 원이었다. 보쌈과 막국수 단일 메뉴로 시작했는데도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높았다. 아내와 순애와 셋이 시작했지만 어서 종업원을 채용해야겠다.
1984. 5. 7
개업 1주일 만에 하루 매상이 40만 원을 넘었다. 홀에 손님이 미어터진다.
어머니는 생시에 늘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죽어야 팔자가 펴. 네 나이가 사십을 넘을 팅게.”
정말 내 팔자가 피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조화속일까? 운명의 오묘한 운행에 덜컥 겁이 난다.
1984. 6. 14
오늘은 80만 원을 넘었다. 종업원 5명을 더 채용했다.
1984. 6. 22
처음으로 자가용을 샀다. 찻값, 세금, 보험까지 600만 원을 썼다. 현대자동차 신형 포니 2.
부천 상가에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중학생 둘을 치었다. 그들이 자전거를 타고 경사진 도로를 내려오다 내 차를 받았지만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차와 부딪쳤으니 내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4주와 6주의 진단이 나왔다. 보험에 들었어도 80만 원을 배상했다.
1984. 8. 18
태호 사건은 홍성에서 항소하는 바람에 대전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대전교도소로 면회를 갔다. 아내가 변호사도 선임했다. 우선 100만 원을 지불했다. 아내와 밤에 대청땜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다가 너무 피곤해서 수원 공원에 차를 세우고 잤다. 한밤중에 도둑이 반쯤 열린 차창으로 내 바지를 훔쳐갔다. 다행히 지갑을 숨겨둔 바람에 신분증과 돈은 무사했지만 팬티만 입고 운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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