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미는 악마일지 모른다
“참, 학교에서 애들 가르칠 때 과학을 맡았다지?”
“과학을 모독하지 마세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모독이라니?”
“왜 애정문제를 논하는데 학과목을 따지는 거에요?”
“아니, 과학을 먼저 꺼낸 게 누군데?”
“죄송해요. 제가 실언했네요. 선생님과 키스한 후로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꽤 받나봐요.”
“오늘 하루 스트레스도 풀고 즐겁게 보내자구.”
“그래요. 큰 성과도 올리고.”
성과란 말에 김석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모텔방에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 그 생각뿐이었다. 밤이 기다려졌다. 저 뽀얀 살결과 미끈한 몸매가 품속에서 꿈틀거릴 모습을 상상하며 김석은 미소를 지었다.
“뭘 상상하시길래 혼자 미소 짓는 거죠?”
“웃지도 못해? 찡그리고 있으란 말야?”
“미소에도 색깔이 있잖아요? 그냥 기분 좋아 웃는 색깔이 아니라 아주 음험한 웃음, 제 살결을 더듬는 듯한 그 징그러운 미소....”
“내 웃음이 징그럽다고? 물론 나도 남자라서 혜미의 아름다운 몸에 매력을 느끼겠지. 느끼지 못하면 그건 남자가 아닐 테고. 안 그래?”
“말씀이 솔직해서 좋아요. 제 몸에서 매력을 느끼셨다니 자부심이 드네요. 저 역시 선생님이 욕심나요. 생김새나 인품이 제 맘에 들거든요.”
“고마워. 우리의 마음이 점점 가까워지는가봐.”
김석의 말에 혜미의 얼굴이 활짝 열렸다. 말투와 몸놀림이 금방 경쾌해졌다. 어딘지 모르게 칙칙한 얼굴이었는데 그 어두운 기색이 말끔하게 가셨다. 김석의 마음은 더욱 달뜨기 시작했다. 파도소리도 상큼한 선율로 다가왔다. 그동안 파도소리에는 황량한 허무감이 묻어있었다. 그래, 현실은 이처럼 아름다운 거야. 김석은 곱디고운 혜미의 몸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었다.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좀 시간이 걸릴 거에요.”
혜미가 상냥한 미소를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반시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혜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예약한 모텔방에 먼저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순진한 여자이니 남자와 함께 들어가는 게 민망할지 몰라. 김석은 모텔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빈방이었다. 바닷가를 살펴봐도 혜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의심이 들었다. 서울로 튄 게 분명했다.
그럼 왜 감쪽같이 속이고 서울로 튀었을까? 기분이 달뜬 상태였는데 몰래 튀다니, 정말 어이없는 짓이어서 김석은 어리둥절했다. 뭐에 홀리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저녁도 굶은 채 술로 마음을 달랜 김석은 혼자 모텔방을 지켜야 했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서야 혜미가 혼자 서울로 돌아와 아내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김석이 혜미를 다시 만난 것은 삼일쯤 지나서였다. 신문 칼럼도 끝내고 업소도 정기휴일이어서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웠다. 그때 정원에서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내와 혜미가 재롱부리는 은영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혜미는 김석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쳐주었다. 수니도 혜미처럼 손사래를 쳤는데 아내의 그런 짓은 처음이었다. 어이없는 짓이었다. 혜미를 따라 손사래를 치다니!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아내가 혜미한테 홀린 게 아닐까?
그럼, 혜미가 요망한 악마?
아무래도 성한 여자는 아니었다. 강릉에서 몰래 서울로 도망쳐 곧장 아내를 만나본 소행은 성한 사람의 짓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이상한 기행(奇行)이었다. 사내와 섹스 장소까지 동행했다가, 사내를 온전히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아내를 찾아가 다짐을 받고자 한 그 무모한 짓을 상식적인 소행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밖으로 나오세요.”
혜미가 김석을 정원으로 불러냈다. 파란 잔디밭에는 한여름 햇살이 깔려 있었다. 은영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왔다. 혜미가 얼른 은영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수니가 달뜬 목소리로 남편에게 제안했다.
“다음 휴일에는 동해안으로 회 먹으러 가요.”
그러자 혜미가 자기도 따라가고 싶다며 수니에게 졸랐다. 수니는 혜미의 요구를 정답게 받아주었다. 김석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내가 동행을 허락하다니. 아무래도 혜미한테 홀린 게 분명했다. 김석은 혜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느새 혜미의 어금니가 드라큘라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돋아나고 있었다. 눈에는 핏발이 번졌다. 김석은 얼른 혜미의 팔에 안긴 은영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좋아! 함께 가자구!”
김석의 말에 두 여자는 박수를 쳤고 은영이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그때 김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혜미의 이빨을 조심해!”
그러자 아내가 목청을 높였다.
“혜미와 둘이 당신을 왕창 뜯어먹을 건데?”
이번에는 혜미가 목청을 높였다.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몸을 깨끗이 씻으세요. 선생님처럼 착한 사람은 살에서 비린내가 심해요.”
“웬만해서는 비린내가 가시지 않을 테니 락스로 씻으라구.”
아내의 말에 혜미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세요. 비누보다는 락스가 훨씬 잘 닦이죠.”
두 여자는 손을 맞잡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느새 아내의 어금니도 흡혈귀처럼 날카롭게 돋아나 있었다. 아악! 김석의 입에서 또 비명이 터져나왔다. 두 여자는 피묻은 어금니를 벌린 채 서서히 김석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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