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아내 찾아 90000리 (제21회)

충남시대 2022. 12. 1. 11:24

저는 착한 사람만 잡아먹어요


북적대는 피서객과는 달리 바다는 잔잔했다. 수니는 은영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혜미와 이야기를 나누던 김석이 불쑥 낯선 말을 꺼냈다. “진짜 사람 맞아?” 그 말에 혜미의 얼굴이 활짝 열렸다. 김석의 질문이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요. 저는 악마에요. 아버지를 닮은 거죠. 아버지는 악마였어요. 어머니가 천사여서 저는 사람의 탈을 썼을 뿐에요.” 
  “어쩐지 혜미의 몸에서 무섬기가 풍겨. 그런데 그 무섬기에서 신선한 생기가 느껴지거든.”
  “저도 선생님 부부를 뵈면 생기가 돌아요. 어떤 식으로든 두 분과 인연을 맺고 싶어요. 특히 사모님과는 헤어지기 싫어요. 남편에게 락스로 몸을 닦으라는 말에 매혹되었죠. 그처럼 도량이 넓으신 분과 알고지내는 건 대단한 홍복이죠.”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 혜미가 순결한 사람이라 아내도 그 순결성에 홀린 거라구.”
  그때였다. 은영의 손을 잡고 다가온 수니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혜미가 농조의 말로 수니에게 일러바쳤다.  
  “락스로 몸을 닦으라는 언니의 말에 선생님은 큰 상처를 입으셨대요.”
  그러자 수니는 남편에게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악마의 잔인성을 보여줘야 함부로 까불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수니가 무섭다며 몸을 피한 김석은 멀찍이 서서 혜미에게 물었다.
  “왜 착한 사람의 살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거지?” 
  “악마가 젤 싫어하는 냄새가 비린내거든요.” 
  “그렇다면 혜미가 착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말인데?”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어요?”
  “왜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거야?”
  “착한 사람은 다루기가 힘들어요. 착한 사람을 해치려면 악마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죠.”
  “혜미는 악마 중에서도 별종이군.”
  “아버지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죠. 너는 악마가 돼야 한다. 착하면 바보가 된다. 착하면 복 받는다는 말, 그건 말짱 거짓말이다. 야비가 판치는 세상인데 복은 무슨 얼어죽을 복이냐! 악마가 돼야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종교와 예술까지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악마가 되는 길뿐이다. 네가 지망하는 문학판만 해도 야비한 사이비 문인이 판치고 있는데 너 혼자 버틸 수 있겠니? 그 말씀이 늘 귀에 쟁쟁해요.”  
  “아버지는 지금 뭘 하시는데?”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아버지 말씀이 더욱 간절하겠군.”
  “아버지는 속이 깊으신 분이셨죠.”
  “아버지가 딸을 무척 사랑하셨나봐. 나도 은영이가 크면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그땐 야비한 자들이 더 극성을 부릴 텐데 정말 악마가 되지 않곤 견디기 힘들 거라구. 그런데 말야,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하기철 아나운서와 어울려 술을 마실 때 왜 혜미가 나한테 관심을 보였지?”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를 닮아보였거든요. 아버지는 진실을 캐려고 애쓰셨는데 선생님도 그런 분 같았어요.”
  “아버지의 정신을 물려받은 혜미가 자랑스럽군. 앞으로 작가생활을 하게 되면 야비에 대해 깊이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클 거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구. 삶을 통해서 무수히 겪어온 경험이고 체험이어서 공감할 텐데, 특히 야비한 자에게 당해본 사람들은 공감이 더 클 거라구. 야비는 인간세계에서 가장 해독을 끼치는 악 중의 악이지. 그런데도 그 야비한 자들에게 속아넘어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한심한 거구.” 
  김석의 말에 감동한 혜미는 옆에 수니가 있는 것도 잊은 채 김석의 몸을 덥석 껴안았다. 그 민망한 짓을 지켜본 수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을 반으로 쪼개 갖자구. 1그램도 오차 없이 잘 쪼개봐.”
  “어떻게 1그램도 오차 없이 쪼개죠? 언니가 뭉떵 잘라가시고 저는 쬐끔만 주세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처럼 너무 욕심 부렸다간 큰일 나요.”
  “쬐끔? 왜 그리 배짱이 없어. 남편을 양보해달라고 조를 땐 언제고?”
  “언니와 잘 지내려면 언니에게 더 많이 드려야죠. 그러니 저한테는 1키로만 떼어주세요. 선생님 몸무게가 60키로는 나가실 테니.”  
  그러자 이번에는 김석이 나섰다.
  “여보, 당신은 지금 혜미한테 속고 있어. 내 살에서 비린내가 난다는데 혜미가 내 몸을 욕심내겠어? 속으로는 1키로그램 받는 것도 싫어할 걸? 당신 같은 바보나 나를 욕심내지 누가 욕심내겠어.” 
  “어쭈, 내가 왜 당신을 욕심낸다는 거지? 나도 비린내 나는 당신을 1키로도 지니기 싫거든. 그래서 혜미에게 많이 떼주고 싶은 거야.”   
  “내 값이 왜 이리 폭락했지?”
  “비린내만 안 나면 비쌀 텐데 누가 착한 사람 되랬어?”
  “착해서 폭락했다? 기막힌 말이군.”
  “그러니 남들처럼 야비한 인간이 되어서 떵떵거리고 살란 말에요.”
  “야비는 구역질날 만큼 더러운데도?” 
  “세상이 그런 걸 혼자만 깨끗하게 살겠다구?”
  “왜 혼자야. 야비한 몇 놈이 구정물을 일으킬 뿐인데. 하긴 옛날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흐렸지만 지금은 연못을 흐리는 세상이라....”
  “때문에 그 구정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야. 당신도 그 구정물을 먹을 수밖에 없구. ”
  “무슨 대책이 없을까요? 인간도 자연처럼 자정능력이 있을까요?”
  혜미의 말이었다. 그 말을 김석이 받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진실은 영원할 거야. 그 희망적인 세상을 믿는 신념이 자정능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