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 잔아(김용만)의 장편소설] 제 3회 아내 찾아 90000리

충남시대 2022. 8. 9. 15:55

 “내가 맡지.”
  손을 내밀자 추 형사는 맨입으로는 안 된다며 조건을 걸었다.
  “막걸리 한 되 값이면 되겠어?”
  “막걸리 한 되면 오백 원인데, 좋아. 가난뱅이 짜봤자 똥뿐이 안 나올 테니. 그 대신 망신당하지 말라구.” 
  조심해서 처리하라며 추 형사가 서류를 넘겨주었다. 본적, 전주소, 현주소, 생년월일, 학력, 경력 등 인적사항은 물론 가족사항, 재산관계, 성분, 성격, 심지어 형액형까지 적혀 있으니 그 공문서는 중매쟁이나 다름없었다.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군청 내무괍니다.”
  “여긴 양구서 정보관데, 여수니씨 부탁합니다.”
  “제가 여수닌데요.”
  “신원조회가 나와서.....”
  “네, 네,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하다뇨?”
  말을 좀 삐딱하게 받아보았다. 인생 풋내기여서 정보과니 신원조회니 하는 말에 목소리부터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네, 네, 전화 주신 게 고마워서요.”
  “고마울 건 없소. 내 업무니까.”
  “지금 찾아뵐까요?”
  “그러면 좋지.”
  이십 분쯤 지났을까, 수박색 투피스에 까만 롱부츠 차림의 아가씨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잔뜩 멋을 부린 모양인데 촌티가 역력했다. 
  “거기 앉아요.” 
  아가씨를 책상 앞 나무의자에 앉힌 다음 그녀가 내 머리 가르마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몸을 비스듬히 틀어 앉았다. 내 왼쪽 머리 가르마가 미국 영화배우 케리그란드의 가르마를 빼다박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터라, 그녀에게 매력포인트를 보이고 싶어서였다.
  “이름은?”
  “여수니.”
  “생년월일?”
  “거기에 적혔을 걸요?”
  “여기에 적힌 걸 누가 몰라서 그래?”
  살짝 겁을 주었다. 내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담당자의 의견 기재란에 자칫 용공(容共)에 대한 냄새라도 피우는 날이면 공무원 임용은 물 건너간 꼴이 된다. 친인척의 부역사실도 조사 대상이어서 한 마디만 잘못 쓰면 밥줄이 끊어진다는 말이다. 생년월일을 묻고 나서 이번에는 아버지 직업을 물었다.
  “정미소를 운영하세요.”
  “어머니는?”
  “집안에서 살림만하시죠.”
  “가정주부라고 간첩 아니란 법 있어?”
  “어머.”
  “농담요. 아가씨가 너무 착해보여서.... 너무 착하면 바보스럽거든.”
  “형사님은 농담을 좋아하시나봐요.”
  “내가 바보여서 하는 소리오.”
  수니가 상냥하게 웃었다. 뭐니뭐니 해도 여자의 순박한 미소가 가장 큰 빽이다. 사내는 여자의 순박한 매력에 맥을 못 춘다. 나처럼 닳고닳은 데다 세상사에 지치고 지친 사람한테는 그런 촌스러움이 가장 효험 있는 약이다.
  “오빠는 초등학교 선생이고, 언니가 둘, 여동생이 넷. 딸부자네.”
  신원조회서의 가족 란을 훑어본 나는 사환을 불러 다방에 커피 주문을 시켰다. 이런 대민관계는 처음이었다. 언제나 저쪽의 대접을 받게 마련인데 이쪽에서 대접을 하다니. 
  “아직 때 묻지 않은 분이라, 되도록 좋게 썼소.”
  볼펜을 내려놓으며 슬며시 수니의 마음을 건드려보았다.
  “고마워요.”
  수니가 연방 머리를 주억거렸다. 나는 그 뻔한 인사치례에 마음이 허전했다. 참 묘한 인연이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동안 숱한 요조숙녀를 다뤄봤지만 지금처럼 첫눈에 반하기는 처음이었다. 비록 가난한 홀아비 신세라 해도 여자에 대한 눈높이는 어느 남자보다 높았다. 그러니 웬만한 미모나 웬만한 재기가 아니면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촌뜨기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날이 갈수록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업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애간장만 녹았다. 짙은 화장으로 곰보를 지웠을지 몰라, 절벽가슴에 뽕을 넣었을지 몰라, 겉은 착한 것 같지만 속은 시커멀지 몰라, 그런 식으로 수니를 폄하해 봐도 그럴수록 내 마음은 악착같이 그녀에게 매달렸다.
  “내가 실수한 모양이네. 자네한테 신원조회서를 넘겨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추 형사가 내 넋 빠진 꼴을 걱정했다. 
  “뭔 소리야, 그 여자 잊은 지 오래됐어.”
  “잊은 것 좋아하네. 그래서 뻔질나게 군청 출입하나? 극장 임검도 도맡아보고?”
  “왜 또 속을 긁어대는 거야?”
  “하기야 극장에서 만나면 일 추기는 수월하겠지. 신세진 형사가 옆에 앉으라는데 함부로 거절하겠어? 컴컴한 극장에서 손 주무르며 속삭이면 작업이 빨라질 거구.”
  “애인이 있을 거야.”
  “어쭈, 나보고 애인이 있나 없나 수사해달라구?”
  “좁아터진 읍내서 수사고 자시고가 어딨어.”
  “그러니 맘 놓으라구. 아직은 없어 보이니까.”
  “정말로 없어?”
  “벌써 알아봤다니까.”
  “내 맘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한 달 내로 고민을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마.”
  나는 추 형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세상이 갑자기 아름다워 보였다.
  “무슨 수로?”
  “작전을 세워놨어.”
  “작전?”
  “육이오 전에는 여기가 북한땅이었잖아. 영감 서넛을 막걸리로 궈삶았더니 술술 나오더군.”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