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12회)

충남시대 2026. 4. 21. 13:35

잔아(김용만) 소설가

세계적인 공연자들이 즐기는 시골 공연

2003. 3. 19

  서종면사무소 2층에서 아일랜드 클래식 팀이 와 연주했다. 세종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초청한 여러 공연팀이 매월 서종에 찾아와 여는 행사지만 귀한 연주회였다. 
  한택수 군수가 우리 집에 찾아와 함께 참석하자며 면사무소 2층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청중으로 꽉 찬 연주회장 복판에 춘천에 사는 이외수(李外秀) 소설가의 얼굴이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나는 이외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도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아아, 여기가 형님네 동네죠?”
  십여 년 전 우리 부부를 춘천 자기네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아내끼리는 중학 동창이라 더욱 가까운 사이였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연주팀과 하객 40여 명이 두부탕으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흥이 오른 아일랜드 팀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회식이 끝나자 이외수 소설가가 술을 더 마시자고 했다. 그래서 민정기 화백 부부, 황명걸 시인, 이동표 미술협회장, 연주회 기획자인 이철순 기획실장(훗날 양평미술관장)과 함께 술집에 가려고 하는데, 이외수가 기왕이면 형님네 집에서 모이자고 한다. 양평 <열림터> 회원까지 합쳐 열댓 명이 우리 집으로 갔다.   
  2층 내 서재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이외수는 신이 나서 그의 문하생에게 노래를 시켰다. 가사는 이외수가 썼다고 한다. 새벽 2시 경에야 헤어졌는데 이외수와 그들 일행(남녀 학생 3명)은 새벽 4시경에야 떠났다.

2003. 3. 22

  오후에 <중앙일보> 문화부장이 이종주를 데리고 왔다. 그는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다시 꾸리기로 했다며 죽은 이문구 작가(보령시에 기념관) 대신 김주영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집에서 창작교실을 5월부터 시작하겠다고도 한다. 나는 소설만 쓰겠다며 단체 행동에 소극적이었다.   

  춘천 이외수 작가의 ‘철가방 팀’을 불러 마당에서 공연하자고 했지만 시끄러워 유보시켰다. 

2003. 3. 24

  며칠 전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찾아와 <시사랑문화인협의회> 이사 자리를 부탁했다. 나는 쾌히 승낙했는데 오늘이 첫 모임이다.
  TOWER호텔에서 아침 7시 반에 만나기로 해서 일찍 출발했다. 노무현 정부의 민주당 사무총장 이상수 의원을 비롯하여 신달자 시인, 조정권 시인 등과 여러 교수들이 참석했다.

2003. 4. 13

  어제부터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 사단법인 통일문화연구원, 한국문예창작학회, 속초시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에술진흥원, 사단법인 평생교육진흥연구회, 속초예총이 후원하는 제1회 바다문학기행. 통일문학기행이 1박2일로 이루어졌다. 게스트로는 황동규 시인이었다. 숙소에서 밤에 이경철, 박덕규, 이종주,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 이허와 처음으로 ‘잔아문학’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다. 

  통일전망대를 지나 바로 DMZ에까지 들어가서 장교(중령)의 브리핑을 들었다. 금강산육로관광을 위한 도로개설 작업이 바닷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지척에 북측 관망대가 보였다.  

2003. 4. 20

  용산 국방회관에서 김재홍 교수의 아들 결혼식이 있어 참석했다. 경희대 식구들이 많이 참석했다. 서울대 장경렬 교수가 나를 보자 무척 반가워하며 주소를 써준다.
  최동호 교수와 둘이 타워호텔로 돌아와 차를 마시며 문단 세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집 거실이 황순원 ‘소나기마을’ 산실이었다. 내가 경희대 측을 책임진 셈이다. 훗날 계획이 통과되자 낯모르는 식당과 주유소 사장 등이 내게 유치해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2003. 4. 28

  4박 5일로 소설가 22명이 하와이에 다녀왔다. 마침 내『늰 내 각시더』재판으로 <문화일보>에 1면 전체로 보도가 되는 바람에 내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맨 처음에는 초록여행사 김 사장이 이번 여행팀 중에 특집으로 보도된 작가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문화일보>를 사봤는데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신문을 꺼냈던 것이다. 또 비행기 안에서 <문화일보>를 보던 일행도 내 특집보도를 보고 여기저기서 축하를 해주었다. 
  귀국할 때는 또 <조선일보>에 박스기사가 실려 일행 중 김송배, 김지연 등이 먼저 발견하고 내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와이에서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도 사회자가 나에 대한 특집보도를 소개하는 바람에 LA에서 온 문인들도 알게 되었다.
  
  하와이를 일주하고 이튿날 마우이로 옵션 여행을 떠났다. 28불이다. 너무 황홀한 여행이었다. 화산과 은검초의 신비함에 몸이 떨린다. 꼭 다시 와봐야겠다. 햇살에 반짝이는 고슴도치처럼 생긴 은빛 가시꽃! 그것은 저승에서나 피었음직한 환상의 꽃이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는 내가 <현대문학>에 발표한「팔라니트」와 같은 색깔의 보라색 꽃인 자크란타를 보고 흥분했다.

2003. 5. 2

  동국대 대학원생들 20여 명이 장영우 교수 인솔로 방문했다. 저녁을 먹으러 장 교수를 데리고 아내와 셋이 쌈밥집을 갔다. 학생들은 공부방에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차려먹을 것이다.

2003. 5. 4
  
  군출신 동창들이 찾아왔다. 육군 사단장을 지낸 김성직 소장, 해군 목포해군기지 사령관을 지낸 이기정 제독, 공군 사천비행단장을 지낸 손덕규 준장(손학규 경기지사 친형)과 HID대장을 지낸 이성렬 대령 등 7명이었다. 온종일 내 서재와 정원 등에서 놀다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20003. 5. 10

  어제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가칭)의 발기인 격인 인사들로 단국대 박덕규 교수, 저작권 심의위원회 이호흥 박사, 문화관광부 이 서기관, 불교방송 장대송 PD,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팀장, <중앙일보> 문화부장 등 쟁쟁한 젊은 팀이 우리 집에서 모였다. 2시간 가까이 회의가 진행되었다. 공식 명칭은 <제3차 소위원회 회의 자료 및 워크샵>이고 장소는 서종면 문호리 잔아(김용만) 선생댁으로 되어 있었다. 보고사항으로는 제1회 바다문학기행, 문학음악축제지원(남이섬), 바다문학기행(거제도). 논의사항으로는 명칭 건에서 그전대로 하되 약칭으로 문학사랑으로 정했으며, 사단법인 설립 추진 건이 있었다.
   
  2003. 5. 12

  혼자 작품을 쓰고 있는데 <문화일보> 김영번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휴전협정 50주년, 월드컵 1주년을 맞아 <문화일보>에서 6, 7월 반전평화운동 차원에서 문화(문학, 미술, 음악 등) 캠페인을 벌이는데, 꽁트를 연재 시작하겠다며 나보고 이달 26일까지 꽁트를 써달라고 한다. 주제는 60년대 후반의 DMZ(해안선 철조망 포함)에 얽힌 내용이라고 했다. 아마 내 체험담을 요구한 모양이었다.

2003. 5. 13

  부여군민회 이만용 회장이 찾아왔다. 기사는 밖에 세워둔 채 혼자 안에 들어왔다. 2층 서재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김종필 총재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내비쳤다. 나는 고향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어릴 때 떠나와, 더구나 비참한 환경 때문에 잊어온 고향인데 수구초심이랄까, 나이를 먹고 보니 고향 생각이 나요. 회장님과도 구체적인 이야기 거리가 없으면서 만나고 싶었어요.”
  내 말에 그는 너무 영광스런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마곡사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더니 그 역시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나는 책에 사인을 해서 주었다. 그는『부여로 가는 길』을 쓰시면 대대적으로 선전하겠다고 한다.

2003. 5. 19

  오후에 탈랜트 주연 부부가 놀러와 차를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인이 국문과 출신이어서 문학이야기가 통했다. 

2003. 5. 26

  KBS 라디오에서 1시간짜리 녹화를 했다. 내게도 극본이 주어져 미리 읽어보았다. 내 단편「은장도」를 극화해서 50여 분간 성우들이 극을 꾸미고 나중에 문학평론가와 대담하게 되어 있었다. 12명의 성우들이 나오고 해설하는 고참 여성이 나왔는데 송두문 역할을 맡은 남자 성우의 이북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내가 쓴 대화체와 지문(해설)을 연출할 때 뭉클한 감동이 느껴졌다. 
  며칠 전이었다. PD 박기완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는데 내 작품「은장도」를 방송하겠으니 양해하고 출연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극으로 꾸미고(김민정 극본, 박기완 연출) 대담 평론가는 동국대 김선학 교수라고 했다.

2003. 6. 1

  오늘이 내 방송이 나가는 날인데 깜빡 잊고 듣지 못했다. 유라한테 녹화하라고 시켰는데 그년도 잊었다고 한다. 아내는 양구 동창모임에 가고 없었다. 가족은 아무도 내 방송에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