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1962. 6. 21
극장에서 <벤허>를 관람했다. 1962년은 <벤허>의 해로 회자될 만큼 70mm 대형영화다. 한국 흥행은 충무로 대한극장에서만 상영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도 대단한 흥행이라고 한다. 영화 모든 분야의 상을 독차지한 영화다. 원작자는 법률가, 정치가, 군인인 루 웰레스 장군이다.
다음은 영화의 감동 어린 장면을 간추린 표현들이다.
“증오는 널 살릴 수 있다. 증오는 힘을 주니까.”
노예선에서 로마 집정관이 벤허에게 한 말.
“그 누군가가 내게 물을 주었다.”
벤허가 노예로 끌려가며 열사(熱死) 직전에 예수님이 물을 주는 장면.
“나는 너무 늙도록 살았다.”
어느 현자가 예수의 십자가형을 보며 한 말.
그리고 문둥병 계곡에서 느껴지는 그 처절한 비극에서 무엇을 캐낼 수 있을까? 나는 공주 사곡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마치 문둥병자로 동굴살이 하는 벤허 어머니처럼 여겨졌다.
예츠(W. B. Yeats)의 시「여자의 마음」을 읽었다.
기도와 안식으로 가득 찬
방 따위가 제게 무슨 소용 있아오리까
그대 날더러 어둠 속으로 나오라 하시기에
나의 가슴 그대의 가슴 위에 있아옵니다
어머니의 걱정이나, 아늑하고 따뜻한 집 따위,
제게 무슨 소용 있아오리까
폭풍우로부터 우리를 가리워 줄 것이옵니다
우리 에워싸주는 머릿단과 이슬진 눈이여
나에겐 이미 삶도 죽음도 없아옵니다
나의 가슴은 그의 따뜻한 가슴 위에 있고
나의 숨결은 그의 숨결에 얽혀 있아 옵니다
1962. 7. 26
나에게는 군대생활이 낙원이다. 책도 실컷 읽을 수 있어 좋다.
요즘『매혹의 악령』『적과 흑』『허영의 거리』『우수부인』『인형의 집』『춘희』『학대받은 사람들』『황혼』라오꼬옹의『군상』『추녀의 일기』『마농네스크』모파상의 『벨라미』호오슨의『주홍글씨』도스토에프스끼의『학대받은 사람들』등을 읽었다. 특히 이보안드리치의『드리나강의 다리』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다음은 의가사제대를 위해 군종감인 임 목사(공군 대령) 댁을 방문한 후 이튿날 군종감실로 찾아가 제출한 내 글이다. 별지에 부모님 신변과 거주지를 따로 썼다.
“....일각이 여삼추로 최저생활을 기다리시는 七十노령의 부모님을 모실 소관의 불가피한 환경에....”
7항로보안단 73기상연대 730중앙기상부 통계과 일병 잔아 상서
1962. 10. 12
근무 중 화장실에 갔다. 판자로 칸막이를 해서 서로 말이 통한다. 내무반장 남 하사가 “용만이 넌 밤에는 말똥하고 낮에는 조냐?” 한다.
“사업(독서) 하느라고요.”
“부모는 게시냐?”
“글쎄, 계시다면 계시고 안 계시다면 안 계시고요.”
행정계장 허 대위가 바로 옆 칸에서 나온다. 다 들었겠지.
존경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씨
당신의『학대받은 사람들』을 읽고 이 글을 씁니다. 당신은 그렇게 묘사해야 하는 무슨 숙명이라도 있었나요? 그게 의문입니다. 무척 실례일 줄 압니다만, 혹시 당신의 환경에서 우러난 운명의 감정은 아니겠죠? 당신은 타당하고 심오한, 너무 고독한 사랑을 찬미했겠죠? 물론 당신이나 나는 비참을 부러워하진 않겠지만 그런 절망적인 삶을 증오하진 않겠죠?
케리쿠퍼와 그레이스케리 주연의 서부극 <High Noon>을 감상했다.
“링컨은 국민 각자가 조금씩 키가 커지게 했다.”
1962. 10. 19
용산 RTO에서 사인을 받고 오후 8시 30분 부산행 군용 열차에 올랐다. 아침에 초량역에 내려 항만사령부에서 근무하는 헌무를 찾아갔다. 거기서 가야 40보급창으로 전속되었다는 말을 듣고 일신병원을 찾아가 간호사 김양을 면회했다. 반가워 반색을 한다. 편지로는 구면이다.
1962. 10. 21
40보급창 헌무가 운전하는 지프를 타고 동래 관광호텔에 이르니 경비가 삼엄하다. 정각 오후 2시 박정희 의장이 나온다. 경찰 싸이카가 선두에 서고 우리는 경찰 1호차 뒤를 따랐다. 우리 차 뒤에 장관들 차가 쭉 따른다. 울산 공업단지를 시찰하기 위해 기동차를 타러 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 차에는 전용기 조종사가 탔는데 부탁하면 대구까지 가는 빈 비행기에 태워주겠지만 헌무가 더 놀다 가라고 잡는 바람에 대통령 전용기를 못 타봤다.
밤에 헌무가 제 애인을 데리고 나와 함께 송도에 갔다. 그리운 송도! 희미한 등불이 켜진 바닷가 방 안에서 술을 마시며 즐겁게 떠들었다. 밖에 나가 바닷가를 거닐다가 시내로 달렸다. 조와 나는 신이 나서 노래를 합창했다. 모처럼 기분을 만끽했다.
K-9(수영비행장) 에어 베이스에서 잤다.
1962. 10. 22
직언하는 선비는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역사의 준엄한 감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죽어가는 무엇이 아니라 만들어 나아가는 생명인 것이다.” -까뮈
낙엽이 지기 시작한다.
가을이여! 그대의 체온을 높이려무나.
그대가 데려올 북풍과 폭설을 생각하면 이 마음 갈기갈기 찢어지는구나.
병들지도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가을이여! 나는 그대가 범죄자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1962. 10. 31
이상한 일이다. 주먹을 쥐고 엎드려뻗쳐를 아무리 해도 나는 끄떡없다. 근육이 없지만 발끝에서 머리까지 직선으로 2, 30분은 거뜬하다. 다른 근육질도 벌벌 떨다가 쓰러지는데, 나는 몸을 더 직선으로 뻗는다. 정신은 육체보다 강한 게 사실이다.
1962. 12. 27
공군본부로 가는 언덕길에서 하늘을 보며 기도를 드렸다. 과연 하늘은 돌봐주었다.
공군 특명 (을) 173호로 상병 3244506 잔아는 의가사제대가 된 것이다. 1963년 1월1일부다. 부대를 나올 때 장교 사병 할 것 없이 야단이다.
“자네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는 격려였다. 공군에는 의가사제도가 없다. 하지만 세종로 한복판에서 갈 곳이 없는 나는 슬퍼져 엉엉 울었다. 실컷 울었다. 이제는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중앙기상부에서 제대신고를 마친 나는 제대복을 입은 채 일자리를 찾았지만 계속 허탕만 쳤다. 가자! 아무도 모르는 부산으로 가자! 용산역에서 부산행 군용 열차를 탔다. 공군40보급창 수송대에서 근무하는 헌무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여비를 아끼려고 군용 열차를 탔지만 당장 끼니가 걱정이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제대비를 만지작거렸다. 의가사제대이기 때문에 그나마 반액도 안 되는 650원. 파고다 한 갑이 35원이니 담배 스무 갑 값도 안 되는 돈이다. 지난여름에 실시한 화폐개혁 이전의 환으로 치면 6,500 환인 셈이다.
1963. 1. 4
부산에 도착하니 헌무가 반갑게 맞아준다. 밀수꾼이었던 그는 함께 지내자고 했다. 그는 서면에 있는 공군 40보급창 운전병으로 근무하면서 스페어 통으로 휘발유를 훔쳐 팔아 애인에게 방을 얻어줬는데 그 방을 애인 미스 킴과 함께 쓰라고 했다.
1963. 1. 9
헌무 덕에 잠자리는 해결된 셈이다. 오늘은 그의 양복을 빌려 입어 제법 말쑥한 모습이다. 그의 신사복 색상이 내 취향과 비슷했다. 어서 회사 사환이나 청소부 자리만 생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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