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 현장에서
1982. 1. 1
도가에는 현빈(玄牝)이 있었으니 그건 谷神이다.
요즘 다시 노장자서(노자와 장자의 저서), 공맹자서(공자와 맹자의 저서), 대학, 중용 등을 읽고 있다.
밤을 새우며 습작하고 읽는다. 태어나서 처음 행복감을 느낀다. 그토록 목매달던 공부가 아닌가!
1982. 3. 4
한국일보 문화센타 소설반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하루, 3개월 동안 40000원. 서울대 전광용 교수가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그의 대표작『꺼삐딴 리』는 일제강점 말기와 50년대의 기회주의적인 풍토와 지도층 인사들의 반민족 행위를 비판한 작품이다.
나는 옛날부터 不朽(불후)란 낱말을 좋아했다. 일기장 첫머리에도 <불후不朽의 체험창조體驗創造>라고 썼던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표현의 욕망을 지닌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알랙산더 대왕은 거지의 아들로 태어났어도 위대한 일을 했을 거”라는 토인비의 말에 부끄러울 뿐이다.
1982. 6. 10
어머니가 부여에서 돌아가셨다. 3일간 식사를 못하시다가 “나 먹기 싫어.”란 말을 남기신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밤 10시에 연락을 받고 급히 아내와 내려갔다. 태호는 가출 중이라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그토록 사랑한 손자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다니.
새벽 조용한 시간에 혼자 촛불이 켜진 안방에 들어가 어머니의 차디찬 시신을 안고 얼굴을 부비며 통곡했다.
“나도 엄마 곁에 갈 거요. 엄마 먼저 가 계세요. 내 불효를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내 불효는 불효가 아니란 걸 엄마도 알겠지? 나 같은 효자가 어딨어 엄마.”
고깃국 한 그릇 제대로 못 드린 죄. 하지만 불효가 아닌 지독한 가난 탓이었다. 이제 남은 건 내가 부모님 곁으로 가는 일뿐이다. 울고 또 울었다. 염이 끝나 입관 후에도 관을 껴안고 얼마나 울었던가. 밤에는 시신이 모셔진 어머니 관 곁에서 혼자 잤다. 무섬기가 정을 떼는 징조라 했지만 나는 어머니와 멀어지기 싫어 일부러 그 무섬기를 다독거렸다.
1982. 6. 12
장례식 날이다. 충화 청등산에 모시기로 했다. 지관은 명당자리라고 한다. 동해안에 계신 아버지 산소를 합장할 생각이었다. 염할 때 들은 목사님의 말이 반갑다. 엄마의 시신이 부드러운 건 천당에 가셔서 그런단다. 누나가 권사여서 염, 발인 모두 목사님이 기독교식으로 치렀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상여를 따르며 울고 또 울었다. 영구차에서 장지까지도 상여로 모셨다. 비용은 150만 원이 넘었지만 더 쓰고 싶었다. 비참한 가난 때문에 생전에 제대로 모시지 못한 한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서울에 돌아와 어머니 아버지 사진을 챙겼다. 사진을 볼수록 눈물이 흘렀다.
1982. 10. 18
유라가 아빠한테 혈액형을 묻는다. B형이라고 했더니 엄마한테도 묻는다. AB라고 하니까
“B형은 상상력이 풍부하데.” 한다. 제까짓 게 상상력이란 단어 뜻을 알까? 하기야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갈 테니 알만도 하다. 풍부한 상상력, 사실 그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상력은 잘못 길들이면 우직함만도 못하다.
1983. 1. 1
처음 두 분을 모시는 설 차례상이다. 제사를 지내고 나자 상머리에 모셔진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보며 유라가 떠든다.
“아빠와 오빠는 할아버지를 닮았어. 내 코는 할머니를 닮았구, 그래서 나는 들창코야.”
절을 마친 아내가 말한다.
“두 분이 하도 멀리 떨어져 계셔 (강릉과 부여) 서울에서 만나셨을 거라구.”
명절에 <타워링>, <왕중왕>, <사운드오브뮤직>을 연속해서 감상했다.
나는 유라의 마지막 이빨을 금반지 캡에 넣어두었다.
1983. 7. 1
식당 홀에서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려는데 한 곳에 두 마리가 엉겨있다. 그런데 또 한 마리가 거기로 접근해와 어울렸다. 기왕이면 3마리를 한 번에 잡으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한 마리가 날아가버리고 엉겨 있던 1마리도 날아가고 나머지 한 마리도 사라졌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셈이다. 과욕 탓이다.
1983. 7. 25.
태호 마음을 돌리려고 둘이서 배낭을 메고 피서를 다녀왔다. 불경기 탓에 장사도 안 되고 올여름에는 온 식구가 피서로 즐기고 싶다. 우선 차비가 적게 드는 을왕리 섬을 가봐서 마음에 들면 온 가족이 함께 갈 작정이다.
새로 장만한 텐트를 치고 부자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태호가 저녁 늦게까지 잡아온 소라로 된장국을 끓였다. 이튿날은 태호만 서울로 보내서 엄마와 유라와 이모를 모셔오도록 할까 했는데 비가 와서 포기했다. 파도가 높아서 배를 타는 기분이 좋았다. 태호가 굴을 까서 아빠 입에 넣어준다. 모처럼 효도를 받아보는 셈이다.
1983. 7. 27
태호가 혈서로 ‘아버지!’를 써놓고 집을 나갔다. 책상 위에 놓인 메모를 읽어보았다.
“오랜 생각 끝에 결심했으니 부디 용서를 빕니다. 불효자로부터.”
도대체 “오랜 생각”이란 무슨 생각이냐? 네놈은 애비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느냐? 애비가 사는 목적의 하나가 바로 네가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인데, 그래서 애비의 피맺힌 한을 이야기했고 그 한을 네가 풀어주기를 바랐던 애비의 꿈이 너무 지나쳤다는 말이냐? 동해변에 외로히 묻혀계신 할아버지의 유언도 “태호를 잘 키워라” 였는데 네놈이 이다지도 애비를 괴롭힌단 말이냐! 내 속 알맹이가 모두 빠져나간 기분이구나. 책가방을 들고 나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1983. 9. 19
기어이 식당을 팔았다. 아내는 5개월째 주사를 맞고 순애는 다른 데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도저히 종업원만 데리고는 지탱할 수 없었다.
부천 상가를 7000만 원에 팔았다.
KBS에서 방영하는 이산가족찾기 시간마다 눈물을 흘린다. 우는 게 신난다. 가상의 부모, 가상의 아내, 가상의 자식, 가상의 형제를 찾는 것이다.
1983. 9. 30
어제 오후 6시에 김포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 여객기가 12시 반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6시간의 시차로 이스탄불은 밤 12시경이었다. 새벽 5시 50분 AKUN 호텔에서 아내와 깬 잠을 다독이고 있는데 알라신에 대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TV에서 봤던 대로 높은 옥상 같은 데서 읊겠지. 커튼을 열고 보니 40명이 넘는 인원이라 복잡할 게 뻔했다. 대충 아는 작가로는 이문구, 유재용, 신달자 등이다. 나는 등단 전이지만 이미 지성적인 문인들과 어울렸던 것이다. 문인들도 나를 기성 작가처럼 대해주었다. 모두 7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었다.
1983. 10. 1
오늘은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를 관광했다. 시대별로 흥망성쇠의 층계를 이룬 발굴 현장 모습이 충격을 주었다. 그 지난 세월의 흔적에서 또 내 허무가 꿈틀거렸다. 오전 내내 트로이를 답사하고 에베소로 향했다. 에베소는 로마시대의 생활모습과 기독교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가슴을 설레게 했다.
1983. 11. 1
태호가 나 몰래 집에 들렀는데 과일과 켄터키치킨을 사왔다고 한다. 공장에 다니느라 손이 텄더란다. 친구 때문에 고교를 단 하루밖에 다니지 못한 자식의 앞길이 걱정이다.
1983. 12. 18
오늘 용진회가 양수리 멧돼지집에서 만나는 날이다.
선적감정禪的感情과 절대자유絶對自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죽음은 인생의 영원한 풍자諷刺란 생각이 들었다.
“이론보다는 배짱, 사색보다는 행동.”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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