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사랑과 야망> 춘천옥에서 수개월간 촬영
1987. 2. 2
오 장엄함이여! 신의 현묘함이여! 곱게곱게 짙푸른 북극하늘이여! 구름바다 위에는 오렌지색 노을이 번져 간다. 그냥 뛰어내려 영원한 감미로움 속에 묻히고 싶다. 허허한 공간 속에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 북극의 밤이다. 아아 나는 왜 먼 곳만을 좋아할까? 비행기는 어둠 쪽으로 향하고 노을은 그 뒤를 따른다. 아니, 저건 빙하인지도 모른다. 8시간 비행의 중간쯤이면 북극권일 수도 있다. 스튜어디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은데 위치란 낱말을 몰라 지도를 펴 보이며, Where is this point now? 하고 물어보았다. 일본인 여자 스튜어디스가 손가락으로 그린란드 쪽을 짚어준다. 드디어 어스름 속에 산맥이 나타난다. 험한 산협이다.
1987. 2. 3
오전 9시. 운해의 상공. 아류산열도 근처를 지나고 있다. 나에게는 혁명적인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여기저기에서 신을 보았던 것이다. 도대체 내 고통론苦痛論은 무엇이란 말인가?
14시 45분. 일본 나리타 공항을 출발 드디어 귀국길에 올랐다.
1987. 11. 20
사회활동에서 헤어나려고 해도 사업을 하고 있으니 무척 힘들었다. 중앙당, 서울시, 경찰분야의 고문, 자문위원, 회장 등 감투가 12개나 된다. 이틀이 멀다 하고 모임이 생겨 내 생활이 엉망이다. 중병에 걸렸다고 꾀를 부렸다. 3개월 동안 문호리에서 숨어 지내다가 업소에 나타나니 모두 몸이 어떠시냐고 야단이다. 계속 치료 핑계를 대고 숨어 지낼 작정이다.
1987. 11. 29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으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는데 폭파범 김현희는 자살방지를 위해 입이 봉합된 채 김포공항으로 압송되었다. 북한 공작원인 그녀는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으로 훗날 대한민국에 귀화했다.
1987. 12. 6
우리 춘천옥에서 수개월 동안 촬영해 온 김수현 작 <사랑과 야망>이 대 히트를 쳤다. 시청률 76%의 경이적인 인기드라마였다. MBC에서 1년 동안 일일연속극으로 방영할 때는 도로에 차가 뜸할 정도였다. 촬영이 끝나자 MBC에서 고맙다며 선물로 신형 TV를 가져왔다. 촬영 중에는 주연인 이덕화, 김청을 비롯하여 김용림, 차화연, 노주현, 남능미 등을 보려는 구경꾼들과 점심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거렸는데 벽에 붙은 보쌈 막국수 메뉴판은 모두 ‘설렁탕’ 메뉴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비 오는 장면을 찍을 때는 살수차에서 뿌리는 비에 손님들은 옷을 적기도 했다. 촬영시간이 대개 점심시간 전이어서 주방 장면을 찍을 때는 점심장사를 준비하는 춘천옥 직원들이 엑스트라 대신 가운을 입고 대역을 맡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광산김 씨 김용림과만 안면을 트고 지냈는데 그만큼 문인다운 내 자의식이 강했던 것이다. 주연급과도 인사를 안 트고 지냈다. 문학을 너무 신성시한 탓이다.
태호가 500만 원을 내놓으라며 애비 차를 몰고 사라졌다.
1987. 12. 21
스페인 여자를 껴안은 죄로 아내에게 선물할 100만 원짜리 다이야몬드를 도둑맞았다. 달뜬 내 정신을 진정시켜주는 약으로 생각해야겠다. 내 여행을 값지게 다져주려는 자상한 보살핌으로 여겨야겠다. 테레사 수녀가 어머니를 여의고 마돈나(마리아) 상 앞에서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기도한 곳에서 “신이시여! 나의 길을 가르쳐주소서!” 하고 묵념했다. 아내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아내사랑을 새삼 깨달았다.
1988. 1. 1
미하일 고르바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주도 아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착수했다. 그 바람에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14국이 독립하게 되었다.
1988. 1. 31
1월 8일부터 19일까지 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마카오, 대만을 여행했다. 특히 발리 관광이 좋았다. 숙명여대 이경숙 교수(훗날 숙대 총장)와 그녀의 남편인 고려대 교수 등과 어울려 분위기가 좋았다. 숙대 학장인 그녀는 매우 자상했다.
그냥 소설 쓰는 얘기만 하며 살자. 심각한 얘기는 하지 말자.
요즘 ‘권위주의 청산’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노태우 정권이 만들어낸 말이다.
1988. 2. 15
2박 3일로 아내와 제주도에 다녀왔다. 동남아 여행이 미안해서 갑자기 가자고 했다. 제주도는 처음이다. KAL호텔에 묵었다.
종업원들을 사랑한다. 그들에게 더 주고 싶어 보너스와 생일잔치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춘천옥 입사 기념으로 은수저 한 벌씩을 선물하고 회식을 베풀었다. 직원 숫자가 많아 자주 회식을 열어주곤 했다.
1988. 3. 13
늦게나마, 그리고 초라하나마 여수니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의 소원을 풀어준 셈이다. 김씨네에서는 한 사람도 초대하지 않고 여씨네에서 여자 형제들만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 예식은 양구에 있는 허술한 절에서 치르고 자가용 3대로 분승해서 한계령에 다녀왔다.
구원이란 초월성을 갖지 못하면 문학은 세속적인 대중문화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게 내 지조다.
‘문제적 자아’로서의 작중인물은 훼손된 가치체계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다가 패배하고 만다는 게 루카치 소설의 요체인데 지금의 내 순결성은 패배하게 마련이다.
나는 위가 나빠 약으로 산다. 죽어도 아무 미련 없다.
1988. 5. 24
서울음대 교수 부인 옥희 씨가 여류 작가들과 내 생일 화환과 케잌을 사들고 고천 별장으로 찾아와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나는 그녀와 유현목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 변인식 씨와 넷이 소형 영화사 운영을 의논한 바 있었다.
1988. 9. 17
11시.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다. 160개국 13000명 참가했다. 그동안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던 중국과 소련에서도 참가했는데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참가 숫자였다.
몇 달 후면 나는 50살이 된다. 나는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와 30대와 40대를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들과 먹고사는 기초생활에 매달려왔다. 남들은 창작과 문학생활 체험에 몰두할 시기를 그대로 썩혀온 셈이다. 모질고 억울하다. 그처럼 배움에 목말라 몸부림쳐왔건만!
1988. 10. 2
순애가 시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용산고 동창 이무근 교수가 주례를 섰다. 잘 살게 해 줘야지. 정말 자식보다 몇 배 나은 처제다.
태호가 공부를 중단하고 불교 서적을 읽는다고.
1988. 11. 15
서울의 부촌으로 소문난 서초동에 집을 사서 이사했다. 집은 대지 83평짜리와 51평짜리 두 채인데 큰집은 살림집으로 쓰고 작은 집은 서재로 쓰기로 했다. (두 채를 팔고 양평으로 떠날 때는 평당 260만 원에 팔았는데 32년이 지난 지금은 평당 1억 5천만 원이라고 한다.)
모래부터 미국여행이 시작된다.
1989. 2. 6
구정 연휴다. 각 거래처에서 가지가지로 가져온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선물을 모두 종업원들에게 나눠주었다. 택시에 가득 채워질 만큼 푸짐했다. 보너스 봉투도 안겨주었다. 종업원들이 춘천옥 근무에 자부심이 느낄 만큼 대접했다.
올해부터는 무조건 소설 쓰기다.
유라가 상명여대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오늘 평창동 모교에서 열리는 입학식에 아내와 다녀왔다. 꽃다발을 안겨주니 부모 품속에 안긴다. 고생하며 자란 외동딸이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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