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序曲)
그자가 수니 말고도 다른 여자를 상대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수니 같은 여자와 살면서 그따위 짓을 해? 사내라면 누구나 침 흘리게 마련인 수니가 평생 그런 놈과 살았다는 게 참 이상해. 더구나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다면서? 남들이 다 하는 결혼식인데 왜 쓸데없이 그런 짓을 하냐고 고집을 부렸대. 참 별난 놈이지. 수니는 면사포를 써보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을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내 묘한 구석이 있더라구.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가도 휴지처럼 던져버린다는 거야. 그런 인간이라 그런지 재산을 몽땅 아내에게 줘버렸다는군. 수니가 신을 거꾸로 신게 되면 불알만 남게 된대.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수니 혼자 다 챙겨도 아무 탈 없잖아. 남자만 알거지가 되는 거지.
수니가 그 맛에 붙어사는 것 아냐?
그건 아니래. 수니도 돈 문제만은 푼수래. 돈을 어디에 어떻게 버릴까, 그런 궁리에 빠져 산다는 거야. 그러니 그네들 부부생활은 연구 대상이라구. 그자는 수니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내 아내 수니는 내 생각을 이상하게 흔드는 여자다.
묘한 여자다. 이해할 수 없는 여자다.
하지만 남들은 수니를 보면 한 눈에 반해버린다.
너무 착하다. 너무 진실하다.
우아하다. 덕스럽다.
저절로 존경심이 든다.
함께 지내고 싶은 여자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자다.
맑은 미소, 맑은 목소리....
사실 그렇다. 아내를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환해진다. 아무리 유명한 명사라 해도, 아무리 힘 있는 권력자라 해도, 아무리 명석한 학자라 해도, 어느 사내든 아내 앞에 서면 오금이 저린다. 그런 아내에 비해 나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비쳤다. 내 목소리에는 먼지가 꼈다나? 어느 때는 노골적으로 징그럽다는 표현을 쓴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좋게 보는 여자도 많다. 고귀한 여성일수록 나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유명 여류화가는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과 사는 여자라면 천복을 타고난 거죠. 많은 여자들이 왜 선생님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첫째 착하고 자상하고요. 둘째 노력형인 데다 강인하고요. 셋째 지적이고요. 넷째 어린애처럼 순진하고요. 다섯째는 고생고생해서 모아놓은 재산을 모두 버리고 싶어하는 남자라 믿을 수 있고요.”
“또 없어요?”
“여섯째는.... 허무주의자고요.”
“허무주의자를 왜 좋아하는 거죠?”
“엉뚱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거든요. 비현실적이랄까, 비상식적이랄까, 그래서 선생님을 뇌섹남으로 부르는 여자도 있어요.”
이와 같이 나를 좋게 평가하는 여자들이 많지만 그런 여자들도 아내를 만나보면 나를 아내 밑에 깔아뭉개는 평가를 내린다. 여자는 화관(花冠)인데 그런 여자와 살고 있으니 내 매력도 그 화관의 찬란한 빛 속에 묻힌다는 말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내를 찾아 헤매야 하나? 왜 그런 아내에게서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를 캐기 위해 먼저 아내와의 참담했던 전쟁시절부터 폭로해보자.
아내와의 전쟁
참으로 지겨운 전쟁이었다. 기간으로 치자면 제1차세계대전이 4년, 제2차세계대전이 6년밖에 안 되지만, 우리 부부의 전쟁은 자그마치 45년이나 지속되었다. 그것도 동거하고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이니, 전쟁이 끝나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종합검진 결과를 보면 나는 건강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스무 살쯤 젊은 건강상태여서 아직 살날이 창창한데다, 아내 역시 갑상선과 혈압에 하자가 있긴 해도 나보다 열 살이나 어려서 종전은 멀기만 하다. 그럼 휴전이 가능하냐면 그건 눈곱만치도 기대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 부부는 심성이 다르고 사물에 대한 인식차원이 다르다.
전쟁의 양태도 시기에 따라 달랐다. 초반전에는 적을 약올리는 정도에 그쳤고, 중반전에서는 적에게 마음의 상처를 내는 정도로 조심스런 싸움이었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터졌다 하면 육박전이었다. 전쟁터는 거실, 안방, 주방을 가리지 않지만 대회전은 거실에서 치러지게 마련이다. 무기는 주로 베개, 책, 손톱 등을 사용하다가 전세가 점점 치열해지면 티브이 리모컨, 씨디 케이스, 이쑤시개통, 전화기 등으로 발전하고, 육박전이 터지면 눈에 띄는 모든 것, 일테면 커핏잔, 과일접시, 의자, 화분, 복사기, 오디오, 컴퓨터, 액자, 조각품, 도자기, 심지어 전기밥통이나 식칼까지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원자폭탄 격인 식칼은 주로 아내가 사용하는데, 평소에는 나보다 얌전하고 참을성 많은 아내지만 눈이 뒤집힐 정도가 되면 사정없이 장롱이나 방문짝을 찍었다.
재산 피해도 엄청나다. 몇 백 만원 피해는 속출하고 천만원대의 피해가 발생할 때도 있다. 한 번은 아내가 이천만 원이 넘는 농문을 부엌칼로 작살낸 적이 있다. 우리가 100만 원 보증금에 월세 10만 원짜리 단칸방살이 시절에는 평생 벌어도 모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액수였다. 그런 재물을 아내는 화났다 하면 애들 장난감 부수듯 거덜내곤 한다. 문짝만 해도 안방 문 하나만 찍으면 손해가 덜할 텐데 작은방, 서재, 드레스룸, 심지어 화장실까지 문짝마다 죄 찾아다니며 찍어댔다. 보통 문짝이 아니다. 평생 살 집이라고 비싼 캐나다 산 홍송목으로 짠 문짝이다. 그래도 화풀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만약 억대의 승용차가 집안에 있었다면 그것도 작살냈을 거란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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